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티 겨냥 예멘 본토 때린 미국, 미 관련 유조선 나포한 이란…불붙는 중동

손우성 기자 2024. 1. 12.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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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사나 등 후티 본거지 12곳 공격
후티는 응징 예고…“불안 가중” 우려
이란, 미 관련 유조선 나포 “석유 훔쳐”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확전 중대기로
영국 공군 전투기가 12일(현지시간) 예멘 후티 반군 본거지를 타격하기 위해 키프로스에서 이륙하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이 12일(현지시간) 홍해를 점거하고 있는 예멘 후티 반군 본거지를 공격했다. 지난해 10월7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 이후 미군이 예멘 본토를 타격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후티 반군은 대대적인 반격을 예고했다. 전날엔 후티 반군 뒷배인 이란이 미국과 관련된 유조선을 나포하기도 하는 등 중동을 둘러싼 긴장이 한층 고조되고 있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미군과 영국군은 이날 오전 3시쯤 예멘 수도 사나 등에 대규모 폭격을 가했다. AP통신은 복수의 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후티 반군 물류 창고와 방공 시스템, 무기 저장소 등 12곳에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을 발사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스푸트니크통신은 “예멘 서부 해안 도시 호데이다에서도 여러 차례 폭발음이 들렸다”고 전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곧바로 성명을 내고 “미군과 영국군이 호주·바레인·캐나다·네덜란드의 지원을 받아 후티 반군이 사용하는 예멘 내 다수의 목표물을 성공적으로 타격했다”고 밝혔다. 이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상업 항로인 홍해에서 항해의 자유를 위태롭게 하는 행위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분명한 메시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국은 후티 반군의 홍해 봉쇄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다국적 해군을 불러 모아 ‘번영 수호자 작전’을 개시한 바 있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도 “영국 해군은 후티 반군의 추가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홍해를 계속 순찰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후티 반군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침공에 맞서 하마스를 돕는다는 명분으로 지난해 11월19일부터 홍해를 사실상 점거하고 지금까지 민간 선박을 총 27차례 공격했다. 특히 전날엔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중동 순방 일정을 소화하는 가운데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 이후 처음으로 미국 국적 선박을 타격하는 도발을 감행했다.

예멘 후티 반군 대원이 11일(현지시간) 예멘 수도 사나에서 경계를 서고 있다. EPA연합뉴스

예멘 본토 공격에 후티 반군은 강력한 응징을 예고했다. 알자리라에 따르면 후티 반군 고위 인사인 후세인 알에지는 “미국은 노골적인 침략에 대한 끔찍한 결과를 감수해야 할 것”이라며 “무거운 대가를 치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후티 반군 정치국 지도부인 파들 아부 탈리브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어떤 전투나 대결에도 싸울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후티 반군은 예멘 5개 지역에서 총 73차례 공습을 받았다면서 최소 5명이 숨지고 6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미국의 예멘 본토 타격이 중동 긴장을 높여 확전 가능성을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 싱크탱크 퀸시연구소의 트리타 파르시 부소장은 알자지라와 인터뷰하며 “이번 공격은 중동 지역 불안을 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후티 반군이 오히려 공격 강도를 높일 수 있다”며 “장기적으론 홍해 안정에 도움이 안 된다”고 꼬집었다.

당장 미국의 중동 전략 핵심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성명을 내고 “홍해에서 벌어지고 있는 군사 작전과 예멘 공습에 큰 우려를 표한다”며 불쾌감을 표했다.

여기에 이란까지 도발 수위를 높이며 불안감을 더하고 있다. 이란 반관영 타스님통신에 따르면 이란 해군은 전날 걸프 해역과 오만만을 잇는 호르무즈 해협에서 그리스 선사 엠파이어 네비게이션이 운용하는 유조선 ‘세인트 니콜라스’를 나포했다.

