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법 정국’ 여권의 고육지책 “김건희, 총선까지 안 나타난다”
민주당 내부 전략기획 보고서 단독 입수…“‘한동훈=尹 아바타’ 프레임”
(시사저널=김종일 기자)
'김건희 특검법' 정국이 시작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배우자인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진상 규명을 위한 특검법에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하면서 이 사안이 4·10 총선에 미칠 파장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김건희 특검법이 국회로 되돌아오면서 여야는 다시 '강 대 강' 대치 정국에 돌입했다. 국민의힘은 서둘러 본회의에서 재표결해 법안을 폐기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권한쟁의심판 청구 카드 등으로 '지연 전략'을 구사한다는 방침이다. 한마디로 새해 총선 초반 정국을 '김건희 특검법'이 이끌고 가게 됐다는 뜻이다.
김건희 특검법은 이번 총선에 ①선거 구도 ②한동훈 효과 ③공천 쇄신 등 크게 세 가지 차원에서 영향을 미칠 확률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우선 총선 구도를 결정할 가능성이 크다. 여권이 민심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한 채 김건희 여사 방어에만 몰두할 경우 안 그래도 우세한 '정권심판론' 구도는 더 굳어질 수 있다. 하지만 만약 야당이 민생을 뒤로한 채 김건희 특검법에만 지나치게 올인한다면 중도층의 피로감이 쌓이면서 자칫 역풍이 불어 '거야 견제론'을 유발할 수도 있다.
아울러 김건희 특검법은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정치적 운명과도 연동돼 있다는 평가가 많다. 한 위원장에게 김건희 특검법은 시험대이자 리트머스시험지다. 그가 비대위원장으로 성공하려면 여당 위기의 본질을 해결해야 한다. 즉 수직적 당정 관계에서 벗어나 대통령에게 여론을 제대로 전해야 하는데, 지금 민심의 핵심 요구에는 바로 '김건희 리스크'를 바로잡는 일이 자리한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거부권 행사에 반대하는 국민 여론이 60~70%에 달했지만, 윤 대통령의 선택은 민심과 반대였다. 한 위원장이 과연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의 표현처럼 윤 대통령에 대해 '아름다운 뒤통수'를 칠지, 친다면 어떤 식일지 지금 여의도 정치권은 주목하고 있다.
'이탈표 단속'과 '공천 혁신'…한동훈의 딜레마
김건희 특검법은 여당의 공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여권 입장에서 지금 제일 피하고 싶은 상황은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김건희 특검법을 국회가 재의결로 통과시키는 것이다. 이런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면 용산은 '레임덕'에 준하는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현재 총 298명인 재적 의원 과반이 출석하고 그중 3분의 2가 찬성하면 재의결 의안은 가결된다. 전원 출석을 전제로 하면 찬성에는 199표가 필요한데, 특검법이 처음 국회를 통과할 때 야당·무소속 의원 180명이 찬성했다. 국민의힘에서 20명만 이탈하면(최근 이상민 의원의 국민의힘 입당 효과) 김건희 특검법은 본회의 문턱을 넘게 된다. 재의결 표결은 무기명 투표다.
즉 한동훈 비대위에는 '공천 쇄신'과 '이탈표 단속'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풀어야 하는 딜레마가 있는 셈이다. 법령상 재의결 시한은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여당에서 '공천학살'이 펼쳐질 때 민주당이 재의결에 나설 수 있다는 뜻이다.
