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 뒤늦게 '비트코인 ETF 금지령'…"갑자기?" 서학개미들 혼란
가상자산 역사의 중대 분기점으로 꼽히는 미국의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상장이 이뤄졌다. 하지만 국내 투자자는 금융당국의 거래 중개 차단 조치로 비트코인 현물 ETF에 투자할 수 있는 길이 막혔다. 이미 거래되고 있던 캐나다와 독일의 비트코인 현물 ETF 중개까지 중단되면서 당국의 판단이 한발 늦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현 정부 출범 당시 '친코인' 정책을 약속했던 점과도 대조된다.
미래에셋증권은 이날 홈페이지 공지에서 "전일 금융당국의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을 기초로 하는 현물 ETF에 대한 유권해석으로 중개 거래가 불가해 매매를 제한하게 됐다"며 "제한되는 종목은 변동이 있을 수 있으며, 거래 시 참고해 달라"고 밝혔다.
전날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비트코인 현물 ETF 11종 승인 여파가 이미 거래되고 있던 미국 외 국가의 비트코인 현물 ETF로 번진 것이다. 이로 인해 3년 가까이 국내에서 투자가 가능했던 종목들의 거래가 하루 아침에 막혔다. 그동안 당국이 해당 종목들에 대해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늦장 대응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중반부터 미국의 비트코인 현물 ETF 이슈가 불거졌는데도 국내 상황을 제대로 점검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피하기 어렵다.
당국은 전날 국내 증권사들의 미국 비트코인 현물 ETF 중개를 차단했다. 국내 투자자가 이날 뉴욕증시에 상장한 비트코인 현물 ETF에 투자할 수 없도록 막기 위해서다. 이에 따라 국내 증권사들은 HTS·MTS에서 해당 종목 검색과 정보 제공이 이뤄지지 않도록 조치했다. 금융위원회는 "국내 증권사가 해외 상장된 비트코인 현물 ETF를 중개하는 것은 가상자산에 대한 기존 정부 입장, 자본시장법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당국은 비트코인 선물 ETF에 대해선 국내 증권사들의 거래 중개를 계속 허용할 방침이다. 현물 ETF와 달리 선물 ETF는 자본시장법(4조 10항)상 기초자산에 포함된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선물 ETF는 시카고상품거래소(CME)에 상장된 비트코인 선물 지수에 따라 거래되는 것으로 (자본시장법상) 기초자산 요건에 물리적으로 위배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당국의 비트코인 현물 ETF 투자 차단 조치는 가상자산을 금융투자상품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기존 정부 방침에 근거한다. 정부는 문재인 정권 때인 2018년 1월 "가상자산은 화폐나 금융상품으로 인정되기 어렵고, 누구도 가치를 보장할 수 없다"고 밝혔다.
당시 박상기 법무부 장관의 가상자산거래소 폐쇄 발언 직후 나온 공식 입장이다. 박 장관의 폐쇄 발언은 주요 가상자산들의 폭락으로 이어져 가상자산 투자자들 사이에선 '박상기의 난'으로 불렸다. 문재인 정권을 향한 부정적인 여론이 커지는 결정적인 계기 중 하나로 꼽혔다.
윤석열 대통령이 가상자산 시장 활성화 정책을 공약하는 등 '친코인' 정부를 약속했으나, 가상자산 규율에 대한 기본 방침은 지난 정권과 큰 차이가 없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인 2022년 1월 가상자산 투자 활성화 공약을 발표했다. 당시 가상자산 투자자가 770만명에 달하는 점을 강조하면서 공정하고 활발한 거래의 장을 만들겠다는 취지였다.
가상자산 공약은 △양도차익 기본공제 한도 25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상향 △디지털자산기본법 제정 △거래소 발행(IEO, Initial Exchange Offering)을 시작으로 국내 ICO(Initial Coin Offering) 허용 △디지털산업진흥청 설립 △대체불가토큰(NFT, Non-Fungible Token) 거래 활성화 등으로 구성됐다.
해당 공약은 정부의 120대 국정과제에 금융위 소관인 '디지털자산 인프라 및 규율체계 구축'과 '자본시장 혁신과 투자자 신뢰 제고로 모험자본 활성화'에 반영됐다. 하지만 올해 7월부터 시행되는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에 디지털자산기본법 제정 과제만 일부 반영됐을 뿐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도 증권사가 위험하다고 판단한 해외 종목에 대해선 중개 중단 조치가 취해졌다"며 "비트코인 현물 ETF의 경우 당국에서 지시가 내려온 상황이기 때문에 입장 변화가 있기 전까진 차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진욱 기자 sjw@mt.co.kr 정혜윤 기자 hyeyoon12@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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