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 곧’ 김지훈, 이게 바로 ‘섹시 빌런’[인터뷰]
배우 김지훈이 또 한번 ‘섹시 빌런’으로 돌아왔다. 무서운데 섹시하고, 잔인한데 빠져들게 되는 배우 김지훈에게는 ‘섹시 빌런’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누가 ‘왔다! 장보리’ 속 훈남 실장님을 떠올리겠는가. 이젠 얼굴만 봐도 섬뜩하니 살의가 느껴지는 그에게, 별명을 노리고 관리하는 거냐고 물으니 솔직한 답을 내놨다.
“노린다기보단 배우로서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으니까 관리를 하는 것 같아요. 그런 별명 보면 기분 좋아요.”
OTT 플랫폼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이재, 곧 죽습니다’(이하 ‘이재, 곧’)는 지옥으로 떨어지기 전의 이재(서인국 분)가 12번의 죽음과 삶을 경험하게 되는 인생 환승 드라마. 지난 5일 파트 2가 공개됐다. 네이버 웹툰 ‘이제 곧 죽습니다’를 원작으로 한다.
김지훈은 11일 스포츠경향과 만난 자리에서 ‘이재, 곧’에서 자신의 욕망을 위해 살인을 멈추지 않는 사이코패스 박태우로 분한 소감과 계속해서 악역을 연기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 이미지 고착화에 대한 생각 등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려줬다.
◆ “박태우 사고 이후의 삶? 궁금하지 않아요”
‘이재, 곧’ 박태우 역으로 또 한번 빌런의 새 역사를 쓴 김지훈. 그는 사람들의 반응을 다 찾아보는 편이라고 말했다.
“이 드라마의 메시지가 삶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것이라 이재처럼 힘든 순간에 있던 사람들이 이 드라마를 보고 ‘나쁜 생각은 하지 말아야겠다’라는 댓글도 종종 보이더라고요. 제 역할에 대해 많이 무섭다고 해주셔서 기분도 좋아요.”
높은 완성도는 물론, 웹툰 속 세계관의 실사화로 국내와 해외에서 모두 호평을 자아낸 ‘이재, 곧’. 아마존 프라임비디오에서 글로벌 TV쇼 차트 2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전혀 예상치 못하진 않았다는 반응이다.
“그러길 바랐어요. 이 이야기는 국가와 인종을 떠나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라 해외에서도 많은 관심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어요.”
극 중 박태우는 사고를 당해 다리가 절단된 채로 살게 된다. 김지훈은 이후의 삶에 대해 “시청자 입장에서는 궁금할 수 있지만 저는 제 할 일을 다했기에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열린 결말이라는 게 사람들에게 각자의 생각을 할 수 있게끔 만드는 거니까”라며 “박태우 역을 연기하는 제게는 닫힌 결말이었다. 박태우가 나쁜 짓을 하다가 처절하게 응징을 당하고 지옥 같은 삶을 살게 되는 것까지가 박태우에게 있는 결말이라 그 이후는 생각해본 적 없다”고 덧붙였다.
◆ “계속 악역을 하겠다고 고집하는 건 아니에요”
김지훈은 tvN 드라마 ‘악의 꽃’(2020), 넷플릭스 영화 ‘발레리나’(2023) 등으로 ‘장발 빌런’이라는 독보적 이미지를 구축했다. 과거 ‘왔다! 장보리’(2014)에서의 훈남 실장님의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완전한 탈바꿈에 성공했다. 그러나 악역을 계속 해오면서 사람들의 기대 충족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을까.
“제 연기력으로 그런 걸 극복해내겠다는 건 불가능한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좋은 이야기와 설득력 있는 캐릭터가 주어졌을 때 내가 잘 만들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은 있어요. 다음 작품이 뭐가 될진 모르겠어요. 제가 악역을 계속 하겠다고 고집하는 것도 아니에요. 제게 주어지는 작품, 대본, 역할 중 가장 매력있는 걸 고르다보니 악역이었던 거죠. 부담을 갖진 않아요. 선역도 들어오고요. 들어오는 작품들 중 고르다 보니 악역이 되던데요.”
그러나 연달아 악역만 연기하는 그에 대한 아쉬움 때문인지, 여기저기서 악역 이미지가 고착화되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이에 대한 답을 찾았을까.
“고민을 한 적이 없어요. 고착화된다고 해도 10년 전의 김지훈이라는 배우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이미지가 생긴 거예요. 오히려 이 이미지가 강하게 고착된다면 저는 더 흥미롭게 받아들일 것 같아요. 지금 악역을 하는 것도 ‘실장님’ 타이틀을 깨는 도전을 하다 보니 반갑게 느껴져요.”
극 중 잔학무도한 모습은 욕이 절로 나오게끔 만든다. 욕을 하면서도 자꾸만 보고 싶어지게 만드는 그만의 매력이 있을까. 사람들이 그의 악역 연기를 계속해서 보는 이유를 묻자 쑥스러운 듯 웃어보이는 그다.
“제 입으로 말하기 민망하지만 악역을 하는 사람들 중에선 비주얼이 좀 더 봐줄만 하니까. (웃음) 나쁜 짓을 하는데 비주얼적으로 매력이 있으니까. ‘발레리나’에서 제가 노렸던 반응이 ‘너무 쓰레기인데 섹시해. 멋있어’라는 것이었어요. 그걸 바라며 연기했어요. 박태우도 마찬가지예요. 호감과 비호감 이미지가 동시에 전달이 되는 게 제가 생각하는 사람들이 제 악역을 좋아하는 이유인 것 같아요.”
계속해서 악역을 연기하며 생기는 부작용에 대한 물음에는 “다행히 몰입할 때만 좀 그런 편인 것 같다. 아직까지 그런 부작용은 없다. 마지막 촬영하고 ‘수고하셨습니다’ 하면서 그 역할에서 빠져나오는 편이다. 작품할 때는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곤 하지만 끝나면 수월하게 빠져나온다”고 답했다.
◆ “로맨틱 코미디도, 진한 멜로도 하고 싶어요.”
차기작은 아직 정해진 게 없다고 했다.
“로맨틱 코미디도 하고 싶고, 진한 멜로도 하고 싶어요. 연기자로 오래 생활하면서 그런 생각들이 버려지는 것 같아요. 내 생각과 관계없이 흘러가게 되더라고요. 차기작은 아직이에요.”
대중들은 그에게 다른 모습을 원한다. 가벼운 모습들도 대중에게 보여줄 생각이 있는지 궁금해졌다.
“저는 계속 보여주려고 해요. 사람들이 안 봐서 모르는 것 같아요. (웃음) 아무래도 사람들에게 더 인상이 남는 게 악역이다 보니까 악역만 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시는 것 같아요. 늘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해요.”
2002년 KBS 드라마 ‘러빙 유’로 데뷔한 그는 어느덧 데뷔 22년 차가 됐다. 마지막으로 연기자로서 계속 쫓고 싶은 목표가 있는지 물었다.
“전설적인 배우가 있지 않나요. 알 파치노와 같은 분들의 삶을 필모를 통해 쫓아가는 것 같아요. 그분들의 그림자라도 쫓아가려고 애를 쓰는 것 같아요. 연기라는 세계는 완전한 만족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현재의 위치에 안주하지 않고 높은 곳을 바라보며 자극을 받는 게 건강한 연기자로서 계속 연기를 할 수 있는 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김나연 온라인기자 letter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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