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한동훈식 ‘6·29 선언’이 절실하다
국힘, 정권심판론 피해 보수미래로 탄생
수사범위 축소 내걸고 ‘총선 전 특검’ 받아야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집권 3년차를 맞은 윤석열 정부가 4월 총선을 돌파하려면 어떤 비책이 있을까.
국민의힘이 지난 11일 공천관리위원을 발표한 뒤 분위기가 술렁이자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당을 이끄는 건 나”라고 했다. 친윤석열계 핵심으로 꼽히는 이철규 의원이 공관위원에 들어간 점에 ‘윤심 공천’ 의구심이 일자 강한 반론을 편 것이다. 여권의 총선전략 큰 그림이 대통령은 뒤로 숨고 ‘한동훈 간판’을 전면으로 띄우는 흐름이란 게 분명해 보인다.
그 배경은 대통령의 낮은 지지도가 백약을 무효로 만드는 상황이다. 30% 박스권을 탈출하는 게 당장 중요하다. 내각제를 실시하는 일본에서 지지율 20%는 총리 하야 수준인데 대통령중심제 국가도 한때 이 수준에 이른다면 사회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 40%대는 넘어서야 여당 후보들이 수도권 선거를 치를 수 있다. 국민여론을 민감하게 살피는 국정운영이 이뤄진다면 여론조사는 반응하게 돼있다.
그런데 대통령 새해 신년사는 또다시 “이념패거리 카르텔 타파”로 채워졌다. 이태원 참사 같은 사회포용적 담론에 관한 진솔한 언급은 없었다. ‘김건희 여사 특검법’은 거부권을 행사했다. 대안으로 거론된 제2부속실 설치에 대해 대통령실은 “국민 대다수가 원하면 검토하겠다”는 오만한 답을 내놨다. 국정 최고책임자의 ‘가족리스크’에 관해 국민적 우려가 큰 마당에 왜 ‘국민이 바라면’이란 말이 등장하는지, 고압적이란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 모두 민심의 바닥만을 보는 김영삼식 승부사 기질이 필요하다. 고도의 진정성에 기초한 노무현식 정면돌파도 있다. 상황을 피하지 않고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자신감이 특징이다. 신년 기자회견을 내실 있게 열어 1년 7개월의 국정전반을 솔직하게 국민과 주고받고 어려움을 설득하는 용기가 절실하다. 새 정부 출범 후 돌아선 중도민심을 윤 대통령이 특유의 소탈함으로 직접 되돌려야 한다. 거부권을 포함한 국정현안에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이 설명하는 소통의 장이 회복돼야 한다.
이런 ‘정상화’의 과정에 한 위원장이 역할을 한다면 총선비책이 된다.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는 ‘한동훈식 6·29 선언’이다. ‘김건희 특검법’은 국회 재의결 절차라는 시험무대가 놓여있다. 호헌선언을 뒤집고 국민이 원하는 직선제 개헌을 받아들인 과거 노태우 당시 여당대표의 퍼포먼스가 여권의 위기돌파 차원에서 불가피해 보인다. 그 내용은 특검의 수사범위를 좁힌다거나 특별검사 추천대상에 대한 재조정, 피의사실 공표 브리핑의 축소 등을 요구하고 ‘총선 전 특검’을 받는 방법 등 무궁무진하다. 협상 각론과 전향적 아이디어에 관한 전문가들은 여의도에 널려 있다. 국민에게 먹히는 건 한 위원장이 조금이라도 여론을 살핀다는 태도가 드러나는 것이다. 이것이 국민의힘이 정권심판론을 피해 보수진영의 미래로 재탄생하는 길이다.
한 위원장 스스로도 회피만으론 중도보수층까지 복원하긴 힘들 것이다. 총선불출마를 ‘기득권 내려놓기’로 포장했지만 이걸 결단과 희생의 리더로 보긴 어렵다. 더불어민주당 상징적 인물과의 맞대결, 험지출마, 비례대표 끝순위로 배수진을 치는 위험부담 없이는 공허할 뿐이다. ‘선민후사’를 내건 그가 김건희 여사 거취에 대해 국민 예상을 벗어나는 타개방안을 꺼내 들 수만 있다면, 이재명 대표 체제로 아무 변화 없는 민주당은 정치적 패닉에 빠질 수 있다.
정치에서 대중에게 카타르시스를 주는 자체가 최상의 비책이다. 기대 값이 크면 리스크도 큰 법. 한 위원장에 대한 관심이 꺾이면 여권의 총선 전망은 밝지 않다. 총선 패배의 책임을 한동훈이 송두리째 안을 수 있다.
박석원 논설위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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