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이 일본 빈집에서 본 옛 거주인들의 사라진 일상

이복진 2024. 1. 12.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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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독특한 것은 이방인이 타국을 여행하는 이야기가 아닌 빈집에 들어가 그곳에 남겨진 몇십년, 몇백년 전 일본인의 삶을 엿보는 데서 시작한다는 점이다.

1964년 열두 살 때 일본에 처음 온 저자는 마법에 이끌리듯 이곳에 정착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빈집 사냥'에서 시작해 도쿄의 파친코 분석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우리가 갖고 있던 일본에 대한 빈약한 경험과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들을 상당 부분 반대 방향으로 돌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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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일본/알렉스 커/윤영수·박경환 옮김/글항아리/2만원

이 책이 독특한 것은 이방인이 타국을 여행하는 이야기가 아닌 빈집에 들어가 그곳에 남겨진 몇십년, 몇백년 전 일본인의 삶을 엿보는 데서 시작한다는 점이다. 1964년 열두 살 때 일본에 처음 온 저자는 마법에 이끌리듯 이곳에 정착하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외부의 사물은 인간의 결심을 흐려놓기 마련이다.

1970년대에 일본 지방의 집들은 이미 버려지고 있었다. 시골에서의 삶이 전망 없어 불안했던 사람들은 싱크대에는 수저를, 화장실에는 칫솔을 남겨둔 채 급히 터전을 떠났다. 도시화에 박차를 가해 마을 여기저기가 망가지자 저자는 어느덧 이곳은 자신이 원하는 나라가 아님을 깨달았다. 하지만 짐을 꾸리려던 찰나, 무언가가 그의 발목을 잡아당겼다. 쓰루기산에서 시작해 가가와현, 고치현, 도쿠시마현 등에서 100채쯤 되는 집에 들어가 옛 주인들의 일상을 목격할 수 있었다.
알렉스 커/윤영수·박경환 옮김/글항아리/2만원
그는 일본의 과거에 대한 기억이 백지상태이지만, 그것을 상상으로 매울 식견은 있었다. 저자는 마음에 꼭 드는 빈집을 발견해 구입했다. 사람이 살지 않는 그 집에는 먼지가 10㎝ 넘게 쌓여 있었다. 먼지 1㎝마다 최소 20∼30년의 세월을 응축하고 있었는데, 그가 바닥을 쓸고 광을 낼 때마다 역사는 한 층 한 층 자기 존재를 드러냈다. 시골 사람들이 등지고 황급히 달아난 그곳에서 한 서양인은 사라진 일본을 목격한다.

그 집에 살면서, 또 일본 사회로 스며들면서 그는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경력을 쌓았다. 미술품 수집가가 되기도 하고 기업에 근무하면서 사업 감각도 익혔다. 한편 주말이면 교외의 집으로 돌아가 동아시아의 문인 같은 삶을 살았다. 그런 삶이 일본을 비춰 주는 거울이 돼 이 한 권으로 모였다.

‘빈집 사냥’에서 시작해 도쿄의 파친코 분석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우리가 갖고 있던 일본에 대한 빈약한 경험과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들을 상당 부분 반대 방향으로 돌려놓는다. 그저 집을 들여다봤을 뿐인데, 그곳에서 저자는 일본의 사회를 읽을 수 있었다.

이복진 기자 b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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