‘이재명의 헬기이송’ 후폭풍…“나도 서울병원 갈래” 요구 늘었다 [저격]
[저격-9]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2일 가덕도 신공항 부지 현장 방문에 나섰다가, 이날 오전 10시30분께 부산 강서구 대항전망대 인근 지지자들이 모여든 현장에서 한 괴한이 휘두른 흉기에 목 부위를 공격 당해 쓰러졌습니다.
지지자를 가장한 이 남성은 ‘이재명’이라 적힌 파란색 종이 모자를 쓰고 사인을 요청하며 이 대표에게 접근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문제는 이때부터 시작됩니다. 부산에서 흉기 습격을 받은 이 대표가 부산대병원에서 헬기를 타고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됐기 때문입니다.
이 대표가 빨리 회복을 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 대표가 서울로 이송된 것이 올바른 판단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료계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이 대표가 부산대병원에서 서울대병원로 전원될 때 탄 것은 닥터 헬기가 아니고 119소방헬기였습니다.
지난 8일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서울중앙지검에 이 대표와 같은 당 정청래 의원, 천준호 의원을 부산대병원과 서울대병원에 대한 업무방해와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응급의료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기도 했습니다.
소청과의사회는 “야당 대표가 국회의원을 동원해 이송을 요청한 건 의료진에 대한 갑질이고 특혜 요구”라며 “진료와 수술 순서를 권력으로 부당하게 앞지른 새치기”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서울대병원은 “부산대병원의 요청으로 이 대표를 수술했고, 수술 난도가 높았다”고 해명했습니다.
이 대표의 ‘헬기전원’을 둘러싼 특혜의혹, 진실은 무엇일까요?
민승기 서울대병원 이식혈관외과 교수는 지난 4일 브리핑에서 이같이 설명하며 목 부위의 자상으로 목 동맥, 내경동맥 손상이 의심됐고, 기도 손상도 배제할 수 없어 부산대병원에서 이송을 결정했다고 말했습니다.
이 대표가 서울대병원에서 수술받게 된 경위에 대해 “속목정맥이나 동맥 재건은 난도가 높고 수술 성공을 장담하기 어려워 경험 많은 혈관외과 의사의 수술이 꼭 필요한 상황이었다”며 “부산대병원 요청을 받아들여 수술을 준비했다”고 했습니다.
부산대병원 관계자는 “부산대병원 권역외상센터에는 17명 가량의 의료진이 돌아가면서 당직을 서기 때문에, 언제든지 응급 수술을 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부산대병원은 나라에서 지정한 권역외상센터로, 우리 병원을 찾은 외상환자가 다른 병원으로 이송간 사례는 처음있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부산대병원에 따르면 피습 당일 부산대병원 응급외상센터는 지혈을 위한 응급처치와 혈관 상태를 파악하기 위한 CT촬영을 진행한 뒤, 이 대표의 경정맥이 손상된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후 수술을 집도하기로 하고, 보호자의 동의를 구하기 위해 이 대표 가족에게 의향을 물었습니다. 이 대표 가족들과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들은 수술을 서울대병원에서 받겠다고 했습니다.
부산대병원 일부 의료진은 이송을 반대했습니다. 이 대표의 경우 내경정맥이 절단된 상태였고, 혈관 손상이 보여 응급수술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이송 중 위급 상황이 생길 것을 우려했다고 합니다.
김영대 부산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은 가족 측의 요청을 받아들여 서울대병원 측에 즉시 수술이 가능한지 물었고, 서울대병원 측에서 가능하다고 해 전원을 결정했다고 합니다. 김 센터장은 당초 이 대표의 상황이 ‘매우 위중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는 점도 사실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부산대병원 권역외상센터는 A등급을 받은 기관 중에서도 1위의 성적을 받아 국내 최고 수준의 한국형 외상센터임을 인정받았습니다.
대량 수혈 프로토콜, 사전활성화 시스템 등 진료시스템을 발전시켜 ‘예방가능 외상사망률’을 선진국 수준 이상으로 감소시켰습니다.
서울대병원 관계자는 ”급작스러운 이재명 대표 수술로 인해 일부 외과계 교수들이 응급수술이 밀려버렸다고 크게 항의하는 일이 있었다“며 ”의료진들 사이에서도 이 대표 전원에 대한 의견이 나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습니다.
