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경영 해체하고 개발자에 힘 준 엔씨…위기 극복 총력전
가족경영 탈피 시도…C레벨 뗀 윤송이·김택헌
대규모 사업·조직 개편 속도전…"노후화 이미지 벗어야"
[서울=뉴시스]최은수 기자 = 엔씨소프트(이하 엔씨)가 대대적인 경영쇄신에 나서고 있다. M&A(인수합병) 전문가 박병무 공동대표를 영입한 데 이어 뒷말이 무성했던 가족경영 체제도 과감히 해체했다. 수익이 나지 않는 사업과 게임들은 하나씩 정리하고 있다. 대표작 리니지 시리즈 부진과 10년간 공들인 신작 ‘TL’의 기대 이하의 성적이 이어지면서 이대로 시장에서 도태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엔씨는 올해 경영 효율화에 집중하는 한편 프로젝트BSS, 배틀크러쉬 등 다양한 장르·플랫폼 신작을 출시하고 리니지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계획이다. TL은 아마존게임즈와 협업해 글로벌 공략에 도전한다.
다만 당장 리니지 부진을 만회할 만한 대작 출시는 마땅치 않아 보인다. 이에 시장에서는 올해 엔씨의 경영 쇄신 성과가 향후 실적 개선을 좌우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힘 빠지는 '리니지'…탈(脫) 리니지 '고심'
유니버스·금융비즈센터 해체 등 사업 및 조직 쇄신 '고삐'…위기 극복 과제는
이 전망치를 기준으로 지난해 엔씨의 연 매출은 1조7924억원, 영업이익은 1497억원이 예상된다. 매해 2조원을 넘어섰던 매출은 1조원대로 내려앉고, 영업이익은 1년 전과 비교하면 73% 줄어든 규모다.
1년 만에 엔씨의 실적이 크게 휘청인 배경은 신작 부재에 캐시카우였던 모바일 리니지 게임의 매출이 지속적으로 감소한 영향이다. 엔씨는 2017년 리니지M, 2019년 리니지2M을 출시해 흥행 대박을 터뜨렸다. 통상 출시 초반 '반짝 매출'을 내고 1년도 되지 않아 서서히 매출이 꺾이는 모바일 MMORPG들과 달리 리니지 형제로 불리는 두 게임은 꾸준히 고공행진했다. 구글플레이 매출 1~2위를 장기간 석권하고 일 매출은 각각 100억원을 웃돌며 여타 게임사 분기 매출을 거뜬히 하루 만에 거뒀다.
리니지 형제 덕분에 엔씨는 지난 2020년 사상 처음으로 연매출 2조원을 돌파, 대형 게임사로 우뚝 올라섰다. 코로나19 비대면 수혜에 더해 리니지 두 형제의 선전 덕분이다. 이런 리니지의 명성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2021년 초 과도한 과금을 유도하는 확률형 아이템 논란으로 인해 민심이 크게 악화됐다. 또 ‘오딘’이라는 경쟁작에 밀려 선두자리를 내줬다. 같은 해 출시한 블레이드앤소울2, 트릭스터M의 성과도 부진, 100만원 가까이 올랐던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위기감을 느낀 엔씨는 2021년 후속작 리니지W를 출시하고, 반등을 모색했다. 내수시장 의존에 대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글로벌 시장을 겨냥했다. 당시 김택진 엔씨 대표는 "리니지 시리즈를 집대성하는 마지막 리니지를 개발하는 심정으로 만들었다“며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리니지W는 출시 열흘 만에 매출 1000억원을 달성하고 대만에서도 흥행에 성공하며 엔씨 자존심 회복에 성공했다. 2022년 리니지W가 올린 매출만 1조원에 달했다. 그러나 리니지W 매출은 점차 주춤하기 시작하더니 빠르게 감소했고, 지난해 1분기에는 리니지W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67% 줄었다. 건재했던 리니지2M의 매출도 지난해 들어 눈에 띄게 감소하기 시작했다. 리니지와 유사한 게임은 늘어나며 시장 경쟁은 치열해졌다. 더 이상 리니지로 실적을 유지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이에 더해 오는 3월부터는 게임 확률형 아이템 공개가 의무화되면서 규제가 강화됐다.
엔씨는 지난해 ‘탈리니지’를 목표로 다양한 게임 개발에 착수했다. 국내 최대 게임전시회 지스타에 8년 만에 참가해 준비 중인 신작들을 내놓고 변화 의지를 내비쳤다. 이어 12월에는 개발비가 대거 투입된 야심작 PC 게임 ‘TL’을 국내에 출시했다.
