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서 지운 것은 흑인 소녀 아닌 阿의 고통
AP, 유일한 흑인 바네사 뺀채 보도
“단순 인종차별 넘어 대륙 지운 것”
기후위기에서조차 인종·빈부간에
차별·불평등 존재하는 현실 적시
우리가 만드는 내일은/바네사 나카테/소슬기 옮김/1만5000원
“당신들은 그냥 사진을 지운 것이 아닙니다. 대륙을 지운 겁니다.”
보도된 사진을 보고 충격을 받은 바네사는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생방송으로 동영상을 올렸다. “제가 활동가로서 별 볼일이 없다는 뜻일까요? 아니면 아프리카 사람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걸까요?”
후폭풍은 만만치 않았다. 많은 언론사가 이 일을 보도하고 SNS에는 바네사를 격려하고 AP를 비판하는 글이 쏟아졌다. AP는 결국 성명을 내고 ‘사진 속 유일한 유색인종’인 바네사가 잘려나갔음을 안정하면서도 “시간에 쫓긴 사진기자가 구도를 고려하다 보니 저지른 실수”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바네사는 AP가 실수했다고 믿지 않았다. 그들은 바네사를 참가자 명단과 기사에서도 지워버렸다.
이 사건은 단순한 인종차별 문제가 아니었다. 바네사는 AP가 자신을 잘라내면서 아프리카 대륙의 기후활동가들을, 기후 위기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 나라가 아프리카라는 사실을 지워버렸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그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아프리카 사람이나 다른 유색인종들이 “기후변화 의제는 백인들을 위한 것”, “백인을 위한 것은 백인한테 맡겨라”라며 비난한 것이었다. 기후 위기는 백인들이 신경 쓰는 문제라는 ‘백인 구세주의’에 동조하는 셈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아프리카 대륙에는 세계 인구의 15%가 살지만, 세계 에너지 관련 이산화탄소 배출량 중 단 2, 3%만 기여했다. 이 책이 출간되기 전 국제구호기구 옥스팜은 영국에 사는 사람이 2020년 첫 2주간 배출할 이산화탄소의 양은 우간다나 다른 아프리카 여섯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한 해 동안 배출할 양보다 더 많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런데도 아프리카는 기후변화로 인한 결과에 적응하는 데 드는 비용의 거의 절반을 부담하게 될 것으로 아프리카개발은행은 추산했다.
우간다를 비롯한 여러 아프리카 국가들이 홍수와 무더위, 가뭄 때문에 생계를 의지하고 있는 작물들이 죽어가며 식량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기후 비상사태로 빈곤이 더 심화되면서 많은 소녀들이 학교에 가지 못하게 됐다. 부모가 음식이나 돈을 받는 대가로 어린 딸을 결혼시킨다. 자원이 가장 적고 기후 위기에 가장 적게 영향을 미친 사람들이 가장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셈이다.
책은 단순히 수줍음 많던 흑인 소녀가 세계적인 기후활동가가 되는 과정을 그린 성장기가 아니다. 바네사가 거리에서 국회, 세계무대로 한 뼘씩 나아갈 때마다 맞닥뜨린 수많은 편견과 차별을 통해 기후 위기에 담긴 자본주의와 인종차별, 백인 구세주의의 모순, 그리고 가장 가난한 나라들의 고통을 보여준다.
“바네사 나카테는 소름 돋는 일깨움을 주고 있다. 그녀는 우리가 모두 폭풍 속에 있지만, 모두 같은 배를 타고 있지는 않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그레타 툰베리)
김수미 선임기자 leol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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