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안84, ‘리얼리티 예능’ 시대의 총아가 되다

하재근 국제사이버대 특임교수 2024. 1. 12.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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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통해 예능의 중심에 우뚝…비호감 이미지 벗고 인간미 물씬 풍기는 호감 캐릭터로

(시사저널=하재근 국제사이버대 특임교수)

기안84가 절정의 위상을 구가하며 예능의 중심에 우뚝 섰다. 요즘 MBC 예능을 떠받치고 있는 핵심 프로그램 중에서 두 편이 기안84 출연작이다. 바로 《나 혼자 산다》와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인데, 이 중에서도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는 기안84의, 기안84에 의한, 기안84를 위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그의 영향력이 크다.

기안84가 처음부터 각광받았던 건 아니다. 한때는 논란의 대상, 비호감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는 비연예인이어서 연예인이 아닌 사람이 예능에 나왔을 때 특유의 생경한 느낌이 있었다. 평범한 일반인이 예능에 나와도 튈 판인데 기안84는 전혀 평범하지 않은 특이한 캐릭터이기도 했다. 거의 기인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그런 그의 모습을 많은 이가 낯설어 했다. 예를 들어 방송사 연말 시상식에 기안84가 일반 패딩 점퍼를 입고 참석하자 무례 논란이 인 적이 있다. 행사와 시청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가 다른 출연자들에게 하는, 뭔가 예능적이지 않은 멘트들과 화면에서 보이는 연예인 같지 않은 태도들, 그런 것에도 불편함을 느낀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모습들이 가식이 아닌 기안84의 솔직한 사람됨 그 자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비호감 정서가 불식되기 시작했다. 만약 기존 예능인이 그런 특이한 모습들을 보였다면 방송용 설정이라는 인식을 줬겠지만, 기안84라서 사람들은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의 인간미가 점점 더 많이 알려지면서 마침내 예능의 중심에 우뚝 선 호감 캐릭터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2023년 12월29일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한 웹툰 작가 겸 방송인 기안84 ⓒMBC제공

리얼리티 시대가 부른 기안84

기안84 절정기의 배경은 리얼리티 전성시대다. 과거 예능은 예능인들의 웃음판이었고 주로 개그맨 출신들이 활약했다. 21세기에 접어든 이후 리얼버라이어티의 시대가 시작됐는데, 이 시기의 주역은 비예능인 출신 연예인들이었다. 가수와 배우들이 개그맨 출신들을 밀어낸 것이다. 당시 《1박2일》과 《패밀리가 떴다》가 일요일 황금시간대를 양분했는데 가수 이승기, 김C, MC몽, 은지원, 김종민 등이 《1박2일》의 주역이었다. 《패밀리가 떴다》에선 역시 가수인 윤종신, 이효리, 김종국, 대성 등과 배우 김수로, 박예진 등이 인기를 끌었다. 사람들은 웃기는 설정을 잘하는 개그맨 출신보다 가수, 배우 등의 행동이 더 리얼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대본 파동이 일면서 연예인 출연자들의 리얼에 대해 의구심이 생겨났다. 그러자 아예 비연예인이 대거 예능판에 수혈됐다. 요리사, 요식 사업가, 의사, 운동선수 등의 활약이 시작된 것이다. 그런 흐름 속에서 혼자 사는 사람들의 생활상을 조명하는 리얼 관찰 예능 《나 혼자 산다》가 시작됐고, 웹툰작가인 기안84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과거에도 만화가가 예능에 등장한 적은 있다. 고우영, 박광수 등이 나왔지만 예능의 중심 느낌은 아니었다. 방송에서 한 컷 만화를 그리는 등 만화가로서의 제한된 역할을 맡기도 했다. 반면에 기안84는 《나 혼자 산다》라는 히트 예능 프로그램의 주역 중 한 명으로 다른 핵심 연예인 출연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바로 리얼리티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웃기는 상황극을 하는 능력보다 진정성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기안84는 혼자 생활하는 남자의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줘 공감을 이끌어냈다. 그의 존재가 리얼리티 프로그램 홍수 속에서 《나 혼자 산다》의 가치를 더욱 도드라지게 만들었다. 리얼 오브 더 리얼, '쌩 리얼'의 느낌을 전해 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너무나 기인 같은 모습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는데, 그가 마라톤에 도전하는 모습이나 화면에서 보이는 소탈한 모습들로 인해 논란은 잦아들었다. 그리고 결정타가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였다. 그동안 여행 예능이 넘쳐났다. 플랫폼 다변화로 콘텐츠 자체가 너무 많았다. 그래서 신규 여행 예능이 잇따라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는 방영 초부터 화제성을 독차지하면서 일약 MBC의 주축 예능이 됐다. 그 성공을 기안84가 이끌었다. 그가 보여준 현지인보다 더 현지인 같은 모습이 시청자의 이목을 끌었다. 갠지즈 강물을 마시고 노천 소금을 맛보는 모습 등은 화제를 폭발시켰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깔린 선한 느낌, 사람에 대한 존중, 이런 것들로 인해 기안84라는 사람 자체가 인간적 호감을 느끼게 했다.

이렇게 소탈하고, 자연스럽고, 호감이 느껴지는 따뜻한 사람이 리얼리티 시대가 기다려온 캐릭터였다. 단순히 소탈하기만 하면 다큐멘터리 출연자와 차별성이 없을 텐데, 기안84는 심지어 재미있기까지 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기인 같다고 할 정도로 특이한 생활상을 보여줬기 때문에 시청자에게 신선한 재미까지 준 것이다. 이런 배경에서 기안84는 리얼리티 시대의 총아가 됐다.

ⓒ기안84 SNS 제공

비연예인이 예능의 주역으로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는 리얼리티 전성시대의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프로그램은 리얼 중에서도 더욱 강한 리얼을 표방한다. 지금껏 보지 못한 새로운 스타일의 '극사실주의 여행 예능'을 추구하며 출연자들의 여행 모습을 담는다. 그 출연자들이 바로 기안84, 빠니보틀, 덱스 같은 비연예인이다. 스튜디오에서 그들의 여행 영상을 보며 토크하는 이들이 기존 연예인들이다. 연예인과 비연예인의 위치가 전도된 셈이다. 이러니 비연예인이 예능의 주역이 된 리얼리티 시대의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빠니보틀이나 덱스가 보여주는 모습의 핵심도 진정성이다. 억지로 상황을 꾸미지 않고 방송용으로 다듬어지지도 않은 듯한 모습. 그것에서 시청자는 리얼을 느낀다. 여행도 제작진이 일정을 짜주는 것이 아니라 출연자들이 알아서 행동하고 그 속에서 많은 우연적 요소가 생겨난다. 그런 모습들을 여과 없이 방송하는 것이 바로 '극사실주의' 리얼이다.

과거 이경규는 예능이 다큐멘터리처럼 변해갈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다. 비연예인들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인기를 끄는 예능판을 보면 일정 정도 그의 예언이 실현됐다고 할 수 있겠다. 리얼리티 광풍이 워낙 거세게 일어 이젠 예능의 주류로 완전히 자리 잡은 느낌이다. 하지만 문제는 웃음기가 옅어진다는 점이다. 예능의 본령은 원래 웃음이다. 리얼리티 흐름과 함께, '큰 웃음 빅 재미'를 빵빵 터뜨려주는 버라이어티 예능도 공존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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