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서평 유레카] ‘괴짜 총장’ 눈으로 본 인류의 미래
미래의 기원ㅣ이광형ㅣ540쪽ㅣ3만3000원
나는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을까. 인간은 어떤 존재이며 앞으로 인류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 지 알 필요가 있다. 이미 인류는 질문의 답에 거의 다다랐다. 뇌과학의 발달로 뇌세포에서 이뤄지는 전기화학적 작용이 복잡한 사고 과정을 관장한다는 것이 알려졌다. 원소를 구성하는 전자는 불안정한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안정해지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화학 반응을 일으킨다.
그러나 아직까지 인간의 정체가 무엇인지, 우리의 미래에는 무슨 일이 펼쳐질지 시원한 해답은 찾지 못하고 있다. 책의 저자인 이광형 한국과학기술원(KAIST) 총장은 그 답이 미래가 아닌 과거에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을 구성하는 원소의 기원을 쫓아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역사학자들이 과거를 통해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처럼 과학자들도 이 세상이 탄생한 곳을 들여다보면 그토록 찾아 헤매던 답을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 총장은 우주가 탄생한 ‘빅뱅’에서 그 여정을 시작한다. 이후 별과 행성의 탄생, 지구에서 태어난 생명체의 발자취를 쫓는다. 인간의 등장 이후 문명을 만들고 이어지는 역사의 페이지를 훑어 본다. 그 과정에서 불안정한 전자가 안정해지기 위해 화학 반응을 일으키듯 불안정한 인류가 어떤 선택을 해왔는지를 짚는다.
대표적인 사건 중 하나가 중세 유럽의 영향력이 전 세계로 뻗어나가기 시작한 ‘대항해시대’다. 유럽인들은 바닷길을 개척해 새로운 세상을 탐험했고, 현재 서구 중심의 국제사회의 토대를 마련했다.
사실 15세기 유럽은 중국에 비해 모든 면이 열세였다. 유럽 귀족들은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에서 들여 온 비단과 향료에 매료됐으나 이를 자체적으로 만들기에는 기술력은 물론 기후환경도 적합하지 않았다. 1453년 오스만투르크가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키면서 실크로드마저 끊어졌다. 기호품이 부족해진 유럽은 육상이 아닌 바닷길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반면 중국은 1405년 명나라 시절 정화가 2만7000명에 이르는 선원을 이끌고 바다를 누볐다. 그러나 중국은 유럽에 비해 항해로 얻는 이점이 크지 않았다. 다양한 자연 환경을 갖춘 중앙집권국가였던 중국은 영토에서 나오는 자원만으로도 물자가 부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유럽인들은 불안정한 물자 수급을 위해 바다로 나설 수 밖에 없었다. 그 결과 물자의 수요와 공급이 크게 늘면서 경제는 급속도로 발전했다. 이는 산업혁명으로 이어졌고 현재의 국제 사회가 만들어졌다.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고자 했던 많은 학자들은 인간의 자유의지로 한 선택이 역사를 써내려 가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총장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오늘날 인간의 사회를 들여다보고 있자면 환경의 영향을 빼고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총장은 “역사 속 인간의 선택이 역사를 바꿔놨더라도, 그런 선택을 유도한 환경과 외부 조건이 있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며 “환경의 맥락에서 인간의 선택을 살펴보면 그 의미가 명확하게 보인다”고 책에서 설명한다.
이 총장은 우리에게 닥칠 미래에도 같은 일들이 반복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인간의 불완전함을 해소할 수 있는 다양한 도구들을 개발하고 우리가 처한 환경을 바꿔 놓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선택의 시기가 머지 않았다.
이 총장은 질병 정복을 위한 유전자가위 기술, 인간을 뛰어넘는 지능을 갖는 인공지능(AI)의 탄생, 인간과 컴퓨터를 연결한 ‘뇌 컴퓨터 인터페이스(BCI)’가 우리의 미래를 바꿔놓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단순히 기술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대한 고민이 아닌 인류의 사상을 지배하는 자본주의, 민주주의, 노동에 대한 가치관마저도 바꿔 놓을 수 있다.
이 총장의 손 끝에서 탄생한 것들은 대부분 국내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다. ‘괴짜 과학자’라고도 불리는 이 총장은 한국을 대표하는 미래학자이다. 2000년대 초반 바이오및뇌공학과를 만들며 융복합이라는 개념이 생소하던 시기부터 투자를 시작했다. 미래 산업 육성을 위해 의사공학자를 양성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과학기술의학전문대학원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이 총장은 5년이라는 긴 시간에 걸쳐 이 책을 썼다. 다가올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했다. 빠르게 소용돌이치는 역사의 흐름에서 미미한 인간의 몸짓이 아닌 주체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잡기 위해 우리의 머리를 맞대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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