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꾸·백꾸·카꾸, 별걸 다 꾸민다고요?
아기자기하게 써 내려간 소소한 일상, 고수의 손길이 느껴지는 페이지 레이아웃. 자신만의 콘셉트로 완성한 ‘다꾸’(다이어리 꾸미기) 결과물을 올리는 인스타그램 ‘달무리’의 얘기다. 8년째 이 계정을 운영 중인 이는 이승희씨다.
이씨가 한 장의 다이어리를 완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1시간, 비용은 한 달 기준 5만원 내외다. 만화책에서 봤음 직한 독특한 캘리그래피를 주 무기로 한 덕분에 여느 ‘다꾸러’(다꾸를 하는 사람)와 비교해 스티커 비용이 적게 드는 편이다. 다만 좋아하는 작가의 ‘신상템’이 출시될 때에는 평소보다 2배 가까운 비용을 지불하기도 한다.
이씨가 ‘다꾸’를 하는 이유는 온·오프라인을 통해 경험한 ‘기록의 힘’을 설파하고 싶어서다. 그는 “주기적으로 십년지기 친구들과 만나는데 그때마다 내 다이어리가 ‘그날 우리가 무엇을 했는지’ 증거로 쓰이곤 한다. 누구든 내 다이어리를 보며 ‘나도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좋겠다”며 “나아가 같은 취미, 취향을 가진 이들과 소통하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 전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별다줄’(별걸 다 줄여 쓴다)에서 파생된 ‘별다꾸’(별걸 다 꾸민다)가 현대인의 트렌드로 단단하게 뿌리내렸다. 삼성패션연구소는 2024년 패션 키워드를 공개하며 “굿즈 소비, 쇼트폼 콘텐츠 시청 등 요즘 소비자들은 짧고, 쉽고, 재미있으면서도 나만의 취향을 보여주는 것에 열광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별다꾸’는 ‘재미있으면서도 나만의 취향을 보여주는’ 요즘 세대의 취미인 셈이다. ‘문구 덕후’의 성지로 꼽히는 소품·문구 전문점 ‘포인트 오브 뷰’는 이런 분위기를 최전방에서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입장 전 대기를 하며 정보를 교환하는 ‘다꾸러’들의 부지런함도 엿볼 수 있다.
‘다꾸’와 함께 꾸미기의 원조로 꼽히는 분야는 ‘신꾸’(신발 꾸미기)다. “실용성을 택하며 심미성을 잃었다”는 투박함의 대명사, 크록스 신발은 ‘신꾸’ 열풍과 함께 ‘못생긴 신발’의 오명을 벗었다. 뚫린 크록스 신발 구멍에 끼우는 전용 액세서리 ‘지비츠 참’ 덕분이다.
지비츠는 미국의 한 가정주부가 세 자녀의 크록스 신발에 단추, 보석, 리본 등을 달아준 것이 계기가 됐다고 알려져 있다. 크록스는 2006년 이들 가족이 창업한 브랜드 ‘지비츠’를 인수했고, 이후 각종 캐릭터와 알파벳 등 5000여종의 디자인을 추가하며 기업 성장 동력으로 삼고 있다. 크록스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지비츠 매출은 2022년 동기간 대비 144% 급증했다.
저마다 원하는 디자인으로 ‘커스터마이징’할 수 있는 ‘신꾸’의 최신 버전은 웨딩 슈즈다. 외국에서 불어온 이 유행의 포인트는 흰색의 크록스에 큐빅, 진주 등으로 장식하는 것이다. 지난해 결혼식을 올린 최은주씨는 “처음에는 우려스러웠지만 신부 대기실이 아닌 로비에서 하객을 맞으며 서 있을 예정이라 발이 편해야 했고 보면 볼수록 예뻐 결국 본식에도 크록스를 신고 입장했다”며 “걱정과 달리 하객 모두가 예쁘다고 칭찬해줬다”고 전했다.
‘백(Bag)꾸’는 소셜미디어를 타고 빠르게 확산 중인 신종 패션 트렌드다. 평소 사용해온 가방에 인형, 키링, 비즈, 디자인 패치 등의 액세서리를 매달아 자신의 개성을 표출하는 방식인데, 에르메스 버킨백을 좋아하는 모델 제인 버킨이 자신의 백을 자유롭게 꾸민 데서 비롯됐다.
새 가방을 사지 않고도 각자의 패션 감각을 살릴 수 있어 환경친화적 ‘착한’ 실천이라는 점에 매료된 다수의 해외 셀럽들이 이를 따라 하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도 뉴진스의 혜인, 르세라핌의 허윤진 등이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백꾸’ 이미지를 올리면서 ‘패피’(패션피플)의 관심을 끌었다. 글로벌 패션 브랜드 미우미우와 발렌시아가의 ‘2024 봄·여름 컬렉션’ 쇼에서도 각종 소품을 단 가방들이 등장,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다.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들에게 ‘폰꾸’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모두 섭렵할 수 있는 훌륭한 캔버스다. 유튜브에서 ‘폰 꾸미기’를 검색하면 휴대전화 기종에 따른 다양한 영상들이 콘셉트별로 나온다. 이들은 케이스를 꾸미는 것에 그치지 않고 홈 화면과 배경화면(홈꾸), 위젯에 변화를 주며 휴대전화를 재탄생시킨다. 성능보다 ‘폰꾸’를 위해 특정 휴대전화를 구매했다는 후기도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다. ‘폰꾸러’들의 최종 목적지는 무선이어폰과 헤드셋이다.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꾸미는 ‘인꾸’나 폴라로이드로 인쇄한 포토카드를 꾸미는 ‘폴꾸’는 팬덤이 더해졌을 때 더욱 빛을 발한다. 일부 팬들은 폴라로이드 사진의 여백을 활용, 다양한 스티커를 붙이거나 문구를 적으며 애정과 충성도를 드러낸다. 선호하는 브랜드, 각별한 스타를 주제로 한 2차 가공과 특유의 인증 문화가 팬심을 뜨겁게 달구는 데 불쏘시개가 된 것이다.
‘별다꾸’ 고수들은 체크·신용카드 제작을 의미하는 ‘카꾸’에도 관심을 보이는 중이다. 원하는 사진이나 이미지로 출력된 카드 사이즈의 스티커를 부착하는 식이다. 최근에는 사용자가 원하는 디자인으로 레이저 각인한 새 메탈 카드에 기존 카드의 IC칩을 넣는 커스터마이징 카드를 제작하는 업체도 성업 중이다. 업체 측은 “기존 카드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명함, 이니셜, 사진, 일러스트 등으로 나만의 카드 만들기를 원하는 이들이 주 고객”이라며 “본인 명의의 카드 외관을 변경하는 것은 여신금융법에서 언급하는 위·변조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법적으로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디자인 포함, 기본 가공 비용은 6~7만원 선이다.
무엇이 이들의 ‘꾸밈 본능’을 자극했을까. 김정욱 소비트렌드 전문가는 “취향과 개성을 드러내는 트렌드와 소셜미디어의 영향력이 맞물리며 ‘꾸미기 본능’은 장르와 영역을 넘나들게 됐다”며 “여기에 구세대의 향수와 신세대의 호기심을 자극한 ‘아날로그 감성’이 번지며 ‘별다꾸’ 전성기가 찾아왔다”고 분석했다.
김지윤 기자 ju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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