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아버지는 LG 팬이었다

최영미 작가·이미출판사 대표 2024. 1. 12.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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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트윈스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지 두 달이 다 되었는데도 감격이 가시지 않아, 매일 인터넷에 들어가 '트윈스'를 검색한다.

정규시즌에서 LG 트윈스는 방망이는 강했지만 홈런 팀이 아니었는데,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홈런으로만 8점을 만들었다.

LG의 우승이 확정된 밤에 승리의 세리머니를 지켜보며, 아버지를 생각하며 나는 울었다.

아버지는 LG 트윈스 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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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최영미 작가·이미출판사 대표)

LG 트윈스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지 두 달이 다 되었는데도 감격이 가시지 않아, 매일 인터넷에 들어가 '트윈스'를 검색한다. LG의 마무리 투수 고우석이 미국에 진출했다. 고우석도 이정용도 없이 뒷문을 지킬 수 있을까? 9회에 고우석이 올라와 불을 지르는 모습을 보는 것도 재미였는데, 고우석을 한국프로야구에서 볼 수 없다니 아쉽다.

정규시즌에서 LG 트윈스는 방망이는 강했지만 홈런 팀이 아니었는데,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홈런으로만 8점을 만들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고 역전에 역전을 거듭했던 최고의 명승부. 사람들은 9회초 오지환 선수의 역전 홈런을 명장면으로 꼽는데, 9회말에 등판한 이정용이 투수 앞 땅볼을 잡아내며 더블 아웃으로 경기를 끝낸 순간이 내겐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이다. 9회말에 주자를 1, 2루에 두고 등판한 이정용이 폭투를 하고 고의 4구를 내주며 만루가 되었을 때, 분위기가 KT 쪽으로 넘어가 '오늘 경기는 힘들겠다'고 체념한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투수 앞으로 굴러간 공을 이정용이 안전하게 잡아 포수에게 송구했고, 박동원이 그 공을 1루에 던져 문보경의 글로브에 공이 들어간 순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했다.

13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3 KBO 한국시리즈 5차전 kt wiz와 LG 트윈스의 경기에서 kt에 6-2로 승리하며 29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한 LG 선수들이 구광모 LG그룹 회장을 헹가래 치고 있다. ⓒ연합뉴스

위기의 순간에 LG 선수들은 침착했다. 흥분한 이정용이 공을 빠뜨리거나 너무 세게 던졌더라면 포수가 잡기 힘들었을 게다. 나중에 인터뷰에서 이정용은 "그날 몸을 여러 번 풀었다. 9회에 마운드에 올라갈 때 긴장했지만 '그래, 내가 스타가 돼보자'는 마음이었다"고 말했다. 위기 상황에서 누구는 부담을 느껴 실수하는데, 누구는 그 순간을 즐긴다. 정신력의 차이다.

지난해 LG 트윈스는 지고 있더라도 질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을 선수들과 코치 그리고 팬들이 공유했고, 불굴의 정신력은 승리로 이어졌다. 2023년 LG 트윈스의 우승은 예고된 것이었다. 2022년 정규시즌을 2위로 마치고 포스트시즌에서 3위 키움에 덜미를 잡힌 후, LG의 목표는 우승이었다. 2023년 시즌이 시작될 때부터 '29년 만에 우승을 노리는'  LG 트윈스 기사들이 넘쳐났고 '29'를 종이에, 천에, 머리띠에 새긴 팬들이 경기장을 메웠다. LG 트윈스를 가장 높은 곳까지 오게 한 힘은 그런 스토리에 있지 않을까.

내게도 나만의 이야기, LG의 우승이 각별한 이유가 있다. LG의 우승이 확정된 밤에 승리의 세리머니를 지켜보며, 아버지를 생각하며 나는 울었다. 아버지는 LG 트윈스 팬이었다. 당신이 살아있을 때 두산 베어스 팬이었던 나는 아버지를 무시했다. 

나는 두산 경기를 보고 싶었고, 아버지는 LG 경기를 보고 싶어 했지만, 딸을 이기는 아빠는 없다. 내게 채널을 넘겨주고 심심한 당신이 어디서 무얼 하셨는지. 두산의 김현수를 좋아해 그의 등번호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잠실에서 시구를 한 나는, 늙은 아버지의 하나뿐인 기쁨을 가로채고도 미안해하지 않았다.

김현수가 미국에 진출한 후 한국 야구를 멀리하게 되었고, 장편소설 ≪청동정원≫을 쓰느라 몇 년간 야구를 보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소설을 탈고하고 나는 다시 야구와 축구를 보는 재미에 빠졌다. 김현수가 LG로 팀을 옮긴 후 LG 트윈스 경기를 보며 LG 선수들을 좋아하게 되었다. 두산 베어스에 미안하지만, 사랑은 무죄! LG로 개종한 나를 용서하시길.

2022년 어머니를 잃은 후, 야구와 축구에 빠져 부모님에게 소홀했던 지난날을 반성했다. 내 부모를 돌보지 않았다는 죄책감에 괴로울 때도 야구를 보며 슬픈 현재를 잊으니, 스포츠 없이 나는 살 수 없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최영미 작가·이미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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