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이선균 비극’에 분노한 문화예술인들의 외침
영화감독 봉준호, 가수 윤종신, 배우 김의성 등 문화예술인들이 배우 이선균이 경찰 수사를 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의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영화·방송·매니지먼트 관련 29개 단체로 구성된 문화예술인연대회의는 12일 ‘고 이선균 배우의 죽음을 마주하는 문화예술인들의 요구’ 성명을 발표하고 수사당국, 언론·미디어, 정부·국회에 요구사항을 밝혔다.
봉준호 감독은 경찰 수사 내용의 언론 보도 경위, 이씨 공개 소환조사 등을 거론하며 “경찰의 보안에 한치의 문제가 없었는지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가수 윤종신은 이씨 혐의와 관련 없는 사적 전화통화를 보도한 KBS에 대해 “공영방송의 명예를 걸고 오로지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보도였는가”라며 기사 삭제를 요구했다. 윤씨는 또 “충분한 취재나 확인 절차 없이 이슈화에만 급급한 일부 유튜버를 포함한 황색 언론들의 행태에 대해 언제까지 침묵해야 하느냐”고 울분을 토했다.
연대회의는 정부와 국회에 형사 사건 공개 금지와 인권 보호를 위한 법적 개선을 요청했다. 성명에는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배우 송강호 등 문화예술인 2000여명도 이름을 올렸다. 이들의 지적과 요구는 지극히 정당하다. 이런 비극이 다시 되풀이돼선 안된다는 문화예술인들의 외침에 공감한다.
이씨는 지난해 10월부터 마약 투약 혐의로 경찰의 수사를 받아왔다. 경찰은 간이검사와 정밀감정, 세 차례 소환조사에도 결정적 증거를 찾지 못했다. 이씨가 혐의를 부인했음에도 경찰은 이씨를 공갈·협박한 유흥업소 실장의 진술에만 의존해 수사하면서 피의 사실과 수사 자료들을 언론에 흘렸다. 또 이씨를 소환할 때마다 포토라인에 세웠고, 지난달 23일 마지막 소환에선 19시간 밤샘 조사를 진행했다. 소환 장면 등이 공개되지 않도록 한 경찰 내부 규칙, 심야·장시간 조사 제한 등 인권 보호 규정은 무시됐다.
이씨 사후에도 경찰의 태도는 뻔뻔하기 짝이 없었다. “수사가 잘못되지 않았다”(윤희근 경찰청장)거나 “수사 사항 유출도 전혀 없었다”(김희중 인천경찰청장)며 오리발만 내밀었다. 잘못된 수사 관행을 반성조차하지 않겠다는 후안무치에 시민들은 분노하고 있다. 경찰은 수사과정에 대한 모든 의혹을 낱낱이 규명하고, 제2·제3의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경찰에 맡겨둘게 아니라, 정부와 국회가 나서야 한다.
일부 언론과 유튜버들도 이씨의 비극에 책임이 크다. 유명 연예인이라도 인권과 사생활은 보호돼야 한다. ‘알 권리’를 빙자한 무분별한 보도 행태는 그 자체로 폭력이며 언론의 신뢰를 실추시킬 뿐이다. 언론도 이번 일을 계기로 저널리즘의 책무를 새삼 되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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