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거인' 어깨에 올라탔다 … 몸집 74배 커졌다
반도체, 자동차, 조선, 2차전지 등에서 볼 수 있듯 하나의 산업이 발전하면 크고 작은 연관 산업이 함께 성장하며 생태계를 이뤄나간다. 최근 세계 시장에서 활약하는 한국의 콘텐츠 산업 역시 마찬가지다.
넷플릭스 등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통해 전 세계 시장에 한국 콘텐츠가 공급되고, 콘텐츠 제작에 막대한 자본이 공급되면서 특수시각효과(VFX), 음향, 자막, 특수분장 등 영상 콘텐츠 생산을 지원하는 국내 기업들이 급성장하고 있다. 한류 콘텐츠가 흥행하며 이정재('오징어게임'), 임시완('소년시대') 등 아티스트 몸값이 오를 뿐만 아니라 작품 제작을 뒷받침하는 콘텐츠 배후 산업도 발전하는 것이다.
VFX 분야에서는 '웨스트월드'가 대표적이다. 웨스트월드는 '한강' '택배기사' '고요의 바다' 'Dr.브레인' 등 OTT 콘텐츠의 VFX를 담당하며 성장하고 있는 기업이다. 2018년 설립 당시 3명이었던 웨스트월드의 인원은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등과 협업하며 2023년 기준 200명으로 늘었다. 매출 역시 2018년 대비 74배 증가했다. 한류 콘텐츠의 흥행과 더불어 관련 기업 역시 급성장한 것이다. 웨스트월드는 지난해 11월 베트남 호찌민에 현지 법인 '웨스트월드 베트남'을 개소해 해외 시장 진출에도 나섰다.
글로벌 OTT들이 국내 콘텐츠 배후 산업의 성장을 이끈 것은 많은 주문으로 일거리를 제공하면서 콘텐츠가 세계 수준을 충족할 수 있게 기술 지원을 했기 때문이다. 글로벌 OTT들은 내부 기술 지원팀을 비롯한 각국 VFX 전문가들과 웨스트월드가 기술을 논의하는 기회를 제공했고, 리얼타임 게임 엔진과 Ncam, 대형 LED 월 등 첨단 VFX 장비를 습득하고 활용할 수 있게 도왔다. 웨스트월드는 '스위트홈'을 만들며 국내 최초로 버추얼 프로덕션을 적용한 기업이기도 하다. 지난해에는 자동차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촬영 자유도를 극대화하는 2D Driving comp 기술을 개발해 드라마 '셀러브리티'와 'D.P. 시즌2'에 활용했다.
웨스트월드 관계자는 "글로벌 OTT와 협력하기 전에는 VFX 기술이 필요한 콘텐츠가 부족하다 보니 새로운 시도를 할 기회 자체가 적었다"며 "창작 기회가 많아지고 장르에 다양성이 생기며 국내 기업들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더빙·자막 분야의 아이유노SDI미디어그룹 또한 글로벌 OTT의 수혜를 본 기업이다. 전 세계 관객들이 OTT를 통해 한국 콘텐츠를 접하게 되면서 영상 번역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10여 개 언어만 지원하던 아이유노는 '킹덤' '인간수업'을 비롯한 다수의 OTT 작품에 참여했고, 2023년 기준 34개국 67개 지사에 2900명 이상의 임직원을 두고 100개 이상의 언어로 자막과 더빙을 제작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더빙·자막 분야 세계 시장 점유율은 약 16%(글로벌 1위), 매출은 6000억원에 달한다.
장민진 아이유노 그룹장은 "지난해 할리우드 미국작가조합(WGA)의 파업으로 해외 작품 편수가 줄었지만 한국 콘텐츠가 잘돼 타격을 메꿀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올해 아이유노는 유명 유튜브 채널 '미스터비스트'(구독자 2억2900만명) 등 크리에이터의 콘텐츠에 다국어 더빙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영상 번역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자막과 더빙의 수준을 질적으로 높이기 위한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아이유노 관계자는 "한국 콘텐츠가 곧바로 전 세계에서 소비되는 상황에서 작품과 해외 관객을 잇는 자막과 더빙은 작품의 성공을 위한 중요한 요소"라며 "작품의 가치를 살리면서 현지 정서와 문화에 맞게 전달할 수 있게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수분장 분야에서 글로벌 포트폴리오를 구축한 업체는 테크니컬 아트 스튜디오 셀이다. 2003년 설립돼 박찬욱, 봉준호, 류승완, 최동훈 등 국내 유명 감독과 영화 작업을 해온 셀은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에서 다양한 모습의 좀비를 구현하고 '독전2' '발레리나' '길복순' '정이' '승리호' 등 다수의 글로벌 OTT 작품에 참여하며 해외 특수분장 업계에서도 인정받는 기업이 됐다. 중국, 싱가포르 등에서 셀의 레퍼런스를 참고하고, 할리우드에서도 셀이 사용한 기술을 그대로 따라할 정도다.
글로벌 OTT의 체계적 제작 환경은 셀이 업무 역량을 향상하는 기반이 됐다. 충분한 사전 제작 기간이 주어지는 OTT 시리즈는 미리 작업 계획을 세우고 분장사들이 섬세한 곳까지 신경을 쓸 수 있어서다. 코로나19 사태로 영화 제작이 급감한 시기에도 셀은 다수의 OTT 작품에 참여하며 성장을 이어갔다.
음향 분야에서 성장한 대표적 기업은 라이브톤이다. 1997년 설립된 음향 전문 스튜디오 라이브톤은 '괴물' '부산행' '기생충' 등 10편이 넘는 천만 관객 영화의 음향 디자인과 믹싱을 담당했다. 지난 수년간 글로벌 OTT와 협력하면서 '옥자' '킹덤' 'Dr.브레인' '소년심판' 등의 제작에 참여했고 최근에는 드라마 '무빙' '마스크걸'의 음향을 맡았다. OTT와 함께 다양한 장르의 작업을 시도하면서 라이브톤은 OTT가 보유한 할리우드의 선진 기술 가이드라인을 제공받는 등 기술 교류도 이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콘텐츠 홍보 디자인 분야에서 글로벌 OTT와 협력하는 대표 기업은 프로파간다다. 프로파간다는 '피지컬: 100' '사이렌: 불의 섬' '성+인물' 등 국내 작품의 포스터와 섬네일 등 홍보 디자인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 디자인 업체에 OTT의 성장은 다양한 역량을 펼칠 기회다. OTT 콘텐츠는 플랫폼에서 노출되는 섬네일 이미지 등이 추가로 필요해 극장용 영화 등 전통 콘텐츠보다 많은 종류의 디자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최지웅 프로파간다 대표는 "창작자에게 한국 OTT 콘텐츠의 선전은 단비와 같다"며 "일감이 늘어날 뿐만 아니라 OTT를 통해 전 세계 구독자에게 노출되면서 업계에 자부심과 활력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김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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