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현의 감성, 골프美학] 한국식 온정주의가 아주 나쁜 선례를 남겼다
윤이나는 지난 2022년 6월 한국여자오픈 경기 도중 자신의 공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경기를 그대로 진행해 고의적인 오구 플레이와 늑장 신고로 징계 3년을 받았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대한골프협회(KGA)가 먼저 1년 6개월로 감경했고, 한국여자골프협회(KLPGA)도 3개월 뒤에 역시 1년 6개월로 징계를 감경했다.
물론 각 협회가 내린 결론에 대해서는 존중하며 충분한 검토 끝에 어렵게 내린 것이라고 믿고 싶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섣불렀다는 생각이 든다. 애초에 징계도 심사숙고 끝에 내렸을 것이다. 그렇기에 룰과 에티켓을 중시하는 골프 종목인만큼 3년 원칙을 지켰다면 이견이나 잡음은 없었을 것이다. 아울러 좋지 못한 선례를 남겼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
KLPGA는 스폰서, 골프 관계자와 팬, 전체 회원의 입장과 대한골프협회 징계 감경 등을 고려했다고 했다. 결국 대한골프협회의 선례가 또 다른 선례를 남기게 된 것임을 이번 KLPGA의 결정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그 이전에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에서 2019년 9월 대회 도중 김비오가 갤러리에게 손가락으로 부적절한 동작을 취하고 드라이버를 티잉그라운드에 내리쳐 3년 출장 정지 징계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너무 과하다며 한 달 만에 1년으로 감경했고, 약 10개월 만인 2020년 7월엔 특별 사면을 통해 징계를 완전히 풀어줘 매경오픈에 출전한 사례가 있다. 이때 언론과 골프 전문가들은 갑작스러운 징계 해제로 다른 한 명의 프로골퍼가 대회에 출전할 수 없었다고 지적한 바가 있다.
결국 나쁜 사례가 또 나쁜 사례를 만들어 냄을 방증시킨다. 향후 또 다른 유사한 사건이 벌어졌을 때, 이 때는 또 어떻게 협회가 처신할 것인지 궁색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윤이나의 경우엔 신고가 한 달이나 늦었고 이후에 다른 대회에도 계속 출전해 골프 정신을 훼손시켰다는 점에서 사례가 좋지 못하다.
1952년에 미국골프협회(USGA)와 영국골프협회(R&A)가 공동으로 골프 규칙을 만들었고 ,2004년에는 '플레이어가 에티켓을 중대하게 위반하면 경기를 실격시킬 수 있다'고 규정했다. 에티켓마저도 실격의 원인이 될 수 있는데 하물며 룰을 위반하는 것은 더 이상의 부연 설명이 필요없을 것이다.
2018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퀄리파잉(Q) 시리즈에서 딸의 OB가 난 공을 발로 차 인바운드 지역으로 보냈던 '양심 불량' 모친이 있었다. 감성적 시각으로 보면 엄마가 얼마나 딸의 성적이 절실했으면 룰까지 어겼을까 싶다. 하지만 이성적인 시각으로 보면 룰과 에티켓을 지키지 않았기에 지탄받고 실격이란 결과는 마땅한 행위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는 아직까지도 이성적 판단보다는 온정주의가 더 우위에 있는 듯하다. 정에 이끌릴 문제가 아니다. 룰은 엄격하고 징계는 더 엄격해야 한다.
중국 고서전에 보면 세이류(洗耳流)란 고사성어가 있다. 중국 고대 왕조 시대에 왕이 허유를 불러 왕을 맡아 달라고 간청하자, 허유가 오늘 더러운 소리를 들었다며 시냇가에서 귀를 씻고 있었다. 소 물을 먹이려고 나온 소부가 허유의 이상한 행동을 보고 뭐하냐고 묻자, 허유 왈(曰) "왕이 나보고 왕을 맡아 달라고 해서 더러운 소리를 들은 귀를 씻고 있다"고 하자 소부는 그 귀를 씻은 물을 소가 먹을까 봐 저만치 위로 끌고 가서 먹였다고 한다.
골프는 투명하고 공정하고 양심적이어야 한다. 한 명의 우수한 선수, 훌륭한 선수를 보호하고 응원하는 것만큼 정당하고, 공정하며, 골프 정신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 우선임을 보여줘야 한다. 성적 우선주의가 양산 시킨 '슬그머니 골프'는 프로골퍼는 물론 아마추어 골퍼에게도 중요한 이슈이다.
최경주가 국내 대회 중 플레이를 마친 후 경기위원을 찾아가 볼 근처에 있는 나뭇잎을 치우다가 볼을 건드렸다면서 스스로 벌타를 받은 적 있다. 당시 용기가 지금의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하는데 자양분이 되었고 존경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협회는 원칙대로, 선수는 내린 징계를 겸허하게 끝마쳤을 때 그 어떤 잡음과 오해의 소지도 안 생길 것이다. 이번 윤이나 징계 경감이 주는 개운하지 못함은 아마도 또 다른 선례를 남길까 봐 하는 노파심일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골프 정신이 훼손되어서 일 것이다.
글, 이종현 시인.
Copyright © MHN스포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