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태열 외교, 강제동원 배상 관련 “일본의 민간 기업들도 함께 배타는 마음으로 동참 기대”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12일 취임 후 첫 기자회견을 갖고 강제동원 배상 제3자 변제 해법과 관련해 “한·일 관계 개선의 흐름을 타서 일본의 민간 기업들도 함께 배를 타는 마음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노력에 동참해주시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조 장관은 이날 취임 후 출입기자단과 가진 첫 정식 기자회견에서 강제동원 해법과 관련해 ‘물컵의 반은 여전히 채워져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받고 “그러한 방향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외교적 노력을 강구하고자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조 장관은 지난해 부침을 겪은 한·중 관계를 어떻게 정상 궤도에 안착시키겠느냐는 질문에 “한·중 관계의 본질적 장애 요소보다는 대외적인 지정학적 환경이 어렵게 만드는 측면이 더 강하다”면서도 “그 환경 속에서 제약 요인을 가장 최소화할 수 있도록 외교적 노력을 경주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난 30년 동안 한·중 관계는 속도와 규모에 있어서 비약적인 발전을 했지만 이제는 속도와 규모로 평가를 하기보다는 양국 간 축적된 신뢰의 양이 얼마나 될 것인지, 지속 가능한 관계 발전을 위해서 뭘 어떻게 해야 되는지에 초점을 맞춰 여러 가지 정책을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냉전 구조 하에서의 우리의 경제안보 외교 정책과 관련 조 장관은 “구조적인 변화 속에서 오로지 실리만을 추구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라며 “정책적인 변화가 불가피하고 그러한 변화 속에서 우리가 대미 관계, 대중 관계를 어떻게 끌어갈 것이냐 하는 고민 속에서 나온 결과”라고 평가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강제동원 해법과 관련, 일본도 나름대로의 고민을 하고 있다고 여러번 언급했는데 어떤 고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강제동원 해법의 완결성과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한 새로운 복안이 있는가. 여전히 물컵의 반은 채워져야 하는가.
“강제징용 판결은 물론 피해자들의 인권에 관한 것이 사건의 본질이기는 하지만 외교적 측면에서의 문제의 핵심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체제와 2018년 우리 대법원의 판결 사이의 불일치 문제를 어떻게 극복하고 해소하느냐에 있다.
그런데 그것이 단순한 외교적 갈등이 아니라 양국 사법부 판결의 충돌로 이뤄진 문제기 때문에 그 문제를 해결하는 외교적 해법이라는 게 지난한 과제일 수밖에 없고, 그런 깊은 고민 끝에 나온 해법이 윤석열정부가 작년 3월에 내놓은 제3자 변제 해법이다. 저는 그것이 이러한 현실 속에서 거의 유일한 방안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이 문제를 풀어가는 길은 그 길밖에 없기 때문에 그 집행 과정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에 봉착한다 하더라도 그 해법을 기초로 문제를 풀어가고, 여러 현실적인 문제들은 정부가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과 함께 피해자 여러분들을 일일이 찾아뵙고 상황을 설명드리고 이해를 구하면서 문제를 풀어가는 지혜를 찾아내는 노력을 하겠다.
그 과정에서 한·일 관계 개선의 흐름을 타서 일본의 민간기업들도 함께 배를 타는 마음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노력에 동참해주시기를 기대하고, 또 그러한 방향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외교적 노력을 강구하고자 하는 것이 저의 생각이다.”
―한·일·중 정상회의 이후에 시진핑 주석 방한을 추진한다는 우리 정부의 큰 그림이 여전히 유효한가. 우리 대통령의 방중보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방한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는가. 한·중 관계가 정상 궤도에 복귀하기 위해서는 뭐가 제일 필요하다고 보는가.
