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중국의 속국” 증거물이 서울 한복판에…삼국지 관우상, 박물관으로 옮겨야 [필동정담]

김병호 기자(jerome@mk.co.kr) 2024. 1. 12.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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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묘에 있는 관우 좌상
동묘에 있는 황금색 관우 좌상
동묘 정문
과문한 탓인지 소설 ‘삼국지’에 나오는 촉나라 장수 관우를 모신 사당이 서울에 있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았다. 언론인 황대일 씨가 쓴 책 ‘중국 갑질 2천년’을 읽고 나서였다. 책은 고조선부터 한국전쟁 때까지 중국이 우리한테 저질렀던 악행과 핍박의 역사를 담고 있는데 읽는 이들의 공분을 자아낸다. 반면 우리가 중국한테 유난히 약한 모습을 보여온 것이 그들의 갑질 욕구를 키운 점도 부인할 수 없다. 책이 지적한 우리의 사대주의 3종 세트는 ‘만동묘’와 ‘대보단’, ‘관왕묘’다.

만동묘는 임진왜란 때 원병을 보낸 명나라 신종(만력제)과 마지막 황제 의종(숭정제)을 제사지내는 사당이고, 대보단은 신종 은혜를 기리는 제단이다. 만동묘는 1644년 명나라 멸망 후 충북 괴산군 화양동에 세워졌는데 신종은 원군을 보내줬다는 이유에서, 의종은 명의 마지막 황제로서 넋을 기리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만력제는 중국 역대 가장 무능한 황제 중 한명이고, 숭정제는 ‘한국의 이순신’ 같은 존재인 원숭환 장군을 시기해 극악한 고문 속에 죽게 한 임금이다. 당시 중국인들도 혼군(昏君)으로 꼽은 이들 황제를 조선 시대에 우리 땅에서 제사지내준 것이다.

관왕묘는 관우(162~219) 상을 두고서 제사를 드리는 사당이다. 관왕묘 유래는 이렇다. 1592년 임진왜란 발발 이후 조선에 파병된 명나라 장수와 병사들 앞에 관우 신령이 나타났다. 이들이 관우 계시를 받고 승리했다는 보고를 들은 만력제가 조선 왕(선조)에 명령해 관우 사당이 지어졌다. 자국의 장군 동상을 남의 땅에 세우라는 것은 지금 기준에서 보면 맞지 않지만 당시엔 기꺼이 받아들여졌다.

현재 지하철 1·6호선 동묘앞역은 서울 동쪽에 있는 관우 사당을 뜻하는 동묘(東廟)에서 따왔다. 보물 142호인 동묘의 정식 명칭은 ‘동관왕묘’다. 과거 서울에 동서남북 4곳을 포함해 지방 곳곳에 관왕묘가 있었는데 지금은 동묘만 남아있다. 서울 한복판 8450㎡ 면적에 건물을 짓고 내부에 2.5m 높이 황금 좌상(坐像)이 있다. 관우의 상징인 긴 턱수염만 검은색으로 돼있다.

지난달 가본 동묘에서는 사람들이 관우 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거나 그 앞에서 묵념 기도를 드렸다. 연세가 지긋한 노인 분은 “관우상이 왜 지금도 남아있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다른 이는 “서울의 금싸라기 땅에 아직도 중국인 동상을 세워놓는 게 말이 되나”라며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도 서울에 관우 상을 두고 있는 게 썩 내키지 않는다. 역사성을 감안해 1963년 보물로 지정됐지만 관우 사당을 계속 놔두는 것은 국가 정기(精氣) 차원에서 문제가 있다. 임진왜란 때 관우신(神)이 도움을 줬다는 것은 중국 설화일 뿐 우리와 관우 간에 역사적 접점은 없다. 명나라를 주군으로 섬기던 시대에야 황제 명을 받들어 관우상을 흔쾌히 세웠겠지만 지금 같이 대등한 주권국 관계에서 이를 간직하고 있을 필요가 있을까.

조선 시대에는 왕부터 백성까지 명나라를 하늘처럼 받들며 살았다. 조선 국왕 책봉을 명이 좌지우지 하다 보니 명나라 요구에 관우 사당을 곳곳에 짓고 성대한 제사를 지내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대한민국 국민에게 동묘는 자랑스럽지 않은, 오히려 부끄러운 역사의 단편이다. 명과 주종관계도 그렇지만 남의 나라를 상대로 누구 동상을 세워 제사까지 지내라는 것은 지금 보면 명백한 갑질이다. 동묘를 없애자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해가 간다. 반면 그것조차도 우리 역사의 일부이니 보전해야 하고, 더 나아가 그걸 보고 경각심을 키우자는 견해도 있을 수 있다.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문제로 시끄러웠던 일을 감안하면 관우상 존치 여부도 보는 각도에 따라 논란이 커질지 모른다. 광화문 조선총독부 청사의 경우 당대 탁월한 건축양식을 지닌데다 일본 만행을 잊지말자며 보전 주장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일제 식민지배 잔재가 서울에 남아있어선 안된다는 논리 속에 폭파됐다.

몇년 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대한 보복으로 K콘텐츠 금지령을 내리고 국내 유통사들의 철수를 압박한 것이 ‘옹졸한’ 중국의 실체다. 요즘에도 툭하면 희토류와 요소 같은 자원을 갖고 우리를 압박한다. 2017년에는 시진핑 주석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나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속국”이라고 말해 우리를 격분시켰다. 외국인들이 보기에 서울 동묘가 그 입증 사례 중 하나가 될까 걱정도 된다. 만일 중국의 막돼먹은 행태에 ‘소심한 저항’이 필요하다면 동묘를 없애고 관우상을 박물관으로 옮기면 어떨까 싶다. 중국 측이 반발할지 모르니 그에 맞설 정연한 논리는 미리 개발해놓자.

김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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