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갯벌 마을서 본처 강천댁과 첩 월평댁이 서로를 끌어안은 사연은
옹골차고 쫄깃하고 향기롭게
권혜수 소설 | 나남 | 360쪽 | 1만6800원
남편의 제사상 앞, 두 할머니가 언성을 높인다. “지발 어른 대접 쪼까 받게 해보씨오, 지발!” “넘 말 허들 말고 자네나 잘혀.” 작은 말다툼이 크게 번졌다. 그럴 수밖에. 강천댁과 월평댁은 본처와 첩이다. 평생 서로 부러워하고 미워하며 살아왔지만 이젠 둘뿐이다. 조용한 벌교 갯벌마을은 둘의 다툼으로 조용한 날이 없다.
소설은 두 할머니의 인생과 운명을 한 폭의 수채화처럼 그려낸다. “순한 섬들 사이로 아득히 물이 빠져나갔다”며 느리게 묘사되는 갯벌의 모습이 두 할머니의 소리와 대조되며 공간의 사실감을 더한다. 독자는 ‘참꼬막’과 ‘개꼬막’으로 불린 강천댁과 월평댁의 기구한 삶에 빠져들게 된다. 강천댁은 월평댁이 온 뒤로 남편의 사랑을 빼앗겼고, 월평댁은 첫 남편과 아이를 바다에서 잃었음에도 여전히 바다에서 꼬막을 캐고 먹는다.
두 할머니가 서로를 이해하고 화해한다는 단선적인 스토리이지만, 이를 풀어가는 음식 묘사와 남도 사투리가 돋보인다. “꼬막도 뭍의 못다 한 생명력까지 떠맡은 엄동설한에 제 몸을 지켜낸 놈이 살이 옹골차고 쫄깃하며 향도 진하다”거나 “낙지 팥죽 같은 음식은 기억의 음식”이라는 묘사가 그렇다. 책장을 덮을 때쯤엔 따뜻한 한 끼를 먹은 것처럼, 속이 편안해진다.
흥미로운 점은 작가가 경북 예천의 산골 마을 출신이라는 것. 전라도 출신 남편의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21년 전 전남 바닷가에 사는 할머니들의 구술과 사진을 담은 책을 접하며 쓰기 시작한 소설이다. “자기 앞의 생을 오로지 온몸으로 살아낸 나의 어머니, 할머니들에게 이 소설을 바치고 싶다”는 ‘작가의 말’에서 그의 진심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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