2022년 보건복지부 외상등록체계 통계 연보에 따르면 한해 3만5000여명의 외상환자 이송에 헬기 등 항공 이송은 785건(2.2%)에 불과했습니다.
가장 많은 이송수단은 55.6%(1만9481건)로 119구급차였고, 기타 자동차가 22.5%(7864건), 기타 구급차가 14.5%(5086건), 의료기관 구급차 4.5%(1571건)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이 대표의 경우처럼 병원 간 전원은 통상 구급차가 이용됩니다.
병원 간 전원에 헬기 이송이 이뤄지는 경우는 환자가 매우 위급한 상황이며 바로 수술이 어려운 중소병원에서 대형병원 전원이 필요한 때가 대부분입니다.
상급종합병원인 부산대병원은 타 병원 전원 시 헬기가 동원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알려졌습니다.
이경원 대한응급의학회 공보이사(용인세브란스병원 응급의학과)는 ”현재 소방구급헬기나 보건복지부가 운영하고 있는 닥터헬기 운영 규정엔 국가 의전서열을 고려하는 항목은 없다“고 비판했습니다.
부산의사회는 지난 4일 이 대표의 헬기 전원을 두고 ”지역 의료계를 무시하고 특권의식에 몰입된 행동“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들은 ”부산대병원에서 1차 응급조치가 이뤄진 이후 민주당 지도부가 보여준 이중적이며, 특권의식에 몰입된 행동에 지역의료인들은 개탄을 금치 못하고 있다“며 ”환자의 상태가 아주 위중했다면 당연히 지역 상급 종합병원인 부산대학교병원에서 수술받아야 했고, 그렇지 않았다면 헬기가 아닌 일반 운송편으로 연고지 종합병원으로 전원했어야 마땅하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이것이 국가 외상 응급의료 체계이며 전 국민이 준수해야 할 의료전달체계“라고 했습니다.
광주시의사회는 지난 5일 성명을 내고 “이 대표 피습 이후 이송 및 치료 과정에서 발생한 일련의 상황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의 연속이었다”고 지적했습니다.
광주시의사회는 ”이 대표가 상급종합병원이면서 권역외상센터인 부산대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어야 했다“며 가족이 전원을 요구했으면 응급의료 전용헬기가 아닌 “일반 운송편으로 연고지 병원으로 이송돼야 하는 게 원칙”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이 대표도 이 원칙을 준수해야 할 대한민국 국민이다. 다른 응급 환자가 헬기를 이용할 기회를 박탈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서울시의사회도 같은 날 “이 대표 테러 사태 이후 무리하게 헬기 이송을 벌인 것은 자칫 응급한 환자의 위중한 건강을 악화시킬 수 있는 위험천만한 결정이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거대 야당 대표가 정작 본인에게 위급 상황이 닥치니 의료전문가의 의견을 무시하고 가족이 원한다는 단순한 이유로 지역 최고 중증외상센터의 치료를 외면하고 응급 헬기를 타고 서울대병원을 찾아 날아가버리는 모습을 보여줬다”며 “이 대표의 헬기 특혜이송은 모든 국민이 지키는 의료전달체계를 뛰어넘는 선민의식과 내로남불 행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고 비판했습니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은 “응급실에 있는 환자들이 ‘나도 서울대 보내달라’, ‘헬기 불러달라’고 요구하는 사례들이 실제 늘고 있다”며 “이전에도 대형병원으로 이송을 요구하는 환자들이 있었지만 강도가 세졌다”고 전했습니다.
그는 “응급실에서 일하면서 가장 힘든 것은 대형병원에 보내달라는 요구”라면서 “응급실 환자들은 서울대병원 등 ‘빅5’ 병원에 가고 싶어하지만, 실제 받아 들여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했습니다.
그는 “본인이 원해서 가는 것이니 만큼 비용도 본인이 내고 민간 구급차를 불러서 가야 한다”면서 “지금까지 그렇게 운영돼 왔다. 따라서 (이 대표는)응급의료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일각에선 이 대표의 헬기전원 사건이 지방 의료가 몰락하는 상황에서, 환자들이 의료진의 능력과 관계 없이 무조건 서울의 대형병원을 선호하는 현상을 심화시킬 것이란 우려도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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