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각의 4성 길이는 얼마일까? [이강웅의 수원화성이야기]

경기일보 2024. 1. 13.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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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지북성·산상서성·평지남성·산상동성의 화성 ‘4성’
단순 위치·방위 아닌 지형따른 공사 난이도로 경계
인력 배분·공정 관리 등 정조 건설 경영철학 돋보여
원성 길이만 3천946보2척, 곡성 합해 4천600보 달해
의궤 4성 체계에 대해 여러 해석을 하고 있다. 바른 정의가 필요하다. 이강웅 고건축가 제공

 

화성을 4성으로 나눴다. 4성 경계도 네 곳이다. 경계를 잘못 해석하면 시설물 수도 길이도 모두 틀리게 된다. 4성 체계 개념에 맞게 경계를 구분해야 한다.

화성 길이는 4천600보다. 성이 4천600보고 옹성은 163보, 용도는 367보다. ‘화성 길이’에 관련 기관, 연구자마다 여러 수치가 사용되는 것이 아쉽다. 어느 독자는 의궤에 5천130보로 기록돼 있다고 말씀하신다. 아마 의궤 중 ‘터닦기’ 편에 나온 “소요된 터가 모두 합쳐 5천130보”라는 기록 때문인 것 같다. 5천130보는 성 터, 옹성 터, 용도 터를 합한 것이다. 화성 길이는 세 가지 중에서 성 터 길이, 4천600보만 말해야 한다.

안내판에 4성 체계로 화성을 소개했다. 4성 각각에 어떤 시설물이 속할까? 그리고 각각의 길이는 얼마나 될까? 연구자마다 견해가 다르다. 왜 그럴까? 4성 명칭과 4성 경계에 대한 개념과 정의 차이 때문이다. 먼저 4성의 명칭에 대해 정의를 내려보자.

화서문이 끝나는 남쪽 끝부터 산으로 오르는 경사가 시작된다. 이 변곡점이 경계다. 이강웅 고건축가 제공

화성에서 4성 체계는 ‘동성, 서성, 남성, 북성’이 아닌 것에 유의해야 한다. 4성 체계는 의궤 권5 실입에 나온다. 실입이란 공사에 실제 투입된 돈, 자재, 인력, 장비를 말한다. 의궤에 나오는 4성의 명칭은 평지북성, 산상서성, 평지남성, 산상동성이다. 정확한 명칭을 써야 한다. 다음으로 4성의 경계선을 정의해보자. 4성별 시설물 수, 길이 등을 정확히 하려면 4성 간 경계를 명확히 해야 한다.

우선 네 곳 경계선 중 평지북성과 산상서성의 경계선을 확인해보자. 한 곳을 이해하면 나머지 세 곳은 쉽게 구분할 것이다. 경계에 대해 평지북성이 끝나는 부분을 “서옹성 북쪽 끝까지”라 하고, 산상서성이 시작되는 부분은 “화서문 남쪽으로부터”라고 했다. 기록으로 보면 앞의 끝 지점과 다음 시작점 사이에 공백이 생긴다. 즉, 화서문이 평지북성에도, 산상서성에도 빠져 있다. 과연 경계선은 서옹성 북쪽 끝일까? 화서문 남쪽 끝일까? 아니면 화서문 정가운데가 될까?

답은 4성 체계의 개념에 달렸다. 4성은 실입에 기록돼 있다. 왜 하필 실입 편에 4성 체계를 만들었을까? 실입은 건설경영의 기초가 되는 기준 자료다. 정조는 자금 준비와 배분, 공정관리, 인력 배분, 품질관리 등 경영의 기준 자료로 4성 체계를 만든 것이다. 이를 위해 산상과 평지라는 지형, 즉 공사 난이도로 분류한 것이다. 동서남북처럼 단순한 방위 개념이 아니다. 난이도 분류가 더 합리적, 과학적, 경영적이라 본 것이다.

산상동성과 평지북성의 경계선은 화홍문의 동쪽 끝이다. 이 지점부터 산을 향해 오르막이다. 이강웅 고건축가 제공

다만 장인, 인부 등 일하는 사람이 알기 쉽도록 지형 뒤에 동, 서, 남, 북의 방위를 붙인 것이다. 즉, 산상서성은 ‘산 위에 건설할 시설물’이라는 공사 난이도 개념을 우선하고 서쪽이라는 위치를 부차적으로 알려준다. 4성의 기본 개념은 공사 난이도이다. 즉, 지형이다. 이 개념을 염두에 두고 경계선을 결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평지북성과 산상서성의 경계선을 확정해 보자. 두 성이 만나는 부분에 대해 “서북공심돈 터에서 돌아 꺾여 남쪽으로 향해 15보 4척쯤 가면 화서문 터가 시작된다. 화서문 넓이가 14보 4척이다. 여기에서부터는 평지가 끊어지고, 산을 타고 오른다”라고 기록한다. 이 중 “평지가 끊어지고, 산을 타고 오른다”가 중요한 단서다. 평지에서 산으로 바뀌는 변곡점이다. 이 변곡점이 경계선이다. 화서문 남쪽 끝이 경계선이다.

따라서 화서문은 평지북성에 속한다. 이름에 방위 명 ‘서’가 있어도 현혹돼서는 안 된다. 현혹되면 화서문이 산상서성으로 보는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한 경계가 틀리면 양쪽 성의 시설물 수도 틀리고, 길이도 모두 틀리게 된다. 같은 개념으로 나머지 세 곳의 경계선도 정의해 보자.

남수문이 끝나고 30보 평지가 지나서 오르막이 시작된다. 오르막이 시작되는 지점이 경계다. 이강웅 고건축가 제공

산상서성과 평지남성의 경계선은 남은구 서쪽이다. 따라서 남은구는 평지남성에 속하고 남포루와 남치는 이름에 ‘남’이 붙어 있어도 산상서성에 속한다. 평지남성과 산상동성의 경계선은 남수문 동쪽에서 동남각루 아래 30보까지 지점이다. 따라서 남수문은 평지남성에, 동남각루는 산상동성에 속한다. 산상동성과 평지북성의 경계선은 화홍문 동쪽이다. 따라서 화홍문은 평지북성에 속하게 된다.

이를 기준으로 4성 각각의 길이를 계산해 봤다. 평지북성은 737보4척, 산상서성은 1천193보4척, 평지남성은 282보, 산상동성은 1천751보다. 4성 체계 의궤 기록과 일치한다. 합은 3천964보2척이다. 이 수치를 보고 왜 화성 길이 4천600보와 다르냐고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4성 체계는 원성 길이만 기록한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곡성 길이 635보4척을 합하면 정확히 4천600보가 나온다.

참고로 화성 길이 4천600보는 원성 85%, 곡성 15%로 구성된다. 그리고 평지성 30%이고 산상성 70%다. 기억하기 쉬운 수치다. 아래에 표로 성의 길이에 대한 모든 것을 정리해 봤다.

단순하게 위치나 방위에 의한 분류가 아니고 합리적, 과학적 경영을 위해 공사 난이도인 지형을 기준으로 경계를 나눈 화성의 4성 체계를 살펴보며 정조의 경영철학과 실용철학을 엿보았다. 글·사진=이강웅 고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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