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한 방?…여의도 복권방 찾는 개미들 '뜻밖의 투자 종목' [돈앤톡]
"사장님, 자동 두 장이요."
지난 11일 오후 5시30분 여의도역 5번 출구 근처 한 길거리 복권 판매점. 퇴근길 역 입구를 향해 길게 줄 선 사람들 옆에 이른바 '로또 줄'도 만들어졌습니다. 담배도 같이 파는 복권방인데도 사람들은 담배보다 복권만 찾습니다. 새해에는 유독 이 줄이 길다고 합니다. 하루에 찾는 손님만도 500명이 넘는다고 하네요.
밀려드는 손님을 신기한 듯 보던 기자에게 사장님은 "로또 사는 건 건강을 사는 거지"라며 하하 웃었습니다. 언뜻 듣기에 사장님의 '로또 건강론'은 일리가 있었습니다. 희박할지라도 매일 당첨가능성을 품고 살아가는 것이 심리적인 위안과 행복을 주기 때문입니다.
새해부터 여의도에서 로또를 사는 이들은 어느 주식에 투자하고 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금융시장의 메카인 곳에서 로또를 찾는 이들이니까요. 주식도 로또처럼 '한 방'을 노릴 수 있는 복권형 주식을 선호할까요.
하지만 이 가설은 몇몇 손님들과 대화하면서 보기 좋게 깨졌는데요. 변동성 높은 종목에 집중하는 이들도 더러 있었지만 대부분은 국내외 대형 우량주에 투자하고 있었습니다. '파란불'만 켜진 계좌를 들여다보기도 지친 데다 경기 불황으로 생활까지 팍팍해지면서 투자를 아예 접었다는 이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퇴근길 버스를 기다리던 중 복권 판매점에 들른 정보기술(IT) 기업 종사자 40대 최씨는 "국내 주식은 아예 안 하고 해외 주식만 투자한다. 최근엔 애플 주가가 주춤하고 있지만 과거 35달러일 때부터 투자해 여러차례 수익 실현을 했고 현재는 예치 수준으로 모아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일주일 동안 행복하기 위해서 매주 1만원어치 퇴근길에 로또를 사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여의도에서 직장을 다니다 퇴직했다는 70대 김씨는 "10년 동안 삼성전자 주식만 모아가고 있고 4만주가량 보유 중"이라며 "로또는 큰 이유 없이 사람들이 많이 사길래 사봤는데 재미가 붙어 복권방이 눈에 띌 때마다 구입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당첨 안 될 확률이 99%를 넘지만 그 희박한 가능성에 베팅하는 재미가 쏠쏠한 것 같다"는 겁니다.
증권사에 다니는 30대 유모씨는 주기를 두진 않지만 현금이 생길 때마다 복권 판매점에 들른다고 하는데요. 그는 "벌어도 벌어도 부족하다"며 "주식 투자는 업무 특성상 회사 제한이 있어 잘 하지 않고 가상자산이나 부동산 투자도 적극적이진 않다. 로또는 살아가는 재미 중 하나"라고 말했습니다.
한국거래소 맞은편에 위치한 복권 판점에도 들렀습니다. 마침 손님이 복권 2만원어치를 구입하고 있었습니다. 여의도 50대 직장인 최씨는 "로또가 취미"라며 "무조건 수동(직접 번호를 고르는 것)으로만 한다"고 전했습니다. 그는 "주식 투자도 그렇지만 로또 역시 분석의 영역이다. 자주 사면서 분석하다보면 패턴이 보이기도 한다"고 말했습니다.
퇴근 중이던 한 언론사 기자 남궁씨는 "게임에 관심이 많아 국내 게임주 위주로 투자했지만 크래프톤과 넷마블 등 모두 반토막 난 상태여서 계좌 안 본지 꽤 됐다"며 "아무래도 물린 주식들이 많으니 손실을 만회해 보려는 생각에서 로또를 사는 이유도 있는 것 같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매주 5000원어치만 사다가 올 들어서 1만원으로 높였다. 혹시 모를 일"이라며 너스레를 놓았습니다.
20대 여의도 직장인 김씨도 한 달에 한두 번씩 로또를 구입한다고 하는데요. 그는 "한창 게임스탑 열풍이 불던 2021년 게임스탑 주식에 투자했다가 수익을 본 경험이 있었다"며 "자신감을 얻어 국내 주식 중 효성티앤씨에 큰 돈을 넣었는데 많이 물린 상태다. 더 물탈 돈이 없어 반강제이긴 하지만 주식 투자는 안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김씨는 "서울에 내 집 마련을 하는 게 꿈"이라면서 "막연한 희망이 있기에 로또를 종종 사는 것 같다"고 부연했습니다.
IT기업에 다니는 30대 채씨는 "덕성우 등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테마주가 크게 올랐을 때 넣었는데 욕심 부리다가 못 빠져나오고 물린 상태"라며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는 "인생을 뒤집을 한 방이 필요한 시대라고 생각한다"며 "서울에 몸 뉘일 방 한 칸이라도 장만하려면 주식이나 로또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본다"며 농담 섞인 말을 했습니다.
삼성전자 같은 우량주에만 투자하는 이도, 주식 투자를 아예 하지 않는 이도, 정치 테마주에 투자하는 이도 로또를 사갔습니다. 판매점을 오가는 여러 손님들을 취재하면서 '복권을 산다고 해서 꼭 복권 성향의 주식을 선호하리라는 법은 없다'는 결론을 내봤습니다.
복권방 사장님의 말처럼 '일확천금'보다는 습관처럼 꾸준한 주식투자와 로또구매를 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이러한 꾸준함이 있기에 여의도로 매일매일 출퇴근을 성실하게 하는 것이겠지요. 실은 기자도 이번 주치 로또 두 장을 구매했습니다. "우리 다음 주 월요일엔 보지 말자"며 동료에게 건넨 농담이 현실화되길 기원하면서요.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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