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 인사이드] “우리은행 이명관입니다”

손동환 2024. 1. 12.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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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바스켓코리아 웹진 2023년 12월호에 게재됐다. 인터뷰는 11월 23일 오후에 이뤄졌다.(바스켓코리아 웹진 구매 링크)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스포츠에서는 많이 발생한다. 그래서 스포츠는 예상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스포츠가 ‘각본 없는 드라마’로 불리는 이유다.
아산 우리은행으로 이적한 이명관도 기대를 많이 받지 못했다. 그러나 경기마다 생각 이상의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위성우 우리은행 감독도 “도대체 정체가 뭘까?”라고 할 정도였다. 이명관은 그만큼 WKBL에서 매력적인 인물이 됐다.

‘끝’과 ‘끝’을 경험한 자
2020년 1월 9일. 2019~2020 WKBL 신입선수선발회가 인천 청라에 위치한 하나 글로벌캠퍼스에서 열렸다. 대학 졸업 예정자와 고교 졸업 예정자, 해외동포선수 등 여러 신분의 지원자들이 프로 구단의 지명을 기다렸다.
17명의 선수가 부름을 받았다. 그리고 3라운드 6순위. 용인 삼성생명의 차례였다. 임근배 삼성생명 감독은 “단국대학교 이명관”을 외쳤다. 부름을 기다리던 이명관은 눈물을 참지 못했다. 그리고 신입선수선발회는 끝이 났다. 절벽의 끝에 섰던 이명관은 기사회생했다.
기사회생한 이명관은 몸부터 만들었다. 몸을 끌어올린 이명관은 한 박자 빠른 공격과 좋은 피지컬, 자신 있는 슈팅 등 강점을 뽐냈다. 특히, 2020~2021 챔피언 결정전 4차전에서 31분 35초 출전에 12점.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 갔다.
삼성생명은 비록 4차전을 졌지만, 5차전에서 KB를 격파. 3승 2패로 최후의 승자가 됐다. 이명관은 데뷔 후 처음으로 ‘우승 반지’를 거머쥐었다. 절벽의 끝에 섰던 이가 하늘의 끝을 경험한 셈이다.

신입선수선발회를 한 번 떠올려주세요.
대학리그 중반에 전방십자인대를 다쳤어요. 대학선발팀에 뽑혔지만 박신자컵에 나가지 못했고, 대학리그 챔피언 결정전에도 출전하지 못했어요. 게다가 WKBL이 신입선수선발회 트라이아웃을 창설했는데, 저는 거기에도 나설 수 없었어요.
그리고 제 이름이 3라운드 중반까지 불리지 않았어요. ‘농구를 그만해야 하나? 실업 팀을 알아봐야 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뽑아만 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고요. 그런 생각을 하던 와중에, 제 이름이 불렸어요. 그래서 기뻤고, 바보 같이 울었던 것 같아요.(웃음)
늦게 지명된 이유는 ‘무릎 부상’이었습니다. 프로 입단 후에도 재활을 해야 했고요.
프로 입단 전에도 재활을 어느 정도 진행했습니다. 그렇지만 농구할 수 있는 몸은 아니었어요. 팀 합류 후에도 재활을 해야 했죠. 그러다가 2020년 5월에 팀 훈련에 합류했습니다. 그때부터 농구 훈련을 시작했어요.
재활 후가 더 막막했을 것 같아요. 팀에 녹아들어야 했으니까요.
제가 재활할 때, 제 동기들은 퓨쳐스리그를 뛰었습니다. 정말 부러웠어요. 한편으로는 뛸 수 없는 저 자신에게 답답했어요. 그렇지만 ‘시간이 약’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뛸 수 있는 몸에 신경을 더 기울였죠.
그리고 비시즌 준비를 하는데, 프로와 대학의 차이가 크게 느껴졌어요. 마침 ‘핸드 체킹 룰’이 강화돼서, 적응해야 할 것들이 더 많았습니다. 하지만 감독님과 코치님, 언니들께서 많이 알려주셨어요. ‘나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마음을 다잡았어요.
데뷔 시즌(2020~2021)에 챔피언 결정전 우승을 경험했습니다.
복귀 시즌이어서, ‘욕심 부리지 말자. 다치지 말자. 그리고 짧은 시간이라도 열심히 뛰어야 한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렇지만 기회를 생각보다 많이 얻었고, 그 기회를 잡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또, 플레이오프 때, 선수들 모두 (김)보미 언니(현 WKBL 경기운영부장)의 은퇴를 알게 됐습니다. 다들 보미 언니를 위해 열심히 뛰었고, 그래서 플레이오프와 챔피언 결정전에서도 재미있게 경기한 것 같아요.
챔피언 결정전을 뛰기도 하셨잖아요.
팀 우승도 그렇지만, 제가 챔피언 결정전에 뛴 것도 믿기 어려웠어요. 사실 큰 경기를 뛸 기회가 많지 않은데, 제가 그런 경기에 있다는 게 신기했어요. 무엇보다 농구 인생에서 첫 우승이라, 기억에 많이 남는 것 같아요.(웃음)

