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환상과 현실 사이… 은하철도의 밤VS타오르는 어둠 속에서

전민서 인턴기자 2024. 1. 12.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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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자 성종완 비슷한 소재, 다른 관점
사진='타오르는 어둠 속에서' 공식 포스터

(MHN스포츠 전민서 인턴기자)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넘어지고 부딪치기를 반복하는 두 주인공. 지팡이를 짚어가며 그들이 닿은 곳은 어디일까. 

'은하철도의 밤'과 '타오르는 어둠 속에서'는 모두 '랭보', '사의 찬미' 등 대학로 화제작을 연출한 성종완 작가의 연출작으로, 시각장애인 캐릭터를 무대 전면에 세우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졌으나 극의 흐름과 주인공들의 성격은 완전히 다르다.

'은하철도의 밤'은 주인공 조반니가 동화 같은 환상 속을 여행하며 스스로 성장한다는 따듯한 주제를 담고 있는 데 반해 '타오르는 어둠 속에서'는 '돈파블로맹인학교'의 전학생 이그나시오를 중심으로 한 갈등과 고뇌, 냉소가 주가 된다.

뮤지컬 '타오르는 어둠 속에서'는 지난해 8월부터 11월까지 링크아트센터에서 첫 번째 공연을 올렸다.

방학이 끝난 '돈파블로맹인학교'의 개학식 당일. 새학기의 설렘과 웃음으로 가득 찬 학생들 앞에 전학생 이그나시오가 등장한다. 그 누구도 넘어지거나 다칠 일이 없는 안전한 '돈파블로맹인학교'에서 이그나시오만이 짚는 지팡이의 둔탁한 소음은 극 초반 긴장감을 높인다.

"헛된 환상에 사로잡혀 어둠을 빛이라 믿지만, 아냐. 우린 모두 장님이니까"
학교 안은 안락하며 볼 수 없는 것이 곧 좌절은 아니라고 믿고 살아가던 학생들과 달리 이그나시오는 염세적이고 비관적이다. 행복을 노래하는 학생들 앞에 일침을 놓는 그의 모습은 등장인물과 관객이 애써 부정해온 사실을 건드려 불쾌하기까지 하다.

그런 이그나시오를 멸시하고 피하던 학생들은 점차 그에게 동화돼 학생회장인 까를로스를 외면하고 이그나시오를 따르기 시작한다. 이그나시오와 그들이 원하는 것은 '앞을 보는 것'. 보지 못하는 삶을 수용하는 대신, 이그나시오의 마음 속은 보고자 하는 열망으로 가득차있다.

학생들을 계몽시키려 하는 이그나시오는 또한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떠올리게 하는데, 시민들의 무지함을 일깨워주려 했던 소크라테스의 인생처럼 이그나시오의 결말 역시 파국이다.

결말부 이그나시오와 까를로스의 위상이 반전되자 학생들은 이그나시오가 '틀린 것이었다'며 금세 태도를 바꾼다. 그들은 모두 이그나시오가 전학 오기 전 일상으로 돌아가지만 도리어 끝까지 그를 반대했던 까를로스만이 이그나시오 곁에 남는다.

사진=은하철도의 밤 캐스팅보드 / 전민서

뮤지컬 '은하철도의 밤'은 지난해 12월 20일 개막해 오는 3월 3일까지 공연을 진행한다.

'은하철도의 밤'은 어릴 적 사고로 시력을 잃은 이탈리아 소년 조반니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조반니는 착하고 겁많은 맹인 소년으로 홀로 지내던 그의 곁에 여행을 떠났던 친구 캄파넬라가 불쑥 찾아온다.

이후 은하 축제를 보러 가기 위해 언덕에 오른 조반니는 자신을 괴롭히는 반 친구들을 피해 도망치다 그만 강물에 빠져버린다. 정신을 잃은 그가 깨어난 곳은 우주를 달리는 은하열차 안이라는 환상적 공간. 그의 친구 캄파넬라는 조금씩 모습을 바꿔가며 조반니를 안내하고 조반니는 어느새 은하 여행에 흠뻑 빠져든다.

밝고 천진한 조반니를 따라 그리스 신화를 모티브로 한 노래 가사는 아름답게, 극은 동화처럼 흐른다. 환상 속에서 아버지의 흔적을 따라가던 조반니는 이따금 견딜 수 없이 슬퍼지기도 하지만 그는 곧 다시 일어나 여행을 계속한다.

까만 선글라스를 벗어던지고 마치 눈앞이 보이는 것처럼 생생하게 여행을 즐기는 조반니의 모습은 환상에의 삶을 부정적으로 보던 이그나시오와 대비된다.

이렇듯 이그나시오와 조반니는 모두 본인만의 길을 개척하지만 방향성은 완전히 다르다.

무대 위 구조물의 쓰임에서도 차이가 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이그나시오에게 무대의 구조물은 예고되지 않은 이상 그를 위협하는 장애물일 뿐이지만, 조반니는 구조물을 타고 오르거나 움직이면서 자유자재로 이용한다.

특유의 천진함으로 환상 속 은하 여행이 끝난 뒤에도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다며 작가의 꿈을 키우는 조반니와, 일상에 안주하는 대신 장애로 인한 불편함을 직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그나시오.

조반니의 삶 속에는 그만이 가질 수 있는 낭만이, 이그나시오의 인생에는 어려운 길을 가기로 택한 그의 사유가 녹아있다.

둘 중 한쪽만의 가치관만을 옳다고 할 수 없는 것은 실제로 둘 모두의 삶이 틀리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그나시오를 향한 까를로스의 적대감을 이해하고 '은하철도의 밤' 속 조반니의 은하 여행을 함께 즐기면서도 관객이 '돈파블로맹인학교'의 아이들처럼 이그나시오에게 마음이 기우는 이유는 평화를 노래하기엔 아직 이 세상이 험난하다는 데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편 은하철도의 밤은 오는 3월 3일까지 대학로 링크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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