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인구 위기와 함께 ‘위대한 성장의 시대’ 막 내릴 것”

이호재 기자 2024. 1. 13.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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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인구는 황금기로 불렸던 2세기에 110만 명에 달했다.

하지만 376∼382년 로마 제국과 고트족 사이에 일어난 '고트 전쟁', 410년 서고트족이 로마 시내를 약탈한 '로마 약탈'을 거치며 인구가 급감했다.

"한번 인구가 감소한 나라는 다시 그 수준을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2100년이 되면 전 세계 대다수 도시가 '축소 도시'가 될 것이다."

2023년 4분기 합계출산율이 0.6명대로 감소할 것이란 전망치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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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소비 줄며 국가 경쟁력 저하… 전세계가 ‘축소 도시’ 수순 밟아
한국-일본 등 위기에 특히 주목… 2040년 日 지역 절반 소멸 위험
2050년 세계 마이너스 성장 예측…“美, 여전히 경제 강국으로 군림”
◇축소되는 세계/앨런 말라흐 지음·김현정 옮김/456쪽·2만3000원·사이
일본의 노인들이 로봇과 함께 운동 수업을 하고 있다. ‘축소되는 세계’의 저자는 “20세기 일본은 ‘젊은이들의 나라’였지만 현재는 세계에서 고령화된 나라의 선두 주자”라고 했다. 사이 제공
로마의 인구는 황금기로 불렸던 2세기에 110만 명에 달했다. 2000여 년 전에 이미 웬만한 대도시 규모였던 셈이다. 하지만 376∼382년 로마 제국과 고트족 사이에 일어난 ‘고트 전쟁’, 410년 서고트족이 로마 시내를 약탈한 ‘로마 약탈’을 거치며 인구가 급감했다. 7세기 10만∼20만 명, 11세기엔 3만 명으로 줄어들었다. 특히 성벽 안쪽의 일부 땅은 사람들이 살지 않았다. 질병과 강도가 들끓었다. 버려진 땅이라는 뜻의 ‘디스아비타토(Disabitato)’라 불렸다. 한때 제국으로 불리며 세계를 통치했던 로마도 사람이 없어지자 쇠퇴한 것이다. 인구 감소가 도시 몰락으로 이어지는 것이 비단 과거에만 국한될까.

미국 도시계획 전문가인 저자는 신간에서 “여러 국가에서 인구가 줄어들면서 ‘위대한 성장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고 역설한다. 근대에 들어선 뒤 현대 의학이 발달하고 위생상태가 개선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던 시기는 끝났다는 것이다. 인구가 줄어들면 고령화에 따라 생산과 소비가 줄어들고 국가 경쟁력이 자연스레 떨어진다는 논리다. “한번 인구가 감소한 나라는 다시 그 수준을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2100년이 되면 전 세계 대다수 도시가 ‘축소 도시’가 될 것이다.”

저자가 눈여겨보는 국가는 일본이다. 일본의 65세 이상 비율은 1950년대 전체의 5%였지만, 2010년대 30%에 달한다. 2018년 기준 일본의 집 7채 중 1채인 빈집은 2040년에는 3채 중 1채꼴로 늘어난다는 게 저자의 예측이다. 현재 추세대로라면 2040년 일본 지방자치단체 절반이 소멸한다.

한국도 다를 바 없다. 1970년대 한국에선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표어가 유행했다. 하지만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아이 수)이 1960년 6명에서 2022년 0.78명으로 떨어졌다. 2023년 4분기 합계출산율이 0.6명대로 감소할 것이란 전망치도 나왔다. 저자는 한국이 일본과 함께 축소 국가의 선두에 섰다고 지적한다.

문제는 인구 축소가 양극화를 부추긴다는 것이다. 2018년 기준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불가리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지역인 스타라자고라의 2배에 가깝다. 일자리와 돈을 찾아 수도권으로 인구가 유입되고, 지방 도시는 소멸하는 현상이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는 것이다. 프랑스처럼 가족수당, 세금 혜택, 보조금 지급, 유급 육아휴직 등 적극적인 출산 장려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나라도 비용 대비 효과가 좋지 않다는 게 저자의 평가다. 저자는 2050년 무렵이면 세계 경제 성장이 마이너스로 돌아설 것이라고 예상한다.

저자는 다만 미국은 2050년에도 여전히 ‘경제적 강자’로 군림할 것이라 평가한다. 중국, 독일과 비교하면 최근 미국의 출산율 감소 폭이 크진 않고, 15∼30세의 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편이라는 이유에서다. 독일은 이민정책, 중국은 출산 장려 정책으로 인구를 지탱하려 하지만 2050년까진 미국의 우위를 뒤집을 수 없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신간은 그래프와 도표를 바탕으로 각 국가의 인구 변화를 세밀하게 들여다본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시의 적절한 주제를 다루면서 “축소 시대가 왔다는 걸 거부하지 말자”는 주장을 펼치는 것도 흥미롭다. 다만 “늦기 전에 (끓는) 솥에서 나올 방법을 우리는 찾을 것”이라면서도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점은 아쉽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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