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영, 예멘 내 후티 시설 공습…확전 위기 극대화
미국과 영국이 팔레스타인 지원 명목으로 홍해에서 상선을 공격 중인 예멘 후티 반군에 대한 대응으로 예멘 내 후티 통제 영토를 공습하며 가자지구 전쟁이 지역 전쟁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극대화됐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11일(이하 현지시각) 성명을 내 "내 지시에 따라 미군은 영국과 함께 호주, 바레인, 캐나다, 네덜란드의 지원을 받아 예멘 내부 여러 목표물에 대한 공습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 밝혔다. 그는 후티 반군의 상선에 대한 27회에 걸친 공격으로 50국 이상의 국가가 영향을 받았고 지난주 14개국이 최후 통첩까지 냈다며 "오늘 방어 조치는 이러한 광범위한 외교 활동과 후티 반군의 상선에 대한 공격 확대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필요시 "추가 조치 지시를 망설이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영국 국방부도 12일 보도자료를 통해 자국 공군이 예멘 북서부 바니에 위치한 정찰·공격용 무인기(드론) 발사 기지 및 압스에 위치한 순항미사일과 무인기 발사에 이용된 비행장을 정밀 공습했다고 밝혔다. 영 국방부는 이번 공습으로 "초기 후티 반군의 상선 위협 능력이 타격을 입었다는 초기 징후가 있었다"는 평가를 내놨다.
홍해 인근 예멘 서부 수십 곳이 이번 공습 대상이 된 것으로 보인다. 알렉스 그린키워치 미 공군 중장은 11일 성명에서 방공·레이더 시스템, 생산 시설, 발사 시스템, 탄약고 등을 포함한 16곳 위치의 60개 이상 목표물에 대한 공습을 수행했다고 밝혔다. 한 미국 당국자는 이번 공격은 상징적 수준에 그치지 않고 후티 반군의 군사력을 실질적으로 약화시키기 위함이었다고 <로이터> 통신에 설명했다. 미 중부사령부(CENTCOM)는 지난달 미국 주도로 창설한 홍해 안전 항행을 위한 다국적 태스크포스(TF) '번영의 수호자 작전'과는 별개라고 덧붙였다.
이번 공습은 후티 반군이 홍해 항로에서 이스라엘과 연계돼 있다고 주장하며 민간 선박을 잇따라 공격한 데 따른 것이다. 미국 등의 거듭된 경고에도 후티 반군 쪽은 오히려 공격 규모를 키웠다. 바이든 대통령은 11일 성명에서 후티 반군이 9일 최대 규모 공격을 통해 미국 선박을 직접적으로 겨냥했다고 강조했다.
후티 반군 쪽도 공습 사실을 확인했다. <로이터>는 한 후티 반군 당국자가 사나, 사다, 다마르, 호데이다에 대한 "습격"이 있었음을 확인하고 "미군, 시온주의자, 영국의 침략"으로 칭했다고 전했다. 통신은 목격자들이 하나 공항 인근 군사 기지, 타이즈 공항 인근 군사 기지, 호데이다에 있는 후티 해군 기지 등이 공격당했다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AP> 통신도 사나 현지 자사 기자들이 11일 이른 시각 네 번의 폭발음을 들었다고 전했다.
미 CNN 방송은 후티 반군 쪽이 12일 성명을 내 이번 공습에 대한 보복으로 이미 홍해에서 미국 및 영국 군함에 대한 보복 공격을 시작했다고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로이터> 통신은 후티 반군 대변인이 이번 미국 등이 공습엔 정당성이 없으며 선박 공격을 계속할 것이라고 다짐했다고 전했다.
이번 대응으로 전장이 사실상 예멘까지 확대되며 가자지구 전쟁이 지역전으로 비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지난해 10월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 남부를 습격한 뒤 이란이 지원하는 이라크와 시리아 민병대는 이들 나라에 배치된 미군을 공격해 미군은 이에 대해선 종종 공습으로 대응해 왔지만 후티 반군 관련 예멘 내부 공습은 꺼려 왔다. 불안정한 휴전 상태에 있는 예멘 내전에 다시 불을 붙일 수 있기 때문이다.
