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집권 8년, 대만 이젠 바꿔야" "친중 정부 안돼"…선거 D-1 민심
(타이베이=뉴스1) 정윤영 기자 = 2300만 대만 인구의 운명을 결정할 총통 선거가 하루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대만 국민들간 사회적 분열이 커지고 있다. 일부는 8년간 정권을 이끈 집권 민진당을 드디어 심판할 때가 됐다고 말했고, 다른 이들은 지정학적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현 시점에 친중 성향의 정부가 들어서는 위험을 경계했다. 대만에 새로운 미래를 제시해줄 제3정당에 기대를 거는 이들도 존재했다.
대만 총통 선거를 하루 앞둔 12일(현지시간) 타이베이에서 만난 시민들은 일상적인 금요일을 보내며 8년만에 새로운 총통을 선출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하루 뒤 치러질 선거는 중국과의 관계에 있어 '현상 유지'를 추구하는 민진당의 라이칭더, 중국과 경제 협력을 강화하자고 제안하는 국민당 허우유이 그리고 양안관계를 개선하길 원하는 민중당 커원저 후보간 치열한 3파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인구 2300만명에 민주주의 국가인 대만은 자국을 "중국의 양도 불가능한 일부"로 보고 있는 공산주의 국가 중국과 대만해협을 사이에 두고 있는데, 이 해협은 폭 180km에 불과하다. 중국이 대만에 대해 고압적인 태도를 점차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선거의 승자는 전략적 중요성이 높은 대만의 대외 정책을 이끌기 때문에 이번 대만 총통 선거는 전세계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미중 갈등이 첨예한 상황에서 대만은 미국에는 '가라앉지 않는 항공모함'과 같은 존재다. 그만큼 중국 견제에서 안보적으로 중요한 곳이다. 중국이 대만에서 존재감을 크게 키우거나 점령하게 된다는 것은 미국의 핵심인 인도태평양 전략이 힘을 잃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중국에는 남중국해, 동중국해를 발판으로 태평양까지 힘을 뻗치려는 데 있어서 전략적인 요충지다.
또한 대만에는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기업인 TSMC의 주요 공장들이 있다. 이 공장들이 큰 피해를 입거나 파괴된다면 전세계는 경제 위기에 직면할 것이란 진단이 나온다.
이날 익명을 요구한 택시기사는 자신이 국민당 지지자라고 밝혔다. 그는 "요즘 대만 경제가 너무 안좋고 빈부격차가 극도로 심해졌다. 이는 대만이 민진당 정권 때 중국과 사이가 벌어져 경제가 악화했기 때문"이라면서 "나는 대만의 민주주의 체제를 지지하지만, 대만의 민주주의는 차이잉원과 민진당에 의해 나로드니키(인민주의) 체제가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타이베이 시내 노점에서 사과파이를 판매하던 황씨(42)도 대만의 경제를 걱정하며 자신이 선거일 표를 던질 후보는 커원저 후보라고 밝혔다.
그는 "우리에겐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 민진당의 차이잉원 정권이든, 국민당의 마잉주 총통 정권이든 대만은 변하지 않고 똑같았다. 개인적으로 차이잉원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인 평가를 가지고 있는데, 그는 자신의 모든 역할을 행정원장(국무총리격)에게 위임해왔다. 시진핑도 그런식의 리더십을 보이지는 않는다. 살면서 이렇게 조용하고 무능력한 총통은 처음 본다"고 날선 비판을 쏟아냈다.
황씨는 "나는 원래 국민당을 지지하던 사람이었지만, 커원저 후보는 과거 정계에서 본적이 없는 인물같아 이번 선거에서 만큼은 민중당을 지지하기로 결심했다"면서 "커원저가 민진당과 국민당 후보에 비록 지지율이 밀릴지라도 이번만큼은 소신 있게 민중당을 지지하고싶다"고 했다.
타이베이 쇼핑가인 시먼딩에서 만난 대학생 짱(24)씨는 "어렸을 때부터 민진당을 지지해왔기 때문에 내일 나는 라이칭더를 뽑을 것이다. 국민당은 다소 중국 편향적 성향이기에 나의 정치관과는 맞지 않는다. 중국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마잉주 총통 시절 대만은 중국과 과도하게 밀착했다"고 덧붙였다.
이날 만난 취재원들은 대체적으로 중국의 대만 무력 통일 가능성에 회의적인 시각을 보이면서도 일부는 최근 중국에서의 무력 도발이 증가해 일종의 불안감을 느낀다고 호소했다. 실제 중국 당국은 양안 통일이 평화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해왔지만 무력 사용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민진당을 지지하는 짱씨는 "중국과 대만이 최근 몇년새 격하게 싸우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부분은 말싸움을 주고받는데 그쳤다. 하지만 대만에서 최근 중국에 대한 공습 경보가 있었는데, 정말 많이 놀랬다. 마침 그때 카페에 있었는데 휴대폰에 경보가 울리는 것을 듣고 대만이 침공을 당하는게 아닌가 생각했다"고 전했다.
중국이 지난 9일 오후 시창 위성 발사 센터에서 인공 위성을 발사했는데 이번 위성 발사 당시 대만에서는 미사일이 날아간다는 첫 영문 경보가 잘못 발령된 바 있다. 대만 국방부는 이후 이를 수정했다.
반면 국민당을 지지하는 택시기사는 "10년 내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가능성은 '0'이다. 통일도 40~50년 뒤에나 일어날까말까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먼 미래의 일 가지고 왜이렇게 민진당이 중국에 적대적인지 모르겠다. 중국과 싸우는 것보다 사이 좋게 지내는게 훨씬 이득"이라고 했다.
노점 상인인 황씨는 "시진핑이 중국 공산당을 집권한 지가 10년이 넘었다. 우리는 경제를 견고하게 만들어서 국방을 강화해야 하지만, 경제가 최근들어 많이 쇠약해졌는데 만일 중국이 정말 침공을한다면 우리는 정말 붕괴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현지시간으로 13일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실시되는 총통 선거는 입법위원(국회의원) 선거와 동시에 치러진다.
만일 라이칭더가 이번 선거에서 승리할 경우 민진당은 1996년 총통 선거 이후 전례 없는 3연임 기록을 세우게된다. 대만 총통 임기는 4년제이며 중임이 가능하다.
반면 대만에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모든 총통은 국립타이완대학에서의 학위를 보유하고 있는데, 허우유이가 당선될 경우 그는 사상 처음으로 국립타이완대학 출신이 아닌 총통에 이름을 올리게 되고, 커원저가 당선될 경우 그는 대만 역사상 처음으로 민진당 또는 국민당이 아닌 제3 정당에서 총통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다.
올해 유권자 수는 1954만명인데, 국민들이 지정학적 위기 고조 속 실리를 챙기기 위해 야권(국민당·민중당)을 선택할지 아니면 정권 심판론을 뒤로하고 현 정부 체재를 이어갈지 13일 전 세계의 시선이 집중될 예정이다.
yoong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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