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문화예술인 연대회의(가칭)의 ‘고(故)이선균 배우의 죽음을 마주하는 문화예술인들의 요구' 성명서 발표식이 진행됐다.
문화예술인 연대회의는 29개 문화예술관련 단체를 중심으로 결성됐다. 연대회의는 지난해 12월 27일 세상을 떠난 故 이선균과 관련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데 뜻을 같이하고 수사당국 관계자들의 철저한 진상규명 촉구, 언론의 자정 노력과 함께 보도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기사 삭제 요구, 문화예술인의 인권보호를 위한 현행 법령 재개정 등을 요구하기 위해 이날 성명식을 진행했다.
이날 성명서 발표에는 봉준호 감독, 가수 윤종신, 이원태 감독, 배우 김의성을 비롯해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최정화 대표, 한국독립영화협회 고영재 대표, 영화수입배급협회 정상진 대표,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정상민 부대표, 한국영화마케팅사협회 이주연 대표, 여성영화인모임 김선아 대표, 한국영화감독조합 민규동 대표,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 송창곤 사무총장,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배대식 사무총장, 한국연예제작자협회 김명수 본부장, 한국매니지먼트연합 이남경 사무국장, 한국영화감독조합 장항준 감독, 여성영화인모임 소속 곽신애 대표,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소속 장원석 대표 등이 참석했다. 사회는 배우 최덕문이 맡았다.
행사는 참석자 및 제단체 소개, 경과 보고, 성명서 낭독 그리고 일부 제단체 발언, 향후 계획 순으로 진행됐다.
사회를 맡은 최덕문은 “이선균 배우의 안타까운 죽음을 마주하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데 뜻을 같이하고 첫 노력의 일환으로 이 자리를 만들었다”고 소개했다.
장원석 대표는 경과보고에서 “이선균 배우의 장례기간 방송, 음악, 영화 등 대중문화계 인사들이 문제의식을 같이했다”며 “29곳 문화예술단체와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배우 송강호 등 2000명의 문화예술인이 성명서 발표에 동참했는데, 이런 비극적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말자는 공감대의 결과라고 본다”고 말했다.
고인과 다수의 영화에서 호흡을 맞췄던 배우 김의성은 이날 경찰의 수사 절차와 관련해 “그는 아무런 보호 장치 없이 언론과 미디어에 노출됐다. 사건 관련성과 증거 능력 유무 조차 판단하기 어려운 녹츰 파일이 언론과 미디어를 통해 대중에 공개됐다”고 비판했다.
이어 김의성은 “결국 그는 19시간의 수사가 진행된 세번째 수사에서 거짓말탐지기로 진위를 밝혀달라는 요청을 남기고 스스로의 삶에 마침표를 찍는 참혹한 선택을 하게 됐다. 이에 지난 2개월간 그에게 가해진 가혹한 인격 살인에 대해 입장을 밝히는 것이 유명 달리한 이에 대한 문화예술인들의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한다”고 성명서를 발표하는 이유를 밝혔다.
고인과 이웃이었던 윤종신은 “사생활을 부각하여 선정적인 보도를 한 것은 아닌가. 대중문화예술이라는 이유로 고인을 포토 라인에 세울 것을 무리하게 요청한 적은 없었는가, 사적대화에 관한 고인의 음성을 보도에 포함한 KBS는 공영방송으로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보도였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보도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기사를 조속히 삭제하길 바란다"고 성명서를 낭독했다.
이어 윤종신은 "대중문화예술이 대중의 인기에 기반된다는 사실을 이용하여 악의적으로 검증할 수 없는 소스를 흘리거나, 이슈화에만 급급한 유튜버를 포함한 황색 언론들의 병폐에 대해 우리는 언제까지 침묵해야 하는가. 정녕 자정의 방법은 없는 것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인과 영화 ‘기생충’을 함께 했던 봉준호 감독은 “수사당국에 요구한다”며 “고인의 수사에 관한 내부 정보가 최초 누출된 시점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 2개월여에 걸친 기간 동안 경찰의 수사보안에 한치의 문제도 없었는지 관계자들의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한다”고 요구했다.
이어 봉준호 감독은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공보책임자의 부적법한 언론 대응은 없었는지, 공보책임자가 아닌 수사업무 종사자가 개별적으로 언론과 접촉하거나 기자 등으로부터 수사사건 등의 내용에 관한 질문을 받은 경우 부적법한 답변을 한 사실은 없는지 한치의 의구심도 없이 조사하여 그 결과를 공개하기를 요청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봉준호 감독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정밀감정 결과 음성판정이 난 지난 11월 24일 KBS 단독보도에는 다수의 수사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데 어떤 경위와 목적으로 제공된 것인지 면밀히 밝혀져야 할 것이며, 3번째 소환조사에서 고인이 19시간의 밤샘 수사에도 불구하고 일관되게 혐의를 부인한 후인 12월 26일에 보도된 내용 역시 그러하다”고 강조했다.
봉준호 감독은 “언론관계자의 취재 협조는 적법한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3차례에 걸친 소환절차 모두 고인이 출석 정보를 공개로 한 점, 당일 고인의 노출되지 않도록 대비하는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은 점이 과연 적법한 범위 내의 행위인지 명확하게 밝힐 것을 요청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지막으로 한국프로듀서조합 최정화 대표는 향후 계획 발표에서 “속칭 이선균 방지법을 만들기 위해 각 단체와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국회와 경찰청, KBS 등에 성명서를 전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이선균은 20대 여성 A씨의 자택에서 마약류 물질을 투약한 혐의로 지난해 10월부터 세 차례 경찰 조사를 받았다. 생전 이선균은 모발 등 모(毛) 마약 간이 검사 결과에서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으나 조사가 지속되자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요청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이선균은 세 번째 경찰 조사를 마친 나흘 후인 지난해 12월 27일, 오전 서울시 성북구 소재 모 공원 인근에 세워진 차량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향년 48세.
고인이 사망하면서 혐의는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됐다. 단 이선균을 협박해 각각 3억원과 5000만원을 뜯어낸 혐의로 피소된 A씨를 비롯해 협박에 가담한 또 다른 여성 B씨에 대한 경찰 수사는 진행 중이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