“한·일·중 정상회의 이후에 시진핑 주석의 방한을 추진한다는 그런 방침이 있는 것은 아니다. 여러 외교 일정과 상황을 고려할 때 한·일·중 정상회의에 대해서는 이미 3국 간에 개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공감대가 이루어져 있고, 또 상호 편리한 시기에 개최하도록 양해가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그러한 바탕 위에서 이를 추진하면 현실적으로 먼저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렇다는 말씀이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방한은 아무 때라도 일정이 허락하면 오시는 것을 저희들이 환영하는 입장이니까 그건 그거와는 꼭 연계시킬 필요 없이 별도로 추진을 해서 가급적 조속한 시일 내에 오시면 좋겠다. 또 그동안에 우리 대통령이 북경에 가신 게 여섯 번인가 하면 시 주석의 방한은 한 번밖에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자연스럽게 이번에는 시 주석께서 오시는 게 합당한 순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정부도 하고 있고 저 개인적으로도 그게 합당하다고 생각한다.
(한·중 관계가 정상 궤도에 복귀하기 위해선) 여러 가지 대내외 환경이, 특히 국제 환경이 한·중 관계의 본질적인 장애요소보다는 대외적인 지정학적 환경이 어렵게 만드는 측면이 더 강하기 때문에 그러한 문제는 저희 컨트롤 영역 바깥에 있는 문제다. 그런 환경 속에서 제약 요인을 가장 최소화할 수 있도록 외교적 노력을 경주할 것이다.
그것보다 저는 더 심각한 게 양국 국민들의 상호 정서와 인식이 지난 몇 년간 극도로 악화되어 있고 별로 개선될 조짐이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중 관계에서 지금 봉착하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는 지정학적 환경의 문제, 미·중 전략 경쟁에서 오는 파장, 공급망 교란으로 인한 여러 가지 국제경제질서의 어려움 그런 것들이 크게 작용하는 것이다. (한·중 관계에서) 북한 핵 문제라든가 그런 여러 가지 우리의 그런 기준이 있지 않은가. 그런 문제에서는 서로 입장이 조율이 안 되면 갈등을 해소하기가 어렵다.
그렇지만 그보다 많은 협력 요소가 널려 있다. 경제 분야라든가 아니면 인문, 인적 교류 분야라든가 그런 것은 과거에도 오랜 기간 동안 많은 성과를 축적해 왔고, 그래서 그런 분야에 초점을 맞춰서 하나씩 가시적인 성과, 실질적인 협력사업, 또 그런 것을 통해서 신뢰 증진 이런 것들을 쌓아가는게 제일 중요하다. 어려운 상황에서 기대수준을 너무 높여놓으면 실망이 크다. 기대수준을 낮추고 작은 일에서부터 하나씩, 하나씩 미래를 향해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과거 지난 30년 동안 한·중 관계는 속도와 규모에 있어서 비약적인 발전을 했지만 이제는 속도와 규모로 평가를 하기보다는 양국 간 축적된 신뢰의 양이 얼마나 될 것인지, 지속 가능한 관계 발전을 위해서 뭘 어떻게 해야 되는지 그런 데에 초점을 맞춰서 여러 가지 정책을 추진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북·러 군사협력 강화와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여파로 우리나라와 러시아의 양자 관계를 관리하는 것도 갈수록 더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이다. 한·러 관계 돌파구를 어떻게 모색해 나갈 건지 궁금하다. 러시아 인사의 방한을 조기에 추진할 것인지를 비롯해 양국간 고위급 소통 계획도 설명 부탁드린다.
“한·러 관계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서 어려워져 있고 그래서 뭘 하더라도 성과를 내기 어려운 기본적인 현실적 제약 요인 속에 있다. 여러분들도 그건 다 동의하시리라고 생각한다. 우리 가치, 국익에 기반한 원칙과 기준 위에서 안정적으로 관리하겠다고 제가 말씀드렸고, 사실 그것이 현실적으로 우리가 추구할 수 있는 그런 목표라고 솔직히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근본적인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여러 가지 근본적인 요소들이 해소되지 않는 한 어떤 획기적인 관계 발전을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안정적으로 관리될 수 있도록 외교적인 노력을 할 것이다.