변화 그리고 시련
이름을 알린 이명관은 핵심 백업 자원으로 거듭났다. 출전 시간이 그렇게 긴 건 아니었지만, 자기 시간 동안 쏠쏠하게 활약했다.(2021~2022 : 23경기 평균 15분 26초, 2022~2023 : 27경기 평균 14분 44초) 삼성생명의 미래로 꼽히기도 했다.
하지만 이명관은 2022~2023시즌 종료 후 우리은행으로 트레이드됐다. 우리은행은 삼성생명과 정반대 성향의 팀이다. 또, 삼성생명은 젊은 선수를 많이 보유한 팀이라면, 우리은행은 베테랑을 주축 전력으로 삼는 팀이다. 그런 이유로, ‘이명관이 과연 우리은행에 어떻게 적응할까?’라는 개인적인 걱정도 들었다.(물론,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그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이명관이 발바닥 부상을 안고 있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우리은행은 미래를 바라봤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이명관의 완전한 회복을 원했다. 그래서 수술과 치료, 재활을 이명관에게 주문했다.

우승 후 삼성생명에서의 생활은 어땠나요?
유망주도 많고, 주전과 벤치의 차이도 크지 않아요. 누가 나가도 자기 역할을 하죠. 그래서 다들 선의의 경쟁을 했고, 각자의 기량도 많이 늘었습니다. (삼성생명에서의 생활은) 좋았어요.(웃음)
2023년 5월. 트레이드 통보를 받았습니다.
삼성생명은 저에게 많은 추억을 안겨줬습니다. 하지만 저는 훈련 복귀 1주일 전에 트레이드 소식을 접했어요. 너무 갑작스러웠어요. (동료들과는) ‘헤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렇게 빨리 헤어질 줄 몰랐어요. 그렇지만 이렇게 된 거, ‘우리은행에서 잘 해야 한다. 우리은행에 도움이 되고 싶다’고 생각을 바꿨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트레이드된 팀이 우리은행이었습니다. 이미지만 놓고 보면, 삼성생명과는 전혀 다른 팀입니다.
‘운동이 힘들다’는 말도 많이 들었고, ‘수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팀’이라는 이미지도 강했습니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부호가 생긴 이유였죠. 하지만 앞서 말씀드렸던 대로, ‘이렇게 된 거 부딪혀보자’고 다짐했습니다.
그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발바닥 부상을 안고 계셨는데요.
우리은행에서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또, 비시즌 내내 팀 가용 인원이 많지 않았습니다. 동료들이 힘들어하는 걸 보면서, ‘(다른 선수들의) 체력 부담을 덜어줘야 하는데... 나도 도움이 돼야 하는데...’라고 마음앓이를 했어요.
동시에,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저 스스로 많이 무너졌어요. 많이 힘들었고, 많이 울었어요. 그렇지만 팀원들이 그때마다 저를 도와줬어요. 그래서 제가 지금처럼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웃음)

구원
위에서 이야기했던 대로, 이명관은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치료와 재활에 매진했다. ‘완전한 회복’을 신경 썼다. 그래서 많은 관계자들이 “‘우리은행 이명관’을 시즌 초반에는 볼 수 없을 것 같다”고 예측했다.
하지만 변수가 발생했다. 우리은행에 부상자가 너무 많이 발생한 것. 기대를 모았던 유승희가 전방십자인대 파열로 이탈했고, 주전 슈터로 거듭나야 할 나윤정이 왼쪽 어깨를 다쳤다. 게다가 박혜진은 합류 시점을 알 수 없었다. 우리은행의 살림은 꽤 빡빡했다.
그래서 위성우 우리은행 감독은 이명관을 어쩔 수 없이 복귀시켰다. 그렇기 때문에, 이명관에게 많은 걸 바라지 않았다. 하지만 이명관은 그렇지 않았다. 기대 이상의 경기력을 보여줬다.
특히, 지난 11월 15일에는 기적을 만들었다. 경기 종료 3.6초 전에 시작된 사이드 라인 패턴을 이어받았고, 경기 종료 부저와 함께 역전 골밑 슛을 성공한 것. 이로 인해, 우리은행은 KB와 맞대결에서 72-71로 역전승. 2023~2024 1라운드를 단독 선두로 마쳤다. 이명관이라는 ‘구원군’이 2023~2024 선두 판도를 흔들어놓았다.

