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바이든 자막' MBC, 허위보도·시청자 해석 차단"[종합]

최기철 2024. 1. 12.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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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불명확한 것 알면서 단정적 보도"
"'미국' 추가로 '바이든 발언' 주장 강화"

[아이뉴스24 최기철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방문 당시 불거진 '바이든, 날리면' 자막 논란과 관련해 법원이 MBC 측에 정정보도 하라고 판결했다.

서울서부지법 민사합의12부(재판장 성지호)는 12일 외교부가 MBC를 상대로 낸 정정보도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MBC의 해당 보도가 허위보도라고 판단했다. 윤 대통령의 해당 발언이 과학적으로 명확히 확인되지 않았는데도 단정적으로 보도했기 때문이라는 게 이유다.

우선 법정 감정인의 감정결과를 근거로 들었다. 감정 결과는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일부 판독 불가) ⓓ판독불가 ⓔ쪽팔려서 ⓕ어떡하나'로 나왔다.

"윤 대통령 말만 변별·분석 불가능"

재판부에 따르면, 감정인은 문제의 발언을 담은 영상에 △배경음악 △주변 인물들의 웅성거리는 말소리 △그 밖의 잡음 등이 섞여 있어 윤 대통령의 발화소리(소리를 내어 말을 하는 현실적인 언어 행위)만 변별해 성문분석을 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의견을 제출했다. MBC와 외교부 모두 이에 대해서는 특별히 다투지 않았다.

2022년 9월 방송된 윤석열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 보도. MBC 뉴스데스크 유튜브 채널 캡처 [사진=MBC 유튜브 채널]

재판부는 "사람의 각 감각은 독립적이지 않기 때문에 사람의 음성을 들을 때에도 청각만이 아니라 청각과 시각 등이 상호작용하게 된다"면서 "사람의 음성은 같은 내용이라도 발언자의 발음·주변 소음·발언 맥락·발언자의 입모양·사전 정보 등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들릴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따라서 언론사가 영상을 통해 사람의 발언을 보도할 때 자막을 추가하는 경우 시청자는 단순히 음성을 듣는 것만으로 발언 내용을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자막을 보면서 발언 내용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게 된다"면서 "만약 자막이 발언내용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할 경우 같은 내용이라도 사람마다 얼마든지 다르게 들릴 수 있어서 정보 전달에 왜곡이 생기게 된다"고 지적했다.

"시청자들이 판단하게 했어야"

재판부는 "이 사건 감정결과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이 '바이든은'이라고 발언했는지 여부가 확인되지 않는다"면서 "그렇다면 피고로서는 자막을 추가하지 않은 채 음성 원본만을 들려준다거나 자막을 추가하더라도 논란이 되는 발언 부분을 공란으로 처리하는 등으로 보도함으로써 시청자로 하여금 발언의 내용을 각자 판단하도록 할 수 있었는데도 진위 여부가 불분명한 '바이든은' 부분을 자막에 추가함으로써 시청자에게 정보를 전달하는데 왜곡이 생기게 했다"고 판시했다.

MBC가 유튜브를 통한 최초 보도 다음날 <뉴스데스크>에서 윤 대통령 해당 발언을 자막 없이 내보내면서 '판단은 국민들 몫'이라고 보도했지만 재판부는 '허위보도' 판단을 뒤집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전날 바이든은 이라고 단정적인 보도를 한 이후에 이루어진 보도로써 사전 정보가 입력된 시청자에게 유의미한 보도라고 평가하기는 어렵다"면서 "이 보도 내용에 따르면 피고 스스로도 자막의 유무에 따라 시청자에게 편견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인식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강조했다.

MBC가 자막에 '미국'을 추가한 것에 대해서는 "시청자로 하여금 '윤 대통령이 미국 의회와 바이든 대통령을 향해 욕설과 비속어를 사용했다' 라고 인식하도록 유도해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한 정도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이 안 한 말 자막으로"

재판부는 "윤 대통령이 '미국'이라고 발언한 사실이 없음은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고, 바이든을 언급했는지 여부는 불분명한 사정 등을 고려할 때 피고는 '윤 대통령이 바이든을 언급했다' 라는 사실적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 '국회'라는 단어의 일반적인 사용례에 반해 '미국'을 자막에 추가했다고 보인다"고 설명했다.

MBC가 '외신들도 이 사건 발언을 일제히 보도함으로써 해외까지 논란이 되고 있다'라고 보도한 부분도 허위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외신이 자체적으로 이 사건 발언을 분석해 보도했다는 사정이 확인되지 않는 한 외신은 피고의 보도 내용을 전제로 했을 가능성이 크다"면서 "피고는 이 사건 발언의 진위 여부에 대한 논란에서 상대적으로 객관적인 위치에 있을 수 있는 외신 보도의 인용을 통해 시청자로 하여금 마치 '외신도 이 사건 보도가 진실하다고 판단했다' 라고 오해하도록 해 정보 전달의 왜곡을 강화했다"고 지적했다.

법원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2022년 9월 22일 미국 뉴욕 방문 중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에 참석했다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48초간 만나 대화를 나눈 뒤 국제회의장을 빠져나왔다.

이 모습은 동행취재에 나선 촬영풀기자단의 카메라에 잡혀 국내 각 언론사로 송출됐고, 이후 영상 점검 과정에서 윤 대통령이 욕설과 비속어를 한 것으로 들리는 장면이 발견됐다.

대통령실 "바이든 아니라 날리면"

MBC는 윤 대통령이 미국 의회와 바이든 대통령을 거론하며 욕설과 비속어를 사용했다고 판단해 당일 자사 유튜브 채널을 통해 국내 언론사 최초로 "이XX 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나?"라는 제목을 단 영상을 동일한 내용의 자막을 달아 게재했다. 같은날 지상파 방송에서는 해당 영상에 "(미국) 국회에서 이XX 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나?"라고 내용을 추가해 보도했다.

그러자 당시 대통령실 김은혜 홍보수석은 "윤 대통령이 예산심의권을 장악하고 있는 거대 야당이 자유와 연대를 위한 국제사회 책임을 이행하고자 하는 정부 기조를 꺾고 국제사회를 향한 최소한의 책임 이행을 거부하면 나라의 면이 서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를 박진 외교부장관에게 전달한 것"이라며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라고 해명했다.

외교부는 언론중재위원회를 통해 MBC와의 조정절차를 밟았으나 결론을 내지 못하자 그해 12월 정정보도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MBC는 판결 직후 "종전의 판례들과 배치되는 이번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잘못된 1심 판결을 바로잡기 위해 곧바로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최기철 기자(lawch@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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