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이견, 보수·진보 시민보다 큰 의원들…“나는 중도” 8%뿐[중도, 그들은 누구인가]

정대연·김경민·박채연·배시은·오동욱·이예슬·최혜린 기자 2024. 1. 1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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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국회의원과 시민 사이
시민 여론조사선 33%가 “중도”
국회의원 응답과 4배 이상 차이
윤석열 정부·민주당 동시 부정
중도층으로 이탈 후 머물게 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의 모습을 360도 카메라로 왜곡해 촬영했다. 국회를 ‘민의의 전당’이라고 부르는 것은 국민의 뜻이 법률과 정책에 올바로 반영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민주주의에서 각 정당은 지지층의 선호와 가치를 추구함으로써 다양한 민의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반대로 정당이 갈등을 실제보다 증폭시킴으로써 시민들의 정서적 양극화를 부추기기도 한다. 문재원 기자

8% 대 33%.

국회의원과 시민에게 이념 성향을 물었을 때 스스로가 중도라고 각각 답한 비율이다. 자신을 중도로 규정하는 국회의원은 10명 중 1명이 채 되지 않은 반면 시민은 10명 중 3명 넘게 자신이 중도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경향신문이 지난달 13일부터 이달 4일까지 21대 국회의원(총 298명 가운데 구속 중인 윤관석 무소속 의원을 제외한 297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159명(53.5%)이 답변을 완료한 설문조사에서 이같이 나왔다. 앞서 경향신문은 지난달 12~15일과 19일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18세 이상 남녀 1533명을 대상으로도 웹조사 방식의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국회의원과 시민의 이념 성향과 정책 현안에 대한 선호 등을 직접 비교하기 위해 일반 시민 대상 여론조사 문항 가운데 일부를 뽑아 의원들에게 묻는 방식을 택했다. 국회의원 설문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5.31%포인트, 시민 여론조사는 95% 신뢰수준에서 ±2.5%포인트이다.

국회의원들은 자신의 이념 성향이 자신이 속한 정당의 이념 성향보다 더 진보적(덜 보수적)이라고 평가했다. 자신이 속한 정당은 상대 당에 비해 중도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경향도 있었다.

각종 정책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입장은 대체로 지지층의 정책 선호 방향과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진보 성향 시민들이 많이 지지하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은 진보적 의제에 대한 찬성이 높은 반면, 보수 성향 시민들을 주요 지지층으로 보유한 국민의힘 국회의원은 보수적 의제에 대한 찬성 여론이 높았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정책 현안에서 양대 정당 의원들의 견해차가 일반 시민 내 진보·보수의 견해차보다 더 컸다. 각종 정책에 관한 시민사회 내 견해차보다 국회 내 이견의 폭이 더 넓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국회의원과 시민 모두에게 자신의 이념 성향을 0~10점 가운데 고르도록 했다. 0~4점은 진보, 5점은 중도, 6~10점은 보수라는 의미이다. 설문에 응한 국회의원 159명(민주당 103명, 국민의힘 45명, 정의당 5명, 기타 정당·무소속 6명) 가운데 자신의 이념 성향이 중도(5점)라고 답한 사람은 12명이었다. 당별로는 민주당 5명, 국민의힘 6명, 기타 정당·무소속 1명이었다. 전체 응답 국회의원의 8%에도 못 미친다. 시민 조사에선 같은 질문에 33%가 자신이 중도라고 답했다.

국회의원 중도는 시민 중도의 4분의 1

의원들, 당과 이념 일치시키면서

상대보다 소속당에 ‘중도’ 평가

총선 승리 위해 ‘확장성’ 염두

합리적·실용적 입장 호소한 것

국회의원과 시민 간에 중도층의 크기가 4배 넘게 차이 나는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박선경 고려대 글로벌한국융합학부 교수는 이를 ‘당파적 분화’란 정치학 용어로 설명했다. 당파적 분화란 정책이나 태도 등에서 진보·보수 진영 간 이질성이 높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한국은 정치 발전에 따라 거대 양당 간 이념적 차이가 점차 선명해지는 당파적 분화가 진행돼왔다. 국회의원들은 진보와 보수로 갈라진 소속 정당과 이념 성향을 일치시키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민주당 국회의원 중 87%가 자신을 진보라고, 국민의힘 국회의원 중 84%가 보수라고 밝혔다. 총선이 임박해 중도를 표방한 신당 논의가 활발한 시점이라 신당에 합류할 의사가 없는 현역 의원들의 경우 자신을 ‘중도’로 규정하길 꺼렸을 수도 있다. 반면, 시민들은 지지 정당에 따른 당파적 분화를 겪는 비율 못지않게 윤석열 정부와 민주당 모두에 대한 부정적 평가 때문에 중도층에 머무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박 교수는 “양대 정당이 유보적 태도를 취하고 있는 중도 유권자를 자기편으로 끌고 오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해석했다.

