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커지는 반도체·AI 인재 구멍, 의대 쏠림을 어찌할까

이용성 기자 2024. 1. 13.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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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성 국제부장

2024학년도 대입 수시모집에서 서울대 합격생 10명 중 1명이 등록을 포기한 것으로 나타났다. 입시 전문가들은 “다른 대학 의대로 빠져나가는 최상위권 학생들이 늘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상위권 학생들의 의대 쏠림 현상은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고소득에, 정년이 없고, 사회적 지위와 존경까지 누릴 수 있다는 의사 직업의 장점이 경제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더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 점도 수긍이 간다. 그렇다고 해도 쏠림의 정도가 시간이 지날수록 심해지는 건 큰 문제다. 가정에서 사회로, 세계 속의 대한민국으로 시야를 넓혀보면 과도한 의대 쏠림 현상이 초래하는 부작용이 얼마나 심각한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 의대 진학 목표 n수생이 증가로 등골 휘는 부모 늘어

싱겁게 들릴 수 있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전체 학생 중에서 의대에 진학할 수 있는 비율은 매우 낮다는 점이다. 한정된 재화나 서비스를 두고 경쟁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좌절하는 이들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재수·3수·n수를해서 천신만고 끝에 의대에 진학할 수 있다 하더라도 타고난 적성까지 바꿀 수는 없다.

좋아하고 적성에 맞는 분야를 택하는 것은 ‘건강 100세 시대’에 행복지수와 성공 확률을 높이는 괜찮은 방법일 수 있다. 의사건 변호사건, 연예인, 유튜버건 특정 직업이 안정적이거나 유망하다고 해서 그쪽으로 한줄서기가 심해지면 다수가 불행해진다. 참고로 2021년 한국의 어린이·청소년 행복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2개 국가 중 꼴찌였다.

의사가 언제까지 안정적이고 유망한 직업으로 남아있을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고도 효율화·최적화 도구인 생성형 인공지능(AI)의 확산으로 미래 일자리에 대한 불확실성이 거의 모든 분야로 확산했기 때문이다. 의사와 회계사 등이 인공지능(AI)에 우선적으로 대체될 것이란 전망을 담은 한국은행의 최근 보고서도 있다.

의대 진학을 염두에 둔 n수생이 늘면서 등골이 휘는 부모들도 늘었다. 2000년대 20%대에 머물던 n수생 비중은 지난해 35%까지 치솟으며 28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기숙 재수학원의 학원비는 최소 월 300만원에 달한다. 어림잡아 연간 4000만원~5000만원가량이 n수 비용으로 들어가는 셈이다.

특정 분야에 인재가 지나치게 쏠린다는 건 다른 중요한 분야에 커다란 인재 구멍이 생길 수 있다는 뜻이다. 미국과 중국을 비롯해 전 세계 주요 국가들은 반도체·인공지능(AI)·바이오·모빌리티 등 미래 첨단분야 인재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하지만 AI 인재 육성과 우주강국 도약의 원대한 국가 비전도 우수한 인재 확보 없이는 실현이 불가능하다.

진정한 선진경제의 길로 들어서려면 다양한 분야의 인재 수급이 원활하게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지나친 의대 쏠림으로 인한 첨단 과학기술 분야의 인력 공백과 미래 경쟁력 약화가 현실이 될 조짐이 이미 나타나고 있다.

2024학년도 입시에서 연세대 인공지능(AI)학과의 경우 수시 선발 정원이 39명인데, 최초 합격생이 대부분 등록을 포기해 38명이 ‘추가 합격’했다.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는 미등록 비율이 137%, 반도체공학과는 95%였다. 미등록 비율이 100%를 넘는 건 최초 합격자 전원과 일부 추가 합격자까지 등록을 포기했다는 뜻이다.

◊ 이공계 분야의 경제적인 인센티브 창출 위한 제도적 뒷받침 절실

의대 정원이 늘어나면 쏠림 현상이 해결될 것으로 보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늘어난 정원이 수험생과 학부모의 ‘희망고문’하는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오히려 쏠림을 더 가속할 수도 있다. 단기간에 획기적으로 많은 수를 늘릴 수 없다면 의대 정원 확대의 당위성에 대한 논의는 의대 쏠림 해결과 분리해서 보는 편이 낫다.

의대에 진학하겠다는 걸 억지로 막을 길은 없다. 하지만 국가 경쟁력을 위해 중요도가 높은 이공계 분야에서 세제 혜택과 보조금 지급 등 인센티브로 이공계 분야의 기술개발과 우수 인재 이탈 방지를 제도적으로 뒷받침을 할 수는 있을 것이다. 누구나 쉽게 창업에 도전할 수 있고, 실패해도 그 과정을 통해 배운다면 다시 일어서도록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활력 넘치는 벤처창업 생태계 구축도 절실하다.

더 장기적인 안목에서 교육도 달라져야 한다. 어린 자녀들의 재능과 적성을 진로와 매칭시키기 위한 세심한 배려와 노력도 필요하다. 제2의 임윤찬과 손흥민, 나아가 한국의 아인슈타인이 될 수도 있는 재목을 못 알아보고 의대 진학을 강요한다면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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