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발견] 성남 광주대단지에서 선거를 생각한다
성난 주민들 대규모 반대 투쟁
부산시 빈민 이주지 정책 땐
방치된 채 특수 시설만 집중
선거 때 쏟아지는 장밋빛 구상
무책임 공약 영수증은 시민 몫
올해 4월 10일에 국회의원 선거가 있다. 전국 곳곳에 상대 정당을 비난하는 현수막이 공해 수준으로 내걸려 있는 것도 충분히 스트레스였는데, 최근에는 공천을 둘러싼 정치인들의 온갖 잡음이 뉴스를 가득 채우고 있어서 더더욱 피로하다. 한편 앞으로 3개월 동안 '산단·공단·공공기관 유치' '철도역·철도노선 예타 면제'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 같은 단어도 사방에서 들리게 될 것이다. 공천이 정치인들 이익이 걸린 정치 업계 내부의 문제라면, 이들 개발 공약은 부동산에 관심을 가진 시민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관계된 일이다 보니 더욱 폭발력이 강하다.
1971년 여름의 경기도 성남도 그랬다. 성남시는 김현옥 서울시장이 1969년 9월 1일부터 서울 강북 지역의 빈민 10만여 명을 남한산성 서쪽 산기슭에 쏟아부어 광주대단지를 만들면서 시작되었다. 서울시 측 구상에 따르면 강북 지역에서 빈민들을 내보내고 재개발하는 동시에, 서울에 가까운 경기도 지역에 10만여 명이 사는 새로운 도시를 만들면 일거양득이 되리라는 것이었다. 자급자족이 가능한 공단도 건설해준다는 약속이었다.
하지만 잘 알려져 있다시피 광주대단지에서 현실은 이런 장밋빛 구상과는 판이했다. 이렇게 행정가들이 무리하게 추진한 사업의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심각해지고 있는데도, 1971년 5월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정부와 정치인들은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총선이 끝나자마자 서울시는 분양증 전매를 금지하고, 처음에 분양받은 토지의 대금을 일시에 상환받겠다고 발표했다. 일시에 상환해야 하는 토지 대금은 처음 서울시가 제시했던 금액의 몇 배로 부풀어 오른 상태였다.
공약을 남발했던 정치인들은 침묵했다. 이러한 상황에 분노한 시민들은 국회의원 선거로부터 3개월이 지난 1971년 8월 10일, 광주대단지와 서울 사이에 놓인 수진리고개를 넘어 서울시로 쳐들어가려다 행정 측과 타협했다. 광주대단지에는 이미 10만여 명의 인구가 살고 있었기 때문에 행정가·정치인들이 공약을 제시하는 시늉이라도 했다. 하지만 이 정도로 시민이 살지 않는 지역에 대해서는, 행정가들은 냉혹하고 정치인들은 무관심하다. 부산 해운대구 반송동 정책이주지가 그런 경우다.
정책이주지란 1950·1960년대에 부산 원도심에서 외곽으로 빈민들을 집단 이주시킨 이른바 '철거민촌'이다. 부산시가 정책이주지를 추진한 당시 시장이 김현옥이었다. 그는 부산 원도심 재개발과 정책이주지 건설을 통한 외곽 개발, 그 밖의 행정을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높이 평가받아 서울시장으로 옮겨갔다. 그리고 부산에서 하던 정책이주지 건설 방식을 수도권에 적용해서 광주대단지를 만들었다. 부산시장 김현옥이 추진한 정책이주지, 그리고 서울시장 김현옥이 추진한 성남 광주대단지. 이 두 개의 정책은 개념적으로는 동일하지만 현실에서는 서로 다른 형태로 나타났다. 광주대단지가 지금의 성남시 동북부에 10만여 명을 집단 이주시킨 것이라면, 부산의 정책이주지는 서쪽으로 사하구 장림동에서 동쪽으로 해운대구 반송동까지 수십 군데에 흩어놓은 것이다.
시 외곽 수십 군데에 흩어진 이들 정책이주지의 시민들은 단결된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그런 상황을 이용해서 부산시는 20여 년 동안 이들 지역에 폐기물 처리장이나 공장 같은 각종 특수시설을 배치했고, 정치인들은 이런 상황에 무관심했다. 특히 특수시설이 집중적으로 배치된 반송동 정책이주지 시민들은 단결해서 1990년 5월부터 '산업 쓰레기 매립장 반대 투쟁'을 시작했다. 7월에는 부산~양산 간 교통을 두절시킬 정도로 저항해서 마침내 시의 계획을 중단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번 4월 총선에서도 정치인들은 책임질 수 없는 공약을 수없이 던질 것이다. 선거 유세 기간 동안 침묵을 지키던 행정가들은, 선거가 끝나고 나면 이들 공약에 대한 결제 영수증을 시민들에게 내밀 것이다. 그간 한국 시민들은 이런 정치인·행정가들의 행태를 비난해왔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을 뽑은 것은 유권자 개개인이다. 올해는 시민들 스스로가 그간의 악순환을 끊어내야 한다.
[김시덕 도시문헌학자]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최태원·노소영 ‘이혼소송’ 판사, 갑자기 사망 - 매일경제
- “신용카드 악마의 유혹 싫다했는데, 또”…이 서비스 잔액 8조원 육박 - 매일경제
- ‘ㅍㅌㄴ’ ‘ㅋㅌㅁ’ 이렇게 쳐도 잡으러 간다…온라인 추격전 나서는 AI - 매일경제
- 이재명 피습때 입었던 셔츠 쓰레기봉투서 발견…결정적 증거 - 매일경제
- 교통량 폭증한 인천 영종대교…‘반값 통행료’ 덕 아니었네 - 매일경제
- “서울에선 짐 싸야죠”…전셋값 평당 2300만원 넘었다, 차라리 경인서 내집 마련 - 매일경제
- 렌터카 공룡 “테슬라 못써먹겠네”…2만대 팔아버리며 ‘손절 선언’ - 매일경제
- 새해 ‘갓생’ 살겠다는 사람들…‘갓생템’ 판매도 껑충 뛰었다 - 매일경제
- 지금보다 더 조직적?…2000년전 아마존에 ‘이런 도시’ 있었다니 - 매일경제
- 김하성·고우석·다르빗슈 vs 오타니·야마모토, 꿈의 대결 다가온다…서울 MLB 개막전, 3월 20~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