국회의원들이 중도 유권자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은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각 당의 이념 성향을 점수로 매겨달라고 했더니, 민주당과 국민의힘 의원 다수가 자신이 속한 정당에 대해 상대 당 의원들보다 중도에 가까운 점수를 매겼다. 민주당 의원들이 매긴 민주당의 이념 성향은 평균 4.17점이었는데, 국민의힘 의원들은 민주당에 3.93점을 줬다. 국민의힘에 대해서는 민주당 의원들이 8.34점을 줬지만, 국민의힘 의원들은 7.11점을 줬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민주당에 대해 민주당 의원들보다 더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민주당 의원들은 국민의힘에 대해 국민의힘 의원들보다 더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한 것이다. 양당 의원들이 자신이 속한 정당의 이념 성향에 매긴 평균값(민주당 4.17점, 국민의힘 7.11점)은 시민들이 매긴 평균값(민주당 3.53점, 국민의힘 7.36점)보다도 중도에 가까웠다.

실용주의·국민통합·민생 중시 등 ‘중도 정치’와 연관될 법한 설명 8개를 주고 동의 여부를 물었을 때도 양대 정당 의원은 긍정적인 평가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다. 신현기 가톨릭대 행정학과 교수는 “중도 정당이 없는 상황에서 상대방을 각각 극좌·극우에 위치시키고 자신은 합리적·실용적이라고 호소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도 확장성을 염두에 둔 반응이라는 것이다.

https://www.khan.co.kr/kh_storytelling/2024/polisurv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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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나는 소속 정당보다 진보적”

지지층과 정책 선호 유사하지만

양당 의원, 시민들보다 입장차 커

“갈등 자체는 민주주의에 긍정”

일부 선호 불일치는 각 당에 고민

민주당·국민의힘·정의당 의원 모두 자신의 이념 성향보다 소속 정당의 이념 성향이 보수적이라고 평가한 대목은 흥미로웠다. 민주당 의원들이 스스로 매긴 이념 성향 평균값은 3.23점이었는데, 민주당에는 4.17점을 줬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그 값이 각각 6.73점과 7.11점, 정의당 의원들은 2.00점, 3.00점이었다. 각 당 소장파 의원들의 당 주류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담겨 있을 수 있다는 해석이 나왔다. 민주당 의원 중 일부가 ‘나는 진보인데, 당이 충분히 진보적이지 않다’라거나, 국민의힘 의원 중 일부가 ‘나는 개혁보수인데, 당이 지나치게 보수적’이라고 평가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33가지 정책 현안을 국회의원들에게 제시하고 시민 여론조사 결과와 비교한 내용에서도 주목할 만한 특징이 포착됐다. 현안 추진 방향을 담은 진술에 대해 ‘전혀 비동의’(1점), ‘별로 비동의’(2점), ‘대체로 동의’(3점), ‘매우 동의’(4점) 가운데 고르도록 한 다음 각 집단이 내놓은 답변의 평균값을 구했다. 그랬더니 현안 33개 가운데 30개에서 양대 정당 의원 간 견해 차이가 진보·보수 시민 집단 간 견해차보다 크게 나타났다.

민주당·국민의힘 의원 간 평균값 차이가 1이 넘는 현안은 13개였다. 진보가 선호하는 의제 중에선 원자력 발전 감축(1.53), 북한과 우호적 관계 유지(1.33), 장애인단체 지하철 시위 보장(1.10), 미·중 균형외교(1.12), 최저임금의 과감한 인상(1.08), 동성 커플에 동등한 권리 부여(1.05), 산업재해 발생 기업 대표 처벌 강화(1.04)가 이에 속했다. 보수가 선호하는 의제 중에선 긴축재정(1.28), 선별복지(1.18), 사형 집행 재개(1.18), 법인세 축소(1.08), 대일 협력 강화(1.05), 상속세 폐지·축소(1.03)에서 차이가 컸다.

반면 시민 여론조사에선 진보·보수 응답자 간 입장차가 가장 컸던 대일관계(0.96)도 평균값 차이가 1을 넘지 않았다. 시민보다 국회의원 사이의 이견의 강도가 높은 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신 교수는 “각 정당이 정책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지지자의 요구를 집약하는 측면이 있다”면서도 “사회적 갈등이 심하지 않은 사안에 대해 정치 엘리트가 시민사회의 이념적·정책적 양극화를 추동·심화한다는 설명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양대 정당이 갈등을 실제보다 증폭시켜 지지자를 동원하고, 이로 인해 사회적 갈등이 격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진보·보수 진영 간 적대적 갈등을 초래하는 ‘정서적 양극화’가 문제일 뿐 정당 간 정책적 차이가 선명한 ‘이념적 양극화’ 자체를 나쁘게 봐선 안 된다는 반론도 나온다. 박 교수는 “오히려 시민 간에는 입장차가 큰데 정당 간에는 입장차가 작다면 시민의 선호를 정치가 반영하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라면서 “갈등을 잘 드러내는 것은 민주주의에 긍정적 요소”라고 말했다.

