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 끼 식사 2500만원’ 주인 없는 기업 ‘회장 연임’ 요지경

조선일보 2024. 1. 13. 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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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철원

포스코그룹 지주회사인 포스코홀딩스 사외이사들이 지난해 최정우 그룹 회장과 함께 캐나다 관광지로 초호화 여행을 갔던 사실이 드러났다. 1박 숙박비가 175만원인 최고급 호텔에 투숙하고 전세기와 전세 헬기를 띄우는가 하면 한 끼 식사비로 2500만원을 지출하기도 했다. ‘캐나다 광산 시찰’이라지만 실상은 뇌물성 접대 여행이었다. 포스코홀딩스는 평균 연봉 1억여 원을 받는 사외이사 접대 여행에 5박 7일간 6억8000만원을 썼다. 최 회장이 세 번째 연임을 위해 결정권을 쥔 사외이사들을 호화판으로 접대했다는 의혹을 받기에 충분했다. 최 회장은 ‘셀프 연임’ 논란이 일자 최근 연임을 포기했다.

포스코 사례는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주인 없는 민영화 공기업에서 CEO와 사외이사들이 한통속이 돼 셀프 연임을 하고 호의호식하는 것은 도덕적 해이일 뿐 아니라 주주에 대한 배신 행위다. 사외이사는 대주주의 경영 독단을 견제하고 경영 투명성을 높이라고 앉히는 사람인데 한국에선 기존 경영진의 거수기로 전락했다. KT, 4대 금융지주 등 주인 없는 대기업에서 CEO가 자기 입맛에 맞는 사람을 사외이사로 뽑고, 이들을 ‘거수기’ 삼아 셀프 연임을 시도하는 것이 관행처럼 이루어지고 있다.

경영진 견제·감시라는 본연의 기능은 사라진 지 오래다. 4대 금융지주 사외이사들은 최근 3년간 이사회 의결안 3360건 중 단 13건(0.4%)에 대해서만 ‘반대(보류 포함)’ 의견을 냈다. 그사이 은행의 과도한 이자 장사와 성과급 잔치는 계속됐고, 고위험 투자 상품인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를 수십조 원어치나 팔아 고객에게 막대한 손실을 끼쳤다. 금융지주 사외이사는 평균 8400만원의 연봉에다 회의 때마다 100만원 내외의 별도 수당 등 각종 복지 혜택을 누린다.

미국 기업에선 사외이사의 90%를 기업 경영 경험이 풍부한 전현직 CEO 경영자들로 충원한다. 현재와 같은 사외이사 제도는 경영 낭비 요소이며, 주주 가치를 훼손할 뿐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거수기’로 전락한 사외이사 제도를 근본적으로 수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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