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월의쉼표] 눈에 눈이 들어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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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이었다.
내 앞좌석에 앉아 있던 예닐곱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문득 읽고 있던 책에서 고개를 들더니 제 엄마에게 질문을 퍼붓기 시작했다.
아이가 정답을 장음 눈물, 그러니까 하늘에서 내리는 눈물이라고 대답하자 엄마가 이유를 물었다.
그 남자아이는 정답이 하늘에서 내리는 눈물이라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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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번쩍 뜨였다. 그 눈이 눈(眼)인지 눈(雪)인지를 묻는, 단음과 장음의 구분을 위해 만들어진 그 오래된 질문을 익히 아는 세대로서 그것이 난센스 퀴즈도 아니거니와 대체 어떤 점에서 쉬운 문제라고 하는지 아이의 생각이 궁금했던 것이다.
아이 엄마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아이가 정답을 장음 눈물, 그러니까 하늘에서 내리는 눈물이라고 대답하자 엄마가 이유를 물었다. 엄마, 진짜 눈물은 슬퍼야 나는 거잖아. 하늘에서 내린 눈이 눈에 들어가면 슬퍼? 아니잖아. 그러니까 그 눈물은 진짜 눈물이 아니고 하늘에서 내린 눈이 녹아서 나오는 눈물이지.
나도 모르게 울컥하더니 눈가가 뜨거워졌다. 아이의 생각이 너무 귀하고 또 귀여워서였다. 눈물이 슬플 때만 나는 거라는 저 철석같은 믿음은 얼마나 갈까. 언제쯤 깨질까. 오래전 대학 시절 우연히 책에서 이해인 수녀의 ‘눈물’이라는 시 일부가 인용된 것을 보고 친구와 이야기했던 기억이 났다. 인용문처럼 과연 눈물이 ‘나를 속일 수 없는 한 다발의 정직한 꽃’이 맞는가 아닌가에 대해 친구와 나는 둘 다 동의하지 못했다. 눈물이 순전한 슬픔이나 감동이나 그밖의 어떤 지고한 감정의 충일함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믿기에 우리는 너무 때가 묻어 있었다. 특정한 목적을 위해 가짜로 눈물을 쥐어짜는, 말하자면 눈물 연기를 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그러므로 행여나 타인은 속이더라도 자신은 속일 수 없다고 그때 우리는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와 딸아이에게 물었다. 그 남자아이는 정답이 하늘에서 내리는 눈물이라고 했어. 왜냐면 진짜 눈에서 나오는 눈물은 슬플 때만 나는 거라서 그렇다던데? 너도 그렇게 생각해? 딸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엄마. 눈물이 슬플 때만 나오는 건 아니야. 나는 아홉 살 아이 특유의 생각이 궁금했다. 그래? 그럼 어떨 때 또 눈물이 나오는데? 아이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대답했다. 레고 밟을 때.
김미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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