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 운명의 날’ 대만 총통 선거 D-1…각 당 수도권 집중 공략하며 총력 유세전
지난 11일 밤 대만 수도 타이베이의 심장부인 총통부 앞 대로에 녹색 물결이 일었다. 녹색은 대만 집권 민주진보당(민진당)의 상징색이다. 대만 최고 권력을 상징하는 총통부 앞에서 민진당이 총통 선거 막바지 집중 유세를 열며 정권 재창출 의지를 보여줬다.
오후 8시쯤 시작된 이날 민진당 유세 현장은 말 그대로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무대 쪽을 향해서는 이미 한 걸음도 내디딜 수 없는 지경이었지만 늦은 시간까지 지지자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지지자들의 손에는 ‘옳은 사람을 선택해 옳은 길로 가자’라는 구호가 적힌 피켓과 깃발이 들려 있었다. ‘마잉주(전 총통·국민당), 국민당(중국국민당)은 중국으로 돌아가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유세장 한가운데 선 이도 있었다. 주최 측은 이날 유세 참가자 수를 15~20만명으로 추산했다.
오후 9시가 넘은 시각 민진당 소속인 차이잉원 현 총통과 라이칭더 총통 후보, 샤오메이친 부총통 후보가 연단에 올라서자 지지자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20대 지지자 쩡모씨는 “지금 민주 대만을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면서 “우리는 홍콩을 봤고 대만의 민주주의를 위해 우리의 선택은 라이칭더 뿐”이라고 말했다.
4년전 대만 총통 선거에서는 당초 차이 총통의 재선 가능성이 낮게 점쳐졌지만 중국이 2019년 홍콩에서 발생한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강경 진압하면서 이에 대한 반사 효과로 반중 성향이 강한 그가 친중 성향의 국민당 후보를 누르고 재집권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평가가 많았다. 민진당 지지자들은 그 기억을 상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라이 후보도 이날 낮에 진행된 유세에서 “국민당이 주장하는 ‘92공식(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각자 명칭을 사용하기로한 양안간 합의)’이 마지막까지 가면 대만은 홍콩처럼 될 것”이라며 “이는 대만인들이 택할 길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날 총통부 앞 유세장 연단에 선 차이 총통은 “2024년 차이잉원을 한 번 더 믿어달라. 차이잉원은 라이칭더를 믿는다”며 라이 총통의 손을 높이 치켜 들었다. 마이크를 넘겨 받은 라이 후보는 “대만은 새로운 시대를 맞아 새로운 총통과 새로운 입법위원(국회의원 격)을 선출한다”며 “대만이 세계를 향해 갈 것인지 아니면 중국을 향해 갈 것인지, 민주적 가치를 고수할 것인지 아니면 권위주의에 굴복할 것인지 전 세계가 대만의 선택을 지켜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선거를 친중 대 반중 구도로 몰아가며 유권자들의 지지를 호소한 것이다.
대만 총통 선거가 하루 앞으로 다가오면서 대만인들의 선택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이번 선거 결과에 따라 양안(중국과 대만) 관계 뿐 아니라 미·중 관계도 요동칠 수 있기 때문이다.
반중·친미 성향인 집권 민진당에서는 라이 후보와 함께 친미 색채가 강한 샤오메이친 전 주미 타이베이경제문화대표부 대표가 부총통 후보로 나섰다. 8년만에 정권 교체를 노리는 친중 성향 제1야당 국민당에서는 허우유이 신베이 시장과 자오샤오캉 전 입법위원이 총통과 부총통 후보로 출마했다. 제2야당인 대만민중당(민중당) 커원저 총통 후보와 우신잉 부총통 후보도 젊은층의 지지에 힘입어 제3세력으로 부상하면서 집권 기회를 노리고 있다.
여론조사 공표가 금지된 지난 3일 이전에 발표된 조사에서는 대체로 민진당과 국민당이 양강 구도를 형성했다. 그러나 지난 10일 동안 부동층의 표심이 어떻게 움직였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선거 전날인 12일 3당은 수도권 집중 공략에 나섰다. 민중당 커원저 후보는 이날 자신이 시장을 지낸 정치적 고향인 타이베이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만 총통 직선제가 실시된 지 거의 30년만에 제3세력을 대표하는 총통 후보가 출마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자신이 현재 집권 민진당의 가장 강력한 도전자라고 자임했다.
그러면서 “대만 인민은 청(국민당)록(민진당)의 싸움에 이미 진저리가 나있고, 정당의 이익만 따지고 인민의 권익을 돌보지 않는 정치 행태를 증오하며 개혁을 기대하고 있다”면서 “이런 물결이 민중당을 제3세력의 정점에 끌어 올렸고, 2024년은 대만이 제3의 물결의 민주화를 완수하는 역사적 시간”이라고 강조했다. 제3의 대안 세력으로서의 이미지를 부각하며 유권자들에 막판 지지를 호소한 것이다.
커 후보는 선거 운동 마지막 날인 이날 타이베이와 신베이에서 수도권을 집중 공략했다. 오전 기자회견을 마치고 신베이에서 유세를 한 뒤 타이베이로 돌아와 자당 입법위원 후보를 지원했으며, 전날 민진당이 집중 유세를 한 타이베이 총통부 앞에서 선거 전야 행사를 하는 것으로 선거 운동 일정을 마무리 한다. 선거 마지막날 ‘집토끼’ 단속에 나선 것이다.
민진당과 국민당의 마지막 공략 지점도 수도권과 집토끼였다. 양당은 이날 신베이에서 동시에 선거 운동을 마무리한다. 라이 후보는 이에 앞서 타이베이와 신베를 돌며 막판 지지층 결집을 호소한 뒤 자신이 시장을 지낸 남부 타이난에서 저녁 유세를 하고 늦은 시간 신베이 반차오 제2운동장에서 열리는 마지막 유세에 참석한다.
국민당 허우 후보도 이날 타이중을 찾아 중부 지역을 공략한 뒤 저녁에는 신베이로 돌아와 민진당 마지막 유세 장소와 1㎞ 정도 떨어진 반차오 제1운동장에서 마지막 집중 유세를 한다. 신베이는 허우 후보의 고향이자 그가 재선 시장으로 일하던 곳이다.
허우 후보는 투표를 앞두고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백색(민중당)의 힘은 더 이상 잘못된 길로 이끌려서는 안되며 청백은 함께 협력해 민진당을 끌어내려야 한다”며 “표를 낭비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야권이 분열되고 박빙의 승부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막판에 민중당 지지자들의 사표 심리를 부추긴 것이다.
각 당 후보들은 이날 선거 운동이 끝나면서 운명의 하루를 앞두게 됐다. 대만 총통 선거 투표는 입법위원(국회의원 격) 선거와 함께 현지시간으로 13일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진행된다. 오후 8~9시쯤 당선자 윤곽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이번 선거에서 대만 유권자들은 총통·부총통 선거와 지역구 입법위원 선거, 입법위원 비례대표 선거(정당 투표) 등 3가지 투표 용지에 투표를 하게 된다. 각 정당은 유권자들에게 총통 선거 뿐 아니라 입법회에서도 과반 의석을 차지해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할 수 있도록 세 표를 모두 모아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베이징 | 이종섭 특파원 noma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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