애초 수에즈 라잔이라는 이름으로 운항했던 세인트 니콜라스는 지난해 4월 이란 원유를 싣고 가던 중 미국의 대이란 제재 위반 혐의로 미국에 압류돼 미국과 이란 간 갈등의 불씨가 됐다. 수에즈 라잔은 지난해 9월 이름을 세인트 니콜라스로 바꾸고 운항 중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자산운용사 소유였던 세인트 니콜라스는 지난해 5월 엠파이어 네비게이션에 소유권이 팔렸다.

타스님통신은 “해당 유조선이 이란의 석유를 훔쳐 미국에 제공했다”며 “이번 나포는 법원 명령에 따른 것”이라고 전했다. 엠파이어 내비게이션은 그리스인 1명과 필리핀인 18명 등 모두 19명이 승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은 반발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선박을 나포할 어떠한 정당한 사유도 없다”며 “당장 석방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이란은 미군의 후티 반군 거점 공습에 대해서도 날 선 반응을 보였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나세르 카나니 이란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성명을 통해 “예멘의 주권을 명백하게 침해했다”며 “미국과 영국의 군사 공격을 강력하게 규탄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하마스와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 후티 반군 후견인인 이란이 최근 잇따라 발생한 헤즈볼라 지휘관 폭사와 시리아·이라크 내 친이란 민병대 시설 폭격 등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 관련 유조선을 붙잡았다고 해석했다. 중동 전문가인 미 조지타운대 네이더 하세미 교수는 “유조선 나포는 역내 동맹을 표적으로 삼은 데 대한 이란의 보복”이라고 말했다.

■ 후티 반군은?
후티 반군은 예멘의 시아파 소수 분파인 자이드파 계열 무장단체다. 중동지역 시아파 맹주인 이란의 지원을 받고 있다. 가자지구의 하마스, 레바논의 헤즈볼라와 함께 이란을 중심으로 하는 이른바 ‘저항의 축’을 구성하고 있으며 반미와 반이스라엘을 기치로 내걸고 있다. 현재는 알 후티의 형제인 압둘 말리크 후티가 이끌고 있다.

후티 반군이라는 명칭은 창립자 후세인 알 후티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알 후티는 1992년 ‘믿는청년들’이라는 이름의 자이드파 운동단체를 설립하고 당시 독재자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이 지배하던 예멘에서 반정부 운동을 벌였다. 2004년 알 후티가 정부군에 의해 사살되자 이들은 이름을 후티로 바꿨다.

후티 반군과 예만 정부군 사이의 예멘 내전이 본격화된 것은 2011년 아랍의 봄으로 살레 대통령이 하야하고 압드라모 만수르 하디 정부가 들어선 뒤인 2014년부터다. 후티 반군은 하디 정부의 연료 보조금 삭감 등으로 대규모 시위가 벌어져 혼란이 커지자 수도를 향해 진격해 2015년 1월 수도 사나와 대통령궁을 점령했다. 하디 대통령은 2015년 2월 대통령직을 내려놓은 뒤 남부 아덴으로 피신해 사우디아라비아에 도움을 요청했다.

이에 중동지역 수니파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가 그해 3월 9개국과 연합해 후티 반군을 공습하며 내전에 불이 붙었다.

내전은 중동지역 맞수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이 각기 수니파 정부군과 시아파 후티 반군을 지원하는 대리전 양상으로 흘러가며 장기화됐다. 이에 따라 대규모 민간인 피해가 발생했다. 유엔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22년까지 예멘 내전으로 인해 약 37만7000명이 사망하고 400만명이 고향을 떠났다.

지난해 4월 후티 반군의 예멘 북부 통치권을 인정하는 등의 조건으로 사우디와 정부군, 후티 반군 사이에 휴전 협상이 진행되고 있었으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 후 후티 반군이 이란 지원을 받는 하마스를 돕는다는 명분으로 홍해상의 선박들을 수십차례 공격하면서 전망이 불투명해졌다. 미국은 이란 혁명수비대의 정예군인 쿠드스가 후티 반군에게 홍해를 지나는 민간 선박의 좌표 등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약 2만명에 이르는 후티 반군은 최근 무장을 대폭 강화해 순항 미사일, 탄도 미사일, 장거리 무인기(드론) 등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손우성 기자 applepi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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