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은 떴지만… 여전한 정부 견제론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여권의 총선을 이끌 ‘구원투수’로 등판한 지 보름이 지났지만, ‘정부·여당 견제를 위해 야당 후보가 당선돼야 한다’는 여론은 줄지 않고 있는 것으로 12일 나타났다.
한국갤럽이 지난 9~11일 실시해 이날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4월 총선에서 ‘야당 후보가 당선돼야 한다’는 응답은 51%, ‘여당 후보가 당선돼야 한다’는 응답은 35%였다. 이는 작년 12월 5~7일 실시한 조사 수치와 똑같은 결과다. 한 위원장 등판 전후 여론 변화가 없는 것이다. 정당 지지도 역시 국민의힘 36%, 더불어민주당 34%로 한 달 전과 같았다.
전날 발표된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의 전국지표조사(NBS)에서는 오히려 ‘정부 견제론’과 ‘야당 심판론’의 간격이 더 벌어졌다. ‘야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응답은 50%로 한 위원장 취임(12월 26일) 전인 12월 18~20일 실시한 같은 조사보다 5%포인트 상승했다. 이는 작년 5월 이후 자체 조사 결과 가장 높은 수치다. 반면 ‘여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응답은 한 위원장 취임 전 조사 당시 43%보다 4%포인트 하락한 39%였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한동훈 효과’가 없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왔지만, 갤럽의 장래 지도자 선호도 조사에 따르면, 한 위원장의 지지도는 한 달 전 16%에서 이달 22%로 6%포인트 상승했다. 1위인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23%였다. 갤럽 관계자는 “한 달 만에 개인 지지도가 6%포인트 상승한 것은 어마어마한 것으로 확실히 컨벤션 효과는 있었다”면서도 “결국 한동훈 개인에게 쏠린 관심과 주목이 다른 요인에 의해 상쇄돼 여권 지지까지 이어지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다른 요인’과 관련해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피습 사건, 이준석 전 대표의 탈당 및 신당 창당 등과 함께 ‘김건희 특검법’이 거론된다. 갤럽 조사에서 대통령에 대한 부정 평가 요인으로 ‘김건희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가 10%로 급부상했다. 이는 경제·민생·물가(16%) 다음으로 높은 수치였다. NBS 조사에서도 거부권 행사가 잘못됐다는 응답은 65%, 잘했다는 응답은 23%였다.
이는 복수의 신년 여론조사 결과와 대동소이한 것으로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다. 갤럽 등의 신년 조사에서 거부권을 행사하지 말아야 한다는 응답은 모두 60% 이상이었지만, 윤 대통령은 지난 5일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는 결국 중도층의 실망으로 이어졌다. 갤럽 조사에서 중도층의 정당 지지도는 민주당 34%, 국민의힘 24%였다. 중도층은 총선에서도 여당 승리(27%)보다 야당 승리(56%)를 원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 위원장의 ‘개인기’로 여권 위기를 뚫는 데 한계가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는 “여권 위기의 본질은 대통령 내외분인데 한 위원장은 대통령과 특수 관계라고 하니 할 말은 하면서 좀 다를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며 “그런데 ‘김건희 특검법’에서 보듯 핵심 문제를 못 푸니 그 기대가 꺾인 것”이라고 했다.
결국 여권이 ‘한동훈 효과’를 제대로 흡수해 총선에서 승부를 보려면 ‘김건희 여사 리스크’부터 풀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다만 여권 관계자들은 “특검 대상인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보다 특검과 관계없는 명품 백 수수 문제가 더 크다”고 말한다. 일반 국민들에게는 영상으로 생생하게 공개된 김 여사의 명품 백 문제가 뇌리에 각인돼 있고, 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특검법 찬성 여론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상일 케이스탯컨설팅 소장은 “한동훈 리더십이 국민의힘을 체질적으로 바꿔낸다는 평가를 받으려면 역시 윤 대통령과의 관계, 김 여사 문제에 대한 상징적 조치들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때문에 대통령실에선 이 문제와 관련해 입장을 밝히는 방안이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에선 “윤 대통령이 신년 회견이나 방송 대담 등을 통해 직접 입장을 밝히며 이 문제를 털고 갈 가능성이 있다”는 말도 나온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대통령이 신년 부처 업무 보고를 국민 토론회 형식으로 진행하고 있는 만큼, 김 여사 이슈에 대해 별도의 입장을 밝히는 방안이 내부적으로 검토되고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윤 대통령도 다양한 의견을 듣고 있다”며 “대통령이 결심을 하면 시기와 방식을 정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여권에선 윤 대통령이 신년 회견보다 방송 대담 등 다른 방식을 통해 관련 입장을 밝힐 가능성도 거론된다.
(여론조사 관련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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