취재를 종합하면, 현재 여야는 모두 김건희 특검법을 두고 다양한 시나리오를 점검하며 치열한 '수싸움'을 펼치고 있다. 여권은 특별감찰관 임명과 제2부속실 설치는 물론 윤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과 대국민 사과 카드도 수면 위에 올려놓고 그 효과와 부작용 등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 네덜란드 순방 이후 한 달여 동안 공식 행사에 불참하며 잠행을 이어가고 있는 김건희 여사가 총선 때까지 일절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방침도 내부적으로는 가닥이 잡힌 상태라고 알려진다. 여권 일각에서는 특검 정국에 이어 '명품백 수수' 의혹으로 부정적 여론이 커지고 있는 만큼 김 여사의 거처 이동(관저에서 서초동 자택으로) 등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야권의 대응은 김건희 특검법을 고리로 윤 대통령의 정치적 자산을 허물고, 한동훈 비대위의 이미지를 격하시켜 이를 국민에게 널리 알리는 데 집중돼 있다. 작게는 '성역 없는 수사', 크게는 '원칙과 상식'이라는 정치적 자산으로 대통령이라는 자리까지 오른 윤 대통령이 정작 자신의 가족을 향한 수사는 가로막고 있음을 환기시키려는 전략이다. 동시에 민주당은 한동훈 비대위가 '김건희 특검 대책위'로 역할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윤 대통령과 한동훈 비대위를 동시에 '김건희 방탄'이라는 프레임(틀)에 가두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총선 때까지 '김건희 방탄' 프레임으로 정부·여당을 몰아세우겠다는 셈법인 셈이다.
野 프레임, '한동훈 비대위=김건희 대책위'
민주당은 윤 대통령이 김건희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한 1월5일 이후 하루도 빼놓지 않고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을 엮어 '김건희 방탄' 프레임에 옭아매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대통령과 대통령 가족을 위한 방탄 국무회의를 전격 실시"(5일, 홍익표 원내대표), "법무부는 대통령과 대통령 부인의 개인 변호사로 전락"(8일, 홍 원내대표), "정부가 김건희 리스크를 방어하기 위한 '김건희 카르텔'로 전락"(9일, 문진석 원내부대표), "김건희 특검을 거부한 방탄 윤석열, 방탄 한동훈, 방탄 법무부, 방탄 국힘당"(10일, 서영교 최고위원). 당 지도부가 공식 회의에서 핵심 메시지로 총공세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발언들에는 민주당의 숨은 전략이 담겨있다. 시사저널이 단독으로 입수한 민주당의 내부 전략기획 보고서에 따르면, 민주당은 한동훈 비대위를 '김건희 특검 대책위'로, 한 위원장을 '윤 대통령이 파견한 김건희 특검 대책위원장'으로 규정하려고 한다. 이러한 프레임화를 통해 정부·여당이 민생은 뒷전인 채 '김건희 지키기'에만 올인한다는 모습을 부각시키고, 동시에 김건희 특검법 수용 불가가 국민의 명령에 대한 도전이라는 주장을 펼치려고 하는 것이다. 한 위원장이 김건희 특검법을 '도이치 특검법'이라고 지칭했고, 대통령실과 똑같이 "총선용 악법"이라고 발언한 점을 다시 환기시켜 '한동훈=윤석열 아바타'라는 등식을 만들고자 하는 계산이다.
민주당은 정부·여당의 특검 불가론도 팩트체크로 적극 반박해 여론전을 펼친다는 전략이다. '총선용 특검'이란 주장에 "특검법안은 지난해 4월 국회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에 올랐다. 당시 국민의힘이 진상 규명에 동참했으면 이미 종료됐을 사안이고, 숙려 기간을 채우면 작년 말 상정된다는 사실을 여권도 알고 있었다"고 반박하는 식이다. 국민의힘은 특별검사 추천권을 야당만 갖는 것이 '독소조항'이라고 주장하는데, 민주당은 이에 대해서도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이 참여했던 국정농단 특검법도 동일했고, 헌법재판소가 합헌으로 판단했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김 여사의 의혹에 대해 '문재인 검찰'에서 탈탈 털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김 여사 관련 구체적 정황이 드러난 것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이며, 더 나올 게 없다면 왜 '윤석열 검찰'이 무혐의 통보를 하지 못하는지 반문하겠다는 입장도 펼치고 있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결국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이 '김건희 방탄'을 하고 있고, 김 여사만 비켜가는 '공정과 상식'과 '윤석열식 법치'를 강력 비판하고자 한다"며 "한 위원장이 '윤석열 아바타'라는 오명에서 벗어나려면 김건희 특검법 수용부터 해야 한다. 윤 대통령과 차별화하지 못하는 한 위원장의 모습을 계속 국민께 보여드리면 '정권심판론'이라는 구도가 확실히 굳어질 것"이라고 했다.
