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길목’ 홍해와 ‘원유 동맥’ 호르무즈, 동시에 위기 맞은 건 처음
“우리 무역 물동량의 16%가 통과하는 홍해와 원유 수입의 72%가 지나는 호르무즈 해협에서 동시에 경고등이 켜진 건 사상 처음입니다.”
12일 한 무역업계 관계자는 중동발(發) 공급망 대란을 우려하며 이같이 말했다. 무역 의존도가 약 75%에 달하는 한국 경제의 핵심 공급망 길목 두 곳에서 전례 없이 동시에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서 산업계는 비상사태로 돌입하고 있다.
세계 핵심 교역 항로인 홍해와 호르무즈 해협에서 군사 분쟁이 동시 다발적으로 벌어지고, 두 달 전부터 운항 축소가 이어지고 있는 파나마 운하의 ‘가뭄 사태’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교역의 99%를 해운에 의존하는 한국은 연간 교역 물동량의 약 26%(2억6000만t)가 이 세 항로를 지나는 것으로 추산된다.
◇韓, 유럽 수출과 중동 원유 수입 차질
이번 공급망 대란의 전운은 최근 살아나고 있는 한국 수출에 타격을 줄 수 있어 특히 우려스럽다. 당장 주요 해운사들은 지난달 중순부터 홍해 사태로 인해 수에즈 운하 대신 아프리카 대륙을 돌아가는 ‘희망봉 항로’로 우회하고 있는데, 운송 기간 연장과 물류비 상승의 타격을 입고 있다. 우회 노선은 기존 대비 평균 14일 운항 일수가 늘어 선박 공급 감소 효과로 이어지고, 운임 인상이 불가피하다. 글로벌 해운 운임 지표인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후티 반군 공격이 시작된 작년 11월 이후 2배 가까이 올라 12일 기준 2206.03을 기록했다. 여기에 선박 부족으로 국내 1위 해운사인 HMM은 조만간 임시 선박 4척을 북유럽·지중해 노선에 긴급 투입하기로 했다.
특히 최근 한국 수출을 견인하고 있는 자동차, 배터리 등 핵심 산업에 타격도 우려된다. 작년 대(對)유럽연합(EU) 수출액은 약 683억달러(약89조6000억원)로 역대 최대를 기록하며 한국 연간 수출액 6327억달러(약 830조원)의 10.8%를 차지했다. 주요 수출 품목은 자동차, 기계와 ‘K배터리’의 양극 소재 등이었는데, 대부분 해운에 의존한다. 납기가 급한 일부 중소 선사는 화주(貨主)의 요구에 따라 위험을 무릅쓰고 수에즈 운하를 직통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될 경우 국내 수입의 약 70%를 차지하는 원유와 천연가스(LNG) 가격 인상도 불가피하다. 사우디의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인 네옴시티 효과로 늘어난 기계·철강 수출 등 늘어난 중동 수출에도 악재다. 사우디 수출은 2017년 이후 처음으로 작년 50억달러(약 6조5700억원)를 회복했고, 아랍에미리트 수출도 2018년 이후 첫 40억달러(약 5조2500억원)를 상회했다.결국 한국 기업의 수출 경쟁력은 떨어지고, 에너지 자원 등 수입 부담은 늘면서 무역 수지 악화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2일 수출 비상대책반 회의를 개최하고 “현재 수출 물품 선적과 석유·천연가스 등 에너지 도입은 정상적”이라고 밝히면서 “중동 지역 불확실성 심화로 향후 사태 추이를 예단하기 어렵기 때문에 유관 부처·기관 간 협력체계를 바탕으로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할 것”이라고 했다.
◇테슬라 獨 공장 중단…공급망 차질 현실화
이 사태는 한국은 물론 글로벌 공급망 전체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유럽·지중해를 향하는 홍해 항로는 세계 컨테이너 물동량의 30%를 책임지고 있고,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천연가스(LNG)의 3분의 1, 석유의 6분의 1이 지나는 ‘에너지 동맥’이기 때문이다. 공급망 위기는 이미 가시화했다. 로이터 등에 따르면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는 11일(현지 시각) 오는 1월 29일부터 2주 동안 독일 베를린 공장 가동을 중단하기로 했다.
‘유가 리스크’도 커지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세계 주요국들은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을 위해 중동 산유국 수입 비중을 늘려왔기 때문이다. 당장 11일 미국 선박 나포 소식에 국제유가는 장중 2% 이상 급등하기도 했다. 석유 전문 매체 오일프라이스닷컴은 배럴당 80달러 밑인 국제유가가 3월 말 110달러 수준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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