PC MMORPG TL은 자동 사냥, 확률형 아이템을 과감하게 배제하면서 이용자들의 호평을 이끌어내고 약속했던 변화를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 리니지처럼 폭발적인 매출을 낼 것이란 기대가 있던 것은 아니였지만 ‘한 방’을 보여주진 못했다. 최적화, 수동 조작 호불화 등 게임성에 대한 혹평도 이어졌다.
단, 대규모 개발비가 투입된 대작인 만큼 국내 초기 성과 만으로는 속단하기는 이르다는 시각도 많다. 이에 개발진들은 지역 이벤트 보상안을 조정하는 등 서비스 개선과 이용자 소통으로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로스트아크’ 글로벌 흥행에 성공한 아마존게임즈와 손잡고 북미, 유럽 등 해외에서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다.
아울러 엔씨는 올해 상반기 난투형 대전 액션 게임 배틀크러쉬, 수집형 RPG '프로젝트 BSS'를 출시할 예정이다. MMORTS(다중접속실시간전략게임) ‘프로젝트G’도 올해 출시를 목표로 한다.
그러나 이들 게임 모두 리니지처럼 큰 매출을 내는 MMORPG가 아닌 만큼 모바일 게임 매출을 회복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증권가는 본다. 대작인 슈팅 게임 ‘LLL’, 엔씨의 또 다른 대표작 아이온의 후속작 ‘아이온2’는 빨라야 내년에 출시될 예정이다.
엔씨가 경영 쇄신에 속도를 내고 있는 이유다. 비용 절감, 조직 개편, 사업 정리로 우선 경영 효율화를 이루겠다는 전략이다. 지난해 팬 플랫폼 '유니버스' 사업과 조직을 매각한 데 이어 연말에는 금융 신사업 조직인 ‘금융비즈센터’를 해체했다. 이달에는 자회사 엔트리브소프트를 정리하기로 하는 등 대규모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대대적인 인적 쇄신도 시작됐다. 지난달 법조계 출신이자 VIG파트너스 대표 등을 지낸 전문경영인 박병무 공동대표를 영입했다. 올 초 조직개편을 통해 국내 게임 개발과 사업을 이끄는 CBO(최고비즈니스책임자)에 3명을 앉혔다. '리니지' IP를 담당하는 이성구 부사장, '아이온2' 개발 총괄 백승욱 상무, 'TL'과 신규 IP 프로젝트를 이끄는 최문영 전무가 각각 CBO에 임명됐는데, 개발·사업 총괄들에게 힘을 실어주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반면 김택진 대표의 친동생 김택헌 부사장, 부인인 윤송이 사장은 각각 맡고 있던 CPO(최고퍼블리싱책임자), CSO(최고전략책임자) 직위를 내려놓고 해외법인 관리 등에 집중한다. 두 경영진이 맡고 있던 사업 성과가 부진하면서 주주 등으로부터 가족경영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되자 자구책을 내놓은 것으로 해석된다.
또 박병무 대표 내정자는 지난 5일 5억원을 들여 회사 주식 2088주를 매입했다. 최근 엔씨 주가가 22만원대까지 하락하자 주가 부양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유의미한 실적 및 기업가치 회복을 위해서는 엔씨가 M&A 전문가 박 대표를 필두로 적극적인 기업 인수에 나설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지난해 3분기 기준 엔씨의 연결 기준 현금, 단기금융상품 등 유동자산은 2조원이 넘어 실탄은 충분하다. 홍원준 CFO(최고재무책임자)는 "글로벌 시장에서 적극적으로 M&A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글로벌 진출을 경영 목표로 내세운 만큼 해외 게임사 M&A를 시도하거나 비게임사 인수로 새 성장동력을 확보할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근본적으로 엔씨가 세대 교체에 성공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아직까지 주력 수익모델이 노후화된 '리니지'에 의존하고 있어 '엔씨소프트=리니지'라는 이미지가 강하고, 게임 주 고객층도 '린저씨'를 탈피해 MZ 위주의 신규 고객 확보 전략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전성민 가천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TL이 새로운 시도이지만 바꾼 비즈니스 모델(BM)로 단번에 성과를 낸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다. 게임 이용자들이 변화하는 시간도 필요하다"라며 "TL이 새 이용자들을 유입시킬 수 있는 유인책을 마련해 반등에 노리는 한편, 인적 쇄신으로 새 경영진들이 젊고 유연한 사고로 다양한 시도를 해 회사를 젊게 만드는 것이 변화의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schoi@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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