"'김건희 리스크' 안고 총선 못 치러" 與 불만 '부글부글'
최근 국민의힘을 중심으로 여권에서는 "'김건희 리스크'를 해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윤 대통령이 김건희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김 여사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큰 상황에서 이를 그대로 안고 총선을 치르기엔 부담이 크다는 의견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중도층 등 스윙보터가 많이 몰려있는 수도권에 출마하려는 후보자들의 불만이 크다.
실제 여당에서도 공개적으로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김경율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은 1월8일 "'김건희 여사 특검법'에 대한 70% 찬성 여론이 결국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그 자체라기보다는 김 여사 리스크에 대한 반응이라는 것을 모두 다 알고 있다"며 "그렇다면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이 납득할 만한 대안을 내놔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같은 날 조선일보 인터뷰에선 "이 문제를 풀어야 4·10 총선을 이기는 건데, 100점 만점에 40점짜리 문제를 피하면서 어떻게 커트라인인 70점을 넘길 수 있겠느냐. 윤석열답게 해결해야 한다"고도 했다. 대통령실과 여당은 그간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총선용 악법"이라며 수용할 수 없다는 공식 입장을 유지해 왔는데, 여당 지도부 인사로는 처음으로 결이 다른 목소리를 낸 것이다. 이후 윤재옥 원내대표가 주재한 1월9일 비공개 국민의힘 중진연석회의에서도 김 여사 리스크 해소 방안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개진된 것으로 전해졌다.
여권에서 조만간 내놓을 카드로는 '특별감찰관' 임명과 '제2부속실' 설치가 유력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대통령실은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한 후 이를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윤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을 열어 거부권 행사의 이유와 '명품백 수수' 의혹 등에 대해 사과 메시지를 내는 안도 검토되고 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한동훈 위원장이 한때 당내에서 논의되던 '총선 후 특검론'을 중재안으로 추진해 성난 민심을 달래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선거에 악용되지 않도록 수사 개시 시점을 총선 직후로 하고, 민주당 특검법안의 악법 조항들을 수정하자는 게 '총선 후 특검론'의 골자다. 일종의 중재안과 같은 '총선 후 특검론'으로 현재의 거부권 반대 여론을 돌파해야 한다는 제언인 셈인데, 현재까지 한동훈 위원장은 대통령실의 입장처럼 "특검 자체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기본적인 생각인 것으로 전해진다.
여권에서는 총선까지 이른바 김건희 여사의 '두문불출'도 현 상황을 타개할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김 여사는 지난달 네덜란드 국빈 방문 이후 대통령 공식 일정에 등장하지 않고 있다. 김건희 특검법에 대한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이후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공식적인 자리에서 자취를 감춘 것인데, 이를 총선까지 이어나가겠다는 방안이다. 이와 관련해 여권의 핵심 관계자는 "김건희 여사가 여러 사정들을 감안해 4월 총선이 끝날 때 까지는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여권 안팎에서는 결국 윤 대통령의 태도 변화가 관건이라는 지적이 많다. 김 여사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수그러들지 않는 것은 그간 김 여사 관련 의혹에 대해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이 보여온 과민반응에 기인한 면이 크기 때문이다.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는 경향신문 기고에서 이렇게 분석했다. "사실 문제의 핵심은 윤 대통령이 '김건희 리스크'의 본질과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모두 다 알고 있다시피 '김건희 리스크'는 김건희 문제가 아니다. 윤석열 문제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윤석열은 이번 4월 총선에서 승리하면 '김건희 리스크'도 해소할 수 있을 거라는 큰 기대를 걸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김건희 리스크' 때문에 총선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다는 게 객관적 현실이라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과연 윤 대통령은 바뀔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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