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안소윤 기자] 봉준호 감독, 윤종신 등 문화예술인들이 고(故) 이선균 사건의 진상규명을 촉구하기 위해 나섰다.
문화예술인 연대회의(가칭)는 12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 이선균 배우의 죽음을 마주하는 문화예술인들의 요구'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배우 최덕문의 사회로 진행된 가운데, 봉준호 감독, 가수 겸 작곡가 윤종신, 이원태 감독, 배우 김의성, 한국영화감독조합 장항준 감독, 여성영화인모임 소속 곽신애 대표,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소속 장원석 대표 등이 참석했다.
문화예술인 연대회의는 한국방송실연자권리협회,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한국매니지먼트연합, 한국영화미술감독조합,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 한국방송예술인단체연합회, 한국연예제작자협회, 한국영화감독조합을 비롯한 총 29개 문화예술 관련 단체를 중심으로 결성됐다.
먼저 기자회견 사회를 맡은 최덕문은 "이선균의 죽음을 마주하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데 뜻을 함께 하고 그 첫 번째 노력의 일환으로 이 자리를 마련하게 됐다"며 "오늘 성명서 발표는 함께해 주신 참석자분들 및 단체분들에 대한 소개, 그리고 경과보고, 성명성 낭독, 그리고 단체 몇몇 분들의 발언, 마지막으로 향후 계획에 대한 개략적인 보고 순으로 진행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장원석 대표는 경과보고에서 "2023년 12월 27일부터 29일까지 이선균의 장례, 발인 기간이었다. 고인과 방송, 영화, 음악 등 함께 작업을 해왔던 많은 분들의 조문이 있었고, 그 자리에서 수사 및 언론보도 과정 중 나타난 여러 문제점들에 대하여 목소리를 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밝혔다.
김의성은 "지난 10월 23일 고인이 정식 입건됐을 때부터 2개월 간 아무런 보호장치 없이 언론과 미디어에 노출됐다"며 "사건 관련성과 증거 유무조차 판단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언론과 미디어를 통해 대중에 공개됐다. 19시간 수사가 진행된 3차 경찰 소환 조사에서 거짓말탐지기를 통한 진위를 가려달란 요청을 남기고 스스로 마침표를 찍는 참혹한 선택을 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대중문화예술인들에 대한 수사과정에서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길 바란다"며 "고인에게 가해진 가혹한 인격살인에 우리의 입장을 밝히는 것이 최소한의 도리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봉준호 감독은 수사 당국에 요구 사항을 전했다. 그는 "고인의 수사에 관한 내부 정보가 최초 누출된 시점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 2개월여에 걸친 기간 동안 경찰의 수사보안에 한치의 문제도 없었는지 관계자들의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한다"고 운을 뗐다. 이어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공보책임자의 부적법한 언론 대응은 없었는지, 공보책임자가 아닌 수사업무 종사자가 개별적으로 언론과 접촉하거나 기자 등으로부터 수사사건 등의 내용에 관한 질문을 받은 경우 부적법한 답변을 한 사실은 없는지 한치의 의구심도 없이 조사하여 그 결과를 공개하기를 요청한다"고 덧붙였다.
봉 감독은 '수사당국이 적법절차에 따라 수사했다'는 한 문장으로 이 모든 책임에 대해 자유로울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수사 과정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만이 잘못된 수사관행을 바로잡고 제2, 제3의 희생자를 만들지 않는 유일한 길"이라고 호소했다.
윤종신은 언론 및 미디어를 향해 자성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냈다. 그는 "고인에 대한 내사 단계의 수사 보도가 과연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공익적 목적에서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는가. 대중문화예술인이라는 이유로 개인의 사생활을 부각하여 선정적인 보도를 한 것은 아닌가. 대중문화예술인이라는 이유로 고인을 포토라인에 세울 것을 경찰 측에 무리하게 요청한 사실은 없었는지 묻고 싶다"고 말문을 열었다.
특히 KBS를 비롯한 일부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에 대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보도였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KBS를 포함한 모든 언론 및 미디어는 보도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기사 내용을 조속히 삭제하기 바란다"고 요청했다.
그는 "대중문화예술인이 대중의 인기에 기반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용하여 악의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소스를 흘리거나 충분한 취재나 확인절차 없이 이슈화에만 급급한 일부 유튜버를 포함한 황색언론들, 이른바 '사이버 렉카'의 병폐에 대해 우리는 언제까지 침묵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정부와 국회를 향한 요구 사항도 이어졌다. 이원태 감독은 "설령 수사당국의 수사절차가 적법했다고 하더라도 정부 및 국회는 이번 사망사건에 대해 침묵해서는 안 될 것"이라며 "형사사건 공개금지와 수사에 관한 인권보호를 위한 현행 법령에 문제점은 없는지 점검하고 필요한 법령의 제개정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피의자 인권과 국민의 알 권리 사이에서 원칙과 예외가 뒤바뀌는 일이 없도록, 수사당국이 법의 취지를 자의적으로 해석, 적용하는 일이 없도록 명확한 입법적 개선이 필요하다. 위 요구와 질문에 대하여 납득할만한 결과가 나올 때까지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문화예술인 연대회의는 제2의 이선균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이선균 방지법'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최정화 대표는 "피해 사실 공표로 인한 부당한 피해를 입는 것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국회에 전달할 예정이다. '이선균 방지법'을 위해 여러 단체들과 적극적으로 논의하고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선균은 마약 투약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아오던 중 지난달 27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48세. 고인이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경찰 수사는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됐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