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과 논픽션의 무게추 [책이 된 웹소설 : 검은머리 미국 대원수]
검은머리 미국 대원수
역사를 다루는 소설을 즐기기 위해서는 그 시기의 배경 지식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 불과 한 세대만 지나도 사고방식의 차이가 생기는데 그 간격이 수백년이라면 간극이 클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작가들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역사적 배경을 설명할 때가 많다.
다만 설명이 많아지면 독자는 버거움을 느낀다. 시대적 생생함을 살리려 사용하는 낯선 용어나 말투에서도 혼란을 겪을 수 있다. 역사적 사건ㆍ인물을 다룰 때 무게감을 고려하지 않으면 날선 비판에 직면하기도 한다. 역사 창작물에서 사건ㆍ인물을 기존과 다르게 표현했다가 비판받는 일은 드물지 않다.
최근 2000만 조회를 기록한 대체역사 웹소설 「검은머리 미국 대원수」의 흥행은 주목할 만하다. 작가 '명원'이 쓴 이 작품은 대한민국 육군 대위 '김조윤'이 1893년 미국 이민 2세대 '김유진'으로 환생하며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다.
미국은 자유의 나라로 불렸지만 19세기엔 인종차별이 만연했다. 미래지식을 활용해 혹여 재벌이 되더라도 인종 차별을 극복하기 힘들 것으로 판단한 김유진은 과거로 돌아간 후생에서도 군인의 길을 택한다. 주인공은 소설의 제목대로 검은 머리면서 미국의 대원수까지 오르는 장대한 과정을 걷는다.
「검은머리 미국 대원수」는 역사 소설에서 흔히 보이는 무거움을 최대한 덜어내 가볍고 재미있는 문체로 김유진의 삶을 그려낸다. 소설은 그의 사관학교 시절부터 1차 세계대전, 전간기戰間期(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사이의 과도기)를 거쳐 2차 세계대전과 냉전기에 이르기까지 수십년을 다룬다.
주인공 주변 인물에도 공을 들였다. 역사를 기반으로 해석한 각 등장인물은 김유진의 동반자나 라이벌로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사관학교 시절 친분을 맺은 미국사의 명장, 정ㆍ재계 거물, 조선을 위해 활동한 독립운동가까지 각 인물은 소설 연재가 끝난 지금도 독자 커뮤니티에서 언급할 정도로 매력을 보여줬다.
무거움을 덜어냈다곤 하지만 이 작품이 한없이 가벼운 건 아니다. 겉으로는 경박해 보이는 김유진의 내면은 진지한 고민으로 가득 차 있다. 인종차별부터 수십만 장병을 사지死地로 내모는 군인으로서의 고뇌, 식민지로 전락한 조국을 향한 번뇌 등 작품은 이런 문제를 숙고하는 김유진을 보여주며 경박함과 진지함 사이에서 무게추를 맞췄다.
작품에서 주목할 만한 또 다른 부분은 역사적 상황의 존중이다. 일례로 소설은 김유진이 독일군 명장과 대결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독일군과 미군이 격돌을 앞둔 상황에서 독자들은 승부의 행방을 두고 갑론을박을 벌였다.
실존인물인 명장을 높게 평가하는 독자는 김유진의 당연한 패배를, 김유진의 행보를 충실히 따라온 독자는 충분한 맞상대를 주장했다. 두 장군이 맞선다면 둘 중 하나는 패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작가는 독일 명장의 영역을 존중하면서 김유진이 이긴다는 스토리를 전개했다. 대체역사 장르는 종종 역사적 인물을 폄훼하거나 주인공이 그보다 뛰어난 업적을 이뤘다고 추켜세운다. 주인공의 위대함을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다. 이런 점에서 픽션과 논픽션을 조율한 작가의 선택은 그가 역사를 얼마나 존중했는지를 시사한다.
「검은머리 미국 대원수」는 무거운 역사를 유쾌하고 재미있게 표현한 소설이다. 대체역사 장르의 클리셰(상투적 전개)를 따르지 않아 신선하다.
김상훈 문학전문기자
ksh@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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