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미래] 개로 살지 않는 법

2024. 1. 12.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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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말기 중국에 한 남자가 있었다.

50대 초까지 그는 아주 평범한 삶을 살았다.

그 순간, 평범한 생활인 이지(李贄)가 죽고, 중국 역사상 가장 문제적 사상가인 이탁오(李卓吾)가 태어났다.

그러나 자라면서 사람은 점차 개로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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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말기 중국에 한 남자가 있었다. 50대 초까지 그는 아주 평범한 삶을 살았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평생 박봉에 시달리며 가족을 돌보려고 죽도록 애썼다. 그러나 세상과 타협하지 않았기에 그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높고 고상한 걸 좋아했기에, 나는 권세나 부를 등에 업은 놈들 앞에서 자신을 낮추지 못했다." 말년까지 미관말직을 전전했을 뿐이다.

그는 자기 직장생활을 한 줄로 압축했다. "나는 한 마리 개에 지나지 않았다." 남들이 삶을 마무리할 55세에 이 남자는 새로운 인생에 도전했다. 개의 삶을 버리고 인간의 삶으로 나아가기로 결심했다. 그 순간, 평범한 생활인 이지(李贄)가 죽고, 중국 역사상 가장 문제적 사상가인 이탁오(李卓吾)가 태어났다.

미조구치 유조의 '이탁오 평전'(글항아리 펴냄)에 따르면 이탁오는 '정통을 걸어간 이단'이었다. 유학자답게 도(道)의 변혁을 통해 새로운 인간을 제창했기 때문이다. 그의 시대는 역사상 가장 큰 전환기에 속했다. 명이 무너지고 청이 일어서며, 세상 중심이 동양에서 서양으로 옮겨갈 때였다. 새로운 인간 없이 새로운 시대를 대비할 수 없었다.

그에 따르면 사람은 모두 동심(童心)을 타고난다. 그러나 자라면서 사람은 점차 개로 변한다. 기성 질서나 통념에 가로막혀 거짓으로 행하는 일이 늘면서 가짜 인간이 된다. 인간다운 삶을 살려면 낡은 통념을 벗어던지고, 내적 진실에 맞춰 삶을 다시 써야 한다. 기성 질서에 맞춰 살기보다 본성에 바탕을 두고 자유롭게 자기 운명을 창조해야 하는 것이다.

더 이상 개로 살려 하지 않았기에 그의 어조는 격렬했다. "사람이 사람답지 못한 건 아무 생각 없이 남을 흉내 내는 것만 배워 헛되이 앞사람 업적을 흠모하기 때문이다." 기성 관념, 즉 공맹의 도를 좇는 자는 개처럼 된다. 스스로 세상에 부닥쳐 상처 입고 피 흘리는 사람만이 진정한 도에 이른다. 흉내 내면 진실을 알 수 없고, 모방하면 본성을 깨달을 수 없다.

이탁오는 몽테뉴였다. 인간을 질서(禮)에 종속하고 권위(忠)에 굴종시키는 주자학에 반발해 살아 있는 인간을 중심으로 기성 질서를 고쳐 쓰려 했다. 그의 사유는 혁신적이었고 이단적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기득권 질서에 갇혀 질식하는 명나라를 살릴 유일한 길이었다. 사상범으로 몰린 이탁오가 감옥에서 자진했을 때 사실상 명나라도 함께 멸망했다. 낡아빠진 질서에 얽매여 혁신적 사고를 거부하는 모든 공동체는 약해져 사라진다. 오늘의 우리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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