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원의 울림] 장애가 있어도 문화를 즐길 권리

정주원 기자(jnwn@mk.co.kr) 2024. 1. 12.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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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K팝 콘서트 '케이콘' 현장에서 목격했던 한 관객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보통 관객들은 무대에 시선을 꽂은 채 열광하는데, 객석을 향해 심취해 있는 듯한 이 여성의 시선엔 네 명의 관객이 앉아 있었다.

지난해 번역 출간된 책 '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와 예술을 보러 가다'에서도 일본인 저자 가와우치 아리오는 장애 유무를 떠나 상대와의 대화를 통해 깊어지는 호혜적 관계를 생생히 증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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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K팝 콘서트 '케이콘' 현장에서 목격했던 한 관객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유달리 눈에 띈 그 여성은 무대를 등진 채, 마치 지휘라도 하듯 분주히 손짓하고 있었다. 보통 관객들은 무대에 시선을 꽂은 채 열광하는데, 객석을 향해 심취해 있는 듯한 이 여성의 시선엔 네 명의 관객이 앉아 있었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 통역이었다.

시끄럽고 떠들썩한 대중음악 공연장에 듣지 못하는 사람의 출현은 낯설지만 반가웠다. 이날 무대엔 아이브, 엔믹스, 샤이니 태민 등이 올라 2만여 관객을 열광시켰는데, 청각장애인들도 미국 수어로 통역된 한국어 노래를 즐기는 모습이었다. 수어 통역이 청력의 장벽을 넘어 K팝의 화려한 퍼포먼스를 전달해준 셈이다.

미국의 경우 장애인법(ADA)에 따라 주최 측이 장애인 관객을 위한 접근성 대책을 마련하고 관련 비용도 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이 공연을 주최한 CJ ENM에 따르면 공연장인 크립토닷컴 아레나에는 수어 통역 단체가 지정돼 있어 사전 신청을 하면 실시간 통역을 이용할 수 있었고, 보조 청취 장치나 자막 서비스도 제공됐다.

국내는 어떨까. 앞서 글로벌 K팝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2019년과 2022년 서울 콘서트에서 관객 요청에 따라 공연장에 수어 통역사를 배치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러나 이 정도 월드 스타의 배포와 팬덤 영향력이 아니면 여전히 모든 공연에서 통역을 기대하긴 어려운 실정이다. 수어 통역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하거나 통역의 질이 떨어진다는 문제 제기도 있다. 그래도 다양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지난달 서울 국립극장이 공연한 음악극 '나는 재미있는 낙타예요'는 무대 위에 수어 통역사가 올라와 배우의 분신처럼 연기했다. 어떤 공연에선 가수들이 청각장애인을 위한 실시간 문자 통역을 전광판에 띄우기도 한다.

간혹 장애인의 문화 향유를 확대하는 일이 비장애인에겐 무관한 일, 일방적으로 도움을 베푸는 일로 여겨지기도 하는 것 같다. 그러나 2021년부터 시행 중인 우리나라 문화기본법은 '개인이 문화 표현과 활동에서 차별받지 않는다'는 기본이념을 밝히고 있다. 더군다나 문화 향유는 베푸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나뉘어 있는 단절적 개념이 아니다. 더 많은 향유, 소통을 통해 문화의 의미도 깊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돌아보게 해준 건 지난 연말 시각장애인 가수 이동우와 배우 소유진의 미술 관람 동행 취재가 계기가 됐다. 내심 눈이 보이는 소유진이 절친 이동우를 돕고 있는 것으로 보였는데, 소유진은 오히려 "함께 보면 안 보이던 것까지 보인다. 새로운 눈으로 작품을 보게 된다"며 이동우에게 감사를 표했다. 지난해 번역 출간된 책 '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와 예술을 보러 가다'에서도 일본인 저자 가와우치 아리오는 장애 유무를 떠나 상대와의 대화를 통해 깊어지는 호혜적 관계를 생생히 증언한다. 예술엔 정답이 없기에, 소통을 통해 경계를 넓혀가는 것 자체가 문화 활동이라는 걸 동행을 통해 배웠다는 것이다.

이들의 배움처럼 올해는 더 많은 문턱이 낮아지길, 더 많은 문화예술 현장에서 다르고도 낯선 타인과의 반가운 만남이 있기를 기대해본다.

[정주원 문화스포츠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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