<로이터>를 보면 12일 사우디아라비아 외교부는 성명을 내 미국과 영국이 에멘 내부에 공습을 가한 것과 관련해 자제 및 "확전 방지"를 촉구하며 "큰 우려"를 표명했다. 예멘 내전에서 이란은 후티 반군을, 사우디아라비아는 정부군을 지원해 왔다. 지난해 사우디와 이란이 국교를 정상화하며 대리전 성격이 짙은 예멘 내전에도 지난해 10월까지 임시 휴전이 이어졌다.
예멘의 후티 시설 공격은 후티 반군을 지원하는 이란을 자극할 위험도 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이란 외교부 대변인 나세르 칸나니는 "이러한 공격은 이 지역의 안보 불안과 불안정성에만 기여한다"며 규탄했다. 통신은 11일 수십 명의 반전 운동가들이 미국 뉴욕의 타임스퀘어와 백악관 밖에서 예멘 공습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고 덧붙였다.
미국이 확전 위험을 감수하고 예멘 내부 공격을 감행했지만 일각에선 효과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미 싱크탱크 워싱턴근동정책연구소의 마이클 나이츠 연구원은 "후티 반군은 미국의 공습이 아무리 거세더라도 선박 공격을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승리"할 수 있다며 "이들(후티)은 아마도 그들을 막을 수 없을 초강대국에 맞서면서 최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가운데 이란은 11일 걸프 해역과 이어진 오만만에서 유조선을 나포하며 긴장을 더했다. 이란 반관영 <파르스> 통신은 이날 이란 해군이 오만만에서 "미국의 이란 석유 절도에 대한 보복"과 "사법부 명령"에 따라 이라크에서 원유를 싣고 튀르키예(터키)로 향하던 유조선 세인트 니콜라스호를 나포했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당시엔 수에즈 라잔호로 불렸던 해당 유조선은 지난해 미국의 제재를 어기고 이란산 원유를 싣고 가다 적발돼 98만 배럴에 달하는 원유를 압수 당했다.
이란은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핵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대이란 제재를 복원한 뒤 오만만 인근 해상에서 종종 유조선을 나포해 왔다. 오만만은 전세계 석유 무역의 5분의 1 가량이 드나드는 호르무즈 해협의 출입로다.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주요 무역로인 수에즈 운하로 향하는 홍해에서 상선을 공격 중인 후티 반군과 함께 이란이 세계 공급망에 대한 위협 신호를 보낸 것으로 보인다.
이에 더해 이란은 지난주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 4주기 추모식에서 폭탄을 터뜨려 90명 가량을 숨지게 한 테러범 중 하나가 이스라엘계라고 주장하며 사건을 이스라엘과 연관시키려 시도했다. 이 사건은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배후를 자처한 상태다. 11일 <파르스>는 이란 정보부가 사건 당시 자살 폭탄 조끼를 입고 범행을 저지른 2명 중 1명이 타지키스탄 시민권을 가진 24살 이스라엘인이며 소셜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IS에 합류했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이란 정보부는 다른 한 명의 주모자도 타지키스탄 출신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11일 열린 국제사법재판소 심리에서 이스라엘을 집단학살 혐의로 제소한 남아프리카공화국 쪽은 이스라엘 최고위층의 말을 증거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집단학살의 의도"를 가지고 행위했다고 주장했다.
관련해 지난해 10월 하마스 습격 직후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이 가자지구에서 "인간의 탈을 쓴 짐승(human animals)"과 싸우고 있다며 가자지구에 대한 전기, 식량, 물, 연료 전면 봉쇄를 선언한 발언 등이 인용됐다. 남아공 쪽은 재판소에 이스라엘이 모든 군사 작전을 즉시 중단할 것을 촉구하는 긴급 명령을 내려달라고 요청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11일 성명을 내 "이스라엘이 집단학살과 싸우고 있는 때 집단학살 혐의로 제소되는 거꾸로 뒤집힌 세상"이라며 크게 반발했다. 이스라엘은 12일 변론에서 혐의를 전면 부인할 예정이다.
국제사법재판소 판결 이론적으로 법적 구속력이 있지만 실제 집행 수단은 마땅치 않다.
[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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