또 특히 전쟁 상황으로 인해서 우리 국민들과 기업들이 큰 피해가 가지 않도록 기업들, 국민들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이 정부의 가장 큰 과제라고 생각한다. 인적 교류라든가 고위 인사 교류 문제는 마찬가지 이유 때문에 그동안 상당히 소원했던 것이 현실이다. 그 문제는 노력은 하겠지만 일단 러시아 측 인사가 방한하겠다는 계획은 구체적으로 듣고 있진 못한다. 상황이 개선되는 걸 봐가면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북한이 연초부터 긴장을 고조하고 있다. 북한이 도발 수위를 끌어올린 배경이나 이유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 남북간 긴장고조가 ‘치킨게임’이라는 평가도 있다.
“다른 여러 가지 전략적인 셈법도 깔려 있겠지만 금년 들어서 서해 포격 사건 이런 것들은 윤석열 정부 들어서 한·미·일 안보협력, 한·미 확장억제가 커지고 대북 억제력을 강화하는 우리의 구체적인 노력이 굉장히 가시화되면서 불안감을 느끼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뭔가 한·미·일 사이의 이간, 갈라치기를 한다든가 신뢰에 균열이 가게 하거나 그런 어떤 의도를 가지고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개인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치킨게임으로 가는 거 아니냐, 그러면 거꾸로 도발이 그렇게 강화되고 있는데 우리는 가만히 있으면 우리의 안보는 확보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도발에 대해서는 분명히 원칙을 가지고 엄정하고 단호하게 대응을 해야 거기에 균형이 생기는 것이고, 또 그렇게 해서 국민들이 안심하게 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다. 어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하고도 통화를 했는데 그런 저희 입장을 분명히 얘기했고 앞으로도 그렇게 해나갈 것이다.”
―경제안보를 강화하겠다고 했다. 우리가 미국의 투자 요구에 협조하는 만큼 충분한 반대급부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저는 미국으로부터 뭔가를 받기 위해서 우리가 하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의 국익에 합당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우리의 결정에 따라서 대미 투자도 적극적으로 하는 것이지, 동맹인 미국이 요구하기 때문에 우리가 끌려가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지정학적 환경 변화가 가치를 중시하는 민주적, 자유민주적 시장의 가치를 중시하는 자유주의 국가들과 그것에 반대하는 권위주의 국가 간에 대립 현상, 블록화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는가. 그런 구조적인 변화 속에서 오로지 실리만을 추구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정책적인 변화가 불가피하고 그러한 변화 속에서 우리가 대미 관계, 대중 관계를 어떻게 끌어갈 것이냐 하는 고민 속에서 나온 결과니까 반대급부가 크냐, 작냐를 단기적으로 보고 평가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는 이런 지정학적 환경 변화에 맞춰서 우리가 살아갈 생존전략의 기본은 결국은 자강이다. 우리의 초기술 격차를 유지할 수 있는 노력도 하고 또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를 줄이는 노력을 하고, 위기 상황 속에서 우리가 전략적인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는 기술·능력을 제고하고 환경도 조성하면서 자강을 하는 것이 제일 기본적인 과제다. 두 번째는 결국 동맹을 중심으로 한 국제연대를 강화해서 보완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자강과 동맹을 토대로 한 국제연대 저는 그것이 해답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대미 관계가 강화되는 것이고, 또 한·중 관계에서도 다소의 불편을 겪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단기간에 끝날 게임이 아니라 장기 게임이라고 본다. 이 장기 게임에서 우리가 감수해야 될 단기적 비용을 우리가 과연 얼마나 감당해낼 수 있느냐, 우리 사회, 우리 경제, 우리 정치 시스템이 그걸 얼마나 감당해낼 수 있느냐가 저는 성패의 관건이라고 본다.”
홍주형 기자 jh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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