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희의 정치사기] 친윤·친명 공천논란…지금이 세도정치 시기인가

김세희 2024. 1. 12.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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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제6집 1,2권. 여유당전서는 조선 후기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의 저술을 정리한 문집이다. 여유당은 저자인 정약용의 당호이다. 문집은 활자본 기준으로 154권 76책이 간행됐고, 목민심서(牧民心書)와 경세유표(經世遺表)등이 포함돼 있다.<국립중앙박물관 e뮤지엄>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9일 국회 본회의 중 이재명 대표와 문자 대화를 나누고 있다.<이데일리 제공>

"세력을 휘두르는 대여섯 집안/재상자리 대감자리 모두 차지하고/관찰사 절제사도 완전히 차지하네/도승지 부승지는 모두가 이들이며/사헌부 사간원도 전부가 이들이라/이들이 모두 다 벼슬아치 노릇하며/이들이 오로지 소송 판결하네."

조선 후기 대표 실학자인 정약용의 문집 '여유당전서'에 나온 시다. 여유당전서는 정약용의 저술을 정리한 문집으로, 그가 구상한 국가체제부터 시와 문장 등이 수록돼 있다. 정약용의 사상은 물론 조선 후기 사회상까지 파악할 수 있다.

당시는 세도 정치 시기였다. 소수의 유력한 가문이 정치권력을 독점하고 권세를 휘둘렀다. 이 시기를 거쳐간 왕 순조, 헌종, 철종은 정국 운영의 구심점이 되기는 역부족이었다. 안동 김씨, 풍양 조씨, 반남 박씨, 대구 서씨, 연안 이씨, 풍산 홍씨 등은 왕실과 혼인 관계를 맺고 자신들의 권한만 확대했다.

최고 의결 기구인 비변사를 장악해 국가권력에 개입하는 장치로 활용했으며, 관직 인사를 과점했다. 이들끼리 배타적 연합을 이뤄 다른 세력의 정치적 진출을 차단하고, 공론을 바탕으로 한 언론 기능은 무력화시켰다. 연소한 관료들이 국정에 참여할 수 있는 통로는 존재하지 않았다.

정치기강은 극도로 문란해지고 매관매직은 성행했다. 정약용의 '목민심서'에는 당시의 작태가 잘 나와 있다.

"가을에 한 늙은 아전이 대궐에서 돌아와서 처와 자식에게 '요즘 이름 있는 관리들이 모여서 하루 종일 이야기를 하여도 나랏일에 대한 계획이나 백성을 위한 걱정은 전혀 하지 않는다. 오로지 각 고을에서 보내오는 뇌물의 많고 적음과 좋고 나쁨에만 관심을 가지고 어느 고을의 수령이 보낸 물건은 극히 정묘하고 또 어느 수령이 보낸 물건은 매우 넉넉하다고 말한다. 이름 있는 관리들이 말하는 것이 이러하다면 지방에서 거두어들이는 것이 반드시 늘어날 것이다. 나라가 어찌 망하지 않겠는가'라고 한탄하면서 눈물을 흘려 마지 않았다."

지방의 수령들은 더 높은 관직에 오르기 위해 세도 가문의 권력자에게 뇌물을 바치고, 권력자는 그 뇌물의 양과 질을 평가했다. 수령들의 과욕은 결국 농민 수탈로 이어졌고, 삼정(전정, 군정, 환곡)의 문란이 심화됐다. 결론은 '민란'이라 불리는 농민항쟁이었다.

200여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4·10 총선이 석 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여야 모두 권력과 가까운 주류 인사들의 '공천 쏠림' 조짐이 두드러진다. 여권에선 대통령실 출신 인사 30여명이 출마 시동을 걸고 있다. '텃밭' 출마를 준비하는 인사가 절반 이상이다. 대구·경북(TK) 9명, 부산·울산·경남(PK) 7명, 서울 강남·서초·송파 3명이다. 어느덧 인요한 전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의 '친윤(친윤석열)·중진 험지 출마 권고'는 무색해진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친명(친이재명) 공천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양상이다. 친명계 인사들은 이재명 대표에게 비판의 날을 세웠던 비명계 의원들을 비방하며, 그들의 지역구에 출사표를 던진다. 이 대표의 권세를 뒤에 업은 이른바 '자객 출마'다.

공천을 결정하는 과정도 실세의 의도가 반영되는 듯하다. 여성 비서에게 성희롱 발언을 쏟아내 감찰 대상이 된 현근택 민주연구원 부원장의 사례가 그렇다. 친명계 좌장 정성호 의원은 "컷오프 대상"이라는 의견을 내고, 이 대표는 "너무 심한게 아닐까요"라는 문자를 보내는 게 현실이다. 성추행과 음주·무면허 운전 전력으로 논란이 불거진 강위원 당 대표 특보는 "성희롱 진상 조사 중 자괴감에 음주·무면허 운전을 한 것"이라는 공천에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얘기한다. 대표의 측근이 아니라면 이런 궤변을 당당히 할 수 있을 지 궁금하다.

참으로 낮뜨거운 정치권의 자화상이다. 세도정치 시기처럼 공천 권한은 소수의 권력자가 독점하고, 입지자들은 선택을 받기 위해 '총애'를 들먹이며 충성을 맹세한다. 총선 시기만 되면 나오는 단골메뉴다. 과연 이들이 국민을 대표하는 입법자로서 제 역할을 할지 두고 볼 일이다.

김세희기자 saehee012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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