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연정’ 3인방, ‘낙선 운동’ 위협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개 식용을 금지하는 법안이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외신들이 일제히 “한국 사회의 변화상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이를 주요 뉴스로 다뤘다. 일부 매체는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한국이 후진국 문화에서 비로소 벗어나게 됐다는 취지로 이번 법 통과에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외신들이 다룬 것처럼 개 식용 금지법이 국민정서 변화에 따라 순조롭게 국회 문턱을 넘은 건 아니다. 이미 문재인 정부 때부터 개 식용 금지 법안이 국회에 제출됐고, 2021년 11월 사회적 논의기구가 출범했지만 별다른 소득을 거두지 못했기 때문이다. 관련 단체가 개 식용 금지에 대해 15년 유예를 내걸었고, 정부도 적극적이지 않았다.
국회 관계자는 “정부로서는 이해관계자 반발도 강하고, 어차피 개 식용 수요가 해가 갈수록 주는데 ‘굳이 벌집 쑤실 것 없다’는 태도가 강했다”고 전했다. 결국 사회적 논의기구는 2022년 7월 논의를 ‘무기한 연장’했다. 대선 때 주요 후보들이 개 식용 금지를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지만 다른 공약에 묻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총대를 멘 게 국민의힘 이헌승 의원, 더불어민주당 박홍근·한정애 의원 3인이다. 셋은 국회 연구모임인 동물복지국회포럼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국회를 통과한 개 식용 종식법은 한정애 의원이 지난 6월에 발의한 ‘개 식용 종식을 위한 특별법안’에서 출발한 것이다.
이 법을 처음 냈을 때 반응은 좋지 못했다고 한다. 한 의원은 “공동발의자 서명을 받으러 다니는데 동물복지국회포럼 의원들도 쉽게 서명을 해주지 않았다”며 “다들 개 식용 금지에 대한 마음은 같지만 이를 법으로 금지하는 것에 대해서는 부담을 느꼈다”고 했다. 그 뒤 이헌승·박홍근 의원 주도로 ‘개 식용 종식을 위한 초당적 의원모임’이 결성됐고, 이들이 공동발의에 참여하자 겨우 진전이 됐다고 한다.
이 의원은 “육견협회뿐만 아니라 음식물 쓰레기 처리업 등 개 식용 관련 산업이 의외로 많아 압력이 상당했다”고 전했다. 육견협회는 여야 의원 44명으로 구성된 개 식용 종식을 위한 초당적 의원모임을 가리켜 ‘44명의 국개의원’이라며 낙선운동을 벌이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2022년 농림축산식품부의 ‘식용 개 사육·유통 실태 조사’에 따르면 국내 개 농장은 1156개, 전국 개고기 판매 음식점은 1666곳으로 집계됐다.
그는 “육견협회 반대는 예상 가능했다. 그런데 음식물 쓰레기 처리 업계에서 반발한 건 놀랐다”고 했다. 음식물 쓰레기 업체의 경우 쓰레기를 공장으로 보내 처리하려면 비용이 많이 소요되지만, 개농장으로 보낼 경우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고 한다. 개농장으로 음식물 쓰레기를 보내는 건 불법이라 음성적으로 이뤄진다. 이렇게 처리되는 음식물 쓰레기는 현재 정확한 규모를 알 수 없다.
여론도 부담이었다. 여러 여론조사에서 개 식용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의견이 압도적이었으나, 개 식용을 국가가 나서서 금지하는 것에 대해서도 반대가 높았기 때문이다. 작년 9월에는 국민의힘 자체 여론조사 결과 개 식용 법제화에 대한 의견 중 개 식용을 ‘국가가 법으로 막는 것’에 대한 부정 여론이 과반이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여당 내부가 술렁였다. 육견협회 등은 “먹거리에 국가가 간섭하는 건 헌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또 소관 상임위인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위원들이 개 식용 반대에 미온적이었던 것도 걸림돌이었다. 농해수위는 농어촌을 지역구로 둔 의원들이 많고, 농촌의 특성상 개 식용 연관 인구가 많아 해당 법안에 반감이 강한 편이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여당 소속 위원들은 이 의원이, 야당 소속 위원들은 박 의원이 일일이 설득 작업을 벌였다. 한 의원은 “박홍근 의원이 홍익표 원내대표와 상의해 이 문제를 매듭지었다”고 했다.
여야 합의가 거의 이뤄진 가운데 막판 암초를 만나기도 했다. 농해수위 법안소위에서 민주당이 이미 거부권이 행사된 양곡법과 묶어서 같이 처리하자고 나온 것이다. 여당은 소위에 불참했다. 다만 이 과정에서 박 의원이 “판을 깨지 말자”는 취지로 야당 농해수위 위원을 설득해 법안은 상임위를 통과할 수 있었다. 이 법안은 9일 본회의에 올라 통과됐다.
박 의원은 “다른 사안과 연계시키는 건 맞지 않는다고 봤다”며 “그로 인해 잘 안 됐을 때 책임을 우리가 뒤집어써야 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이건 이거대로, 양곡법은 양곡법대로 처리해야 한다고 의견을 말씀드렸다”고 했다.
그 뒤로도 이들은 현재 현행 동물보호법의 이름을 동물복지법으로 바꾸고 동물의 생명 보호와 안전 보장을 위한 규정을 도입하고자 하는 내용의 법안을 만들고 있다. 개 식용 금지에 이어 동물 복지 관련 법안을 두고 이른바 ‘개연정(개+대연정)’이 계속되는 것이다.
개연정의 한 축은 대통령실이었다. 개 식용 금지는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로 포함됐다. 지난해 11월에는 여당이 당정협의에서 특별법 제정 추진을 공식화하면서 급물살을 탔다. 야당 역시 의원총회를 통해 개 식용 종식법 처리를 당론으로 채택했다. 타임지는 “여러 행정부의 수십 년간의 숙고 끝에 법안이 통과됐다”면서 “윤석열 대통령과 그의 부인은 애완견 6마리를 소유하고 있고 동물에 대한 사랑이 널리 알려져 있으며, 개고기 금지를 공개적으로 옹호해왔다”고 보도했다.
박 의원은 “윤 정부가 출범하고 김건희 여사가 (이 현안에) 관심을 가지면서 여당 의원들에게 바로 영향을 미쳤다”며 “김건희 여사의 말로 입법에 우호적 환경이 만들어진 건 사실이다”고 했다. 김 여사도 지난해 12월 네덜란드 국빈 방문 때 암스테르담 동물보호재단 간담회에 참석해 “개 식용 금지는 대통령의 약속”이라고 했다. 미국 CNN은 “법안이 통과된 것은 부분적으로 영부인 김건희 여사의 관심과 함께 정치적 의지가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한편 국회를 통과한 개 식용 금지법은 식용을 목적으로 개를 사육·증식하거나 도살하는 행위, 개나 개를 원료로 조리·가공한 식품을 유통·판매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식용을 목적으로 개를 도살할 경우엔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이, 사육·증식·유통 시에는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게 된다. 위반 시 벌칙 조항은 법안 공포 후 3년이 지난 날부터 적용된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