‘우리은행 데뷔전’부터 심상치 않았습니다.
(이명관은 11월 9일 부천 하나원큐를 상대로 23분 51초 동안 8점 3리바운드 1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우리은행은 하나원큐를 57-55로 꺾었다)

비시즌 훈련을 거의 하지 못했고, 팀원들과도 합을 맞춰보지 못했습니다. 몸 상태도 완전치 않았어요. 그래서 ‘구멍만 되지 말자. 궂은일이랑 수비부터 하자’고 다짐했죠. 그렇게 마음 먹은 게 생각보다 잘 된 것 같아요. 저 스스로도 거기서 에너지를 얻었고요.
그리고 저희 팀 수비가 워낙 좋아요. 또, 상대 수비가 다른 언니들과 (박)지현이에게 쏠려요. 공격에서는 그 덕을 톡톡히 본 것 같아요.
KB전에서는 ‘3.6초의 기적’을 만들었습니다.
(박)지현이가 마무리하는 건데, 제 수비수도 지현이한테 갔어요. 하지만 지현이가 저한테 볼을 줬고, 제가 슛 찬스를 얻었어요.(박지현은 “(이)명관 언니가 눈이 커진 채로 ‘지현아!’라고 크게 불렀다”며 당시를 돌아봤다) 그때 (박)지수가 저에게 왔는데, 그 장면이 슬로우 모션처럼 보였어요.
슛을 던질 때, 여러 생각이 들었을 것 같아요.
지수가 워낙 높잖아요. 지수한테 찍힐 것 같아서, 저도 빨리 던졌어요. 제 느낌엔 분명 들어갈 것 같았어요. 하지만 백 보드 상단이랑 림 바깥쪽을 맞았고, 볼이 어렵게 들어갔어요.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못 넣었으면, 대역 죄인이 됐을 거예요.(웃음)
KB를 상대한 후, 친정 팀인 삼성생명과 만났습니다.
(이명관은 당시 30분 48초 동안 3점 3개를 포함해 9점을 넣었다)

감독님도 코치님도 “어때? 신경 쓰는 거 아니지?”라고 하시더라고요.(웃음) 사실 저도 이상하기는 했어요. 어웨이 라커룸을 처음 가봤고, 제 응원가가 용인에서 들리지 않았으니까요. 무엇보다 같이 뛰었던 사람들을 상대 팀으로 마주하는 게 어려웠어요. 서로의 성향을 너무 잘 알았거든요.

우리은행 이명관
2023~2024 1라운드만 지났다고 하나, ‘우리은행 이명관’은 너무 찰떡 같은 단어가 됐다. 실제로, 이명관은 우리은행에 없어서는 안 될 선수가 됐다. 위성우 우리은행 감독은 “도대체 정체가 뭔지 모르겠다(웃음)”며 극찬의 멘트를 남겼다.
그러나 시즌은 길다. 우리은행도 이명관도 남은 5개월을 잘 치러야 한다. 2023~2024시즌이 끝난 후에야, 이명관은 진정한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이명관은 상승세인 자신을 신중하게 생각했다.

시즌 초반부터 기대 이상의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습니다. 몸이 완전치 않기 때문에, ‘수비랑 궂은일부터 하자’고 다짐했죠. 거기에 집중하다 보니, 제 에너지가 자연스럽게 올라간 것 같아요.
무엇보다 언니들과 지현이가 수비를 몰 때, 제 찬스가 많이 났어요. 거기서 1~2개씩 넣다 보니, 자신감이 올라간 것 같아요. 그게 가장 큰 원동력이라고 생각해요.(웃음)
위성우 감독님께서는 “정체가 뭐냐?”라는 극찬의 말을 남겼습니다.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웃음) 저조차도 ‘몸이 완벽하지 않은데, 이렇게 한다고?’라는 생각을 했으니까요.(웃음) 비시즌 운동을 한 것도 아니고, 운동을 시작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거든요. 연습 때 100%의 힘을 쏟지도 못합니다.(웃음) 다만, 많은 분들이 저를 믿어주시기 때문에, 제가 기대 이상의 경기력을 보여준 것 같아요.
직접 경험한 우리은행은 어떤 팀인가요?
밖에서 봤을 때도, ‘정말 팀워크 좋고 끈끈하다. 가족 같은 느낌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직접 경험해보니, 더 가족 같고 더 끈끈해요. 무엇보다 코트에서 서로의 부족함을 잘 메워줘요. 그래서 저희 팀명이 ‘우리 원’(실제 명칭은 ‘우리WON’이다)이지 않을까요?(웃음)
‘우리은행 이명관’이 꾸는 꿈은 무엇인가요?
다들 부상 없이 건강했으면 좋겠어요. 열심히 해서 우승하면 좋겠고, 저 역시 우승에 도움을 주고 싶어요. 개인적으로는 평균치를 형성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버킷 리스트가 있습니다.
무엇인가요?
저 빼고 저희 팀원 전부 하와이를 다녀왔습니다.(우리은행은 2022~2023시즌 통합 우승 후 하와이로 포상 여행을 다녀왔다) 이번 여름에 보니, 다들 하와이에서 산 티셔츠를 입더라고요.(웃음) 저도 우승 멤버로서 하와이에 꼭 가보고 싶어요.

일러스트 = 정승환 작가
사진 제공 = WKB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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