정당과 지지자 선호 불일치 문제

국회의원들은 정책 선호 방향이 대체로 지지층과 유사했다. 성장보다 분배, 최저임금의 과감한 인상, 원자력 발전 감축, 동성 커플에 동등한 권리 부여, 장애인단체 지하철 시위 보장에 대해서는 민주당 의원과 진보 성향 시민의 동의율이 높았고, 국민의힘 의원과 보수 성향 시민은 반대가 많았다. 강력한 법과 질서, 상속세 폐지·축소, 선별복지, 미국 최우선 외교, 대일 협력 강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이스라엘 지원에 대해서는 그 반대였다. 약자를 위한 사회적 지원 강화, 빈부 격차 축소는 정부 책임, 가난한 사람에 대한 혜택 축소 반대, 안정적 고용형태 확대,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강한 규제, 민간 일회용품 사용 강력 규제, 국제사회에서의 역할 확대, 무기체계 강화, 이주노동자·이민자 차별 방지를 위한 개입에 대해서는 전체 의원들과 시민 모두 합의 수준이 높았다.

양대 정당 의원과 지지자들의 선호가 어긋나는 사안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국가의 시장 불개입, 사형 집행 재개에 대해서는 진보 성향 응답자 다수가 찬성했으나, 민주당 의원들은 반대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다수가 재정 긴축에 반대하고 동성 결혼의 법적 보장에 찬성했지만, 진보층에서는 찬반이 팽팽했다.

마찬가지로 산업재해 발생 기업 대표 처벌 강화, 표현의 자유 제한, 공기업 민영화에 대해서는 보수 성향 응답자 다수가 찬성했지만, 국민의힘 의원들은 반대했다. 대북 인도적 지원에 대해서는 보수 성향 시민 다수가 반대한 반면 국민의힘 의원 다수가 찬성했다. 국민의힘 의원 다수는 법인세 축소에 찬성하고 북한과의 우호적인 관계 유지가 평화를 위해 가장 중요하다는 데 동의하지 않았지만, 보수 시민 내에선 찬반이 비슷했다.

이런 이슈들은 각 정당과 의원들에게 고민을 안긴다. 박 교수는 “정당이 입장을 바꿀지 여부는 사안의 중요성과 파괴력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권자의 표심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강력한 사안으로 떠오른다면 의원들이 지지층 선호에 따라 의견을 바꾸겠지만, 이슈 파괴력이 약하다면 신념을 유지할 것이란 설명이다.

국회의원과 지지자의 선호 불일치 문제에 대한 평가는 정치인의 역할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정치인을 유권자가 원하는 대로 행동해야 하는 ‘대리인’으로 규정하면 선호 불일치는 교정해야 할 대상이지만, 정치인을 각자의 판단에 따라 공익을 위해 행동하는 ‘수탁자’로 여기면 다르게 볼 여지가 있다. 신 교수는 “유권자의 선호를 반영하되 최소한의 범위에서 의원이 자율적·독자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오히려 민주주의에서의 심의·숙고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가치가 있다”면서 “지지자의 선호만을 반영할 경우 자칫 포퓰리즘으로 흐를 여지도 있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에서 가장 중요한 정책 분야에 대한 의견은 대체로 일치했다. 민주당·국민의힘 의원과 시민 모두 ‘저출생·고령화 대책’을 1순위로 꼽은 경우가 가장 많았다. 이어 민주당 의원들은 경제적 불평등 완화-지방소멸 대응 순으로 골랐고, 국민의힘 의원들은 경제성장-지방소멸 대응 순이었다. 시민의 경우 보수 성향은 경제성장-경제적 불평등 완화 순이었고, 진보 성향은 경제적 불평등 완화-경제성장 순이었다.

◇어떻게 조사했나?=국회의원 설문조사는 지난달 13일부터 이달 4일까지 21대 국회의원(총 298명 가운데 구속 중인 윤관석 무소속 의원을 제외한 297명)을 대상으로 실시했으며, 159명(53.5%)이 답변했다. 국회의원 설문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5.31%포인트이다.
시민 여론조사는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지난해 12월12일~15일, 19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533명을 대상으로 웹(온라인)조사 방식으로 진행했다. 표본은 한국리서치 설문에 응하기로 미리 동의한 마스터샘플(지난해 11월 기준 86만여명)에서 지역·성·연령별 비례를 할당해 추출하고 가중치를 부여해 보정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5%포인트이며, 응답률은 4.4%다. 결과값은 소수점 첫째 자리에서 반올림해 정수로 표기했으므로 합이 100%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시민 여론조사 관련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특별취재팀=김재중 스포트라이트부 부장, 배문규(데이터저널리즘팀)·심진용(스포츠부)·정대연(정치부)·권정혁(경제부)·문재원(사진부)·채희현(편집부) 기자

정대연 기자 hoan@kyunghyang.com, 김경민 기자 kimkim@kyunghyang.com, 박채연 기자 applaud@kyunghyang.com, 배시은 기자 sieunb@kyunghyang.com, 오동욱 기자 5dong@kyunghyang.com, 이예슬 기자 brightpearl@kyunghyang.com, 최혜린 기자 cher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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