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존과 개발 사이… 도시는 저마다의 ‘속사정’이 있다”[북리뷰]
로버트 파우저 지음│혜화1117
‘도시는 왜…’ 출간 인문학자 로버트 파우저
■ 도시는 왜 역사를 보존하는가
로버트 파우저 지음│혜화1117
‘도시는 왜…’ 출간 인문학자 로버트 파우저
로마·교토, 종교 영향 경관유지
윌리엄즈버그는‘애국 테마파크’
韓·日 여러도시 떠돌며 살아와
“情 많은 부산서 가장 살고싶어”
“나만의 도시 만들면 내가 보여”
“언어처럼 도시에도 문법이 있어요. 구조, 체계, 그리고 작동 원리까지…. 그래서 도시 탐구는 외국어 학습이랑 비슷하고, 그만큼 매력적이고 재미있는 일입니다.”
‘언어’와 ‘도시’라는 두 개의 큰 축을 활용해 주체적인 영역을 개척해 온 독립 인문학자이자 작가인 로버트 파우저(63). ‘토종’ 미국인으로 한국어와 일본어에 능통하고 독일어, 스페인어, 프랑스어까지 십수 개 언어를 구사하는 파우저 작가는 ‘외국어 학습담’(2021)을 통해 그 비결을 풀어놓은 바 있다. 이번엔 도시에 관한 남다른 탐구의 결과물, ‘도시는 왜 역사를 보존하는가’를 들고 돌아왔다.
한국과 미국, 일본의 여러 도시에 살고 경험한 소회를 담은 ‘로버트 파우저의 도시 탐구기’(2019)와는 결이 사뭇 다르다. 전작이 도시와 ‘나’의 관계, 개인의 감응에 초점을 맞췄다면, 신간은 보다 공적인 차원에 ‘도시’를 불러들인다. 세계 주요 도시들이 역사를 보존해 온 방식과 근본적인 이유를 살펴보고, 상충할 수밖에 없는 보존과 개발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논의의 장을 여는 것. 한때 서울 북촌에 살며 한옥 지킴이를 자처했던 걸로도 유명한 파우저 작가는 “도시를 분석하는 건 ‘시간의 흐름’을 읽는 일이고, 그중 하나가 ‘과거’를 어떻게 볼 것인가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화석화’하는 방식으로 무조건 지키자는 게 아니라 오래된 것을 ‘존중’해야 한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책은 경주와 전주, 서울을 비롯해 교토와 나라, 히로시마, 그리고 베를린과 드레스덴, 파리, 런던까지 아우르며 19개 도시의 ‘속사정’을 파고든다. 이탈리아 로마와 일본 교토는 ‘종교’의 영향 아래 그 경관을 오롯이 유지하고 있으며, 미국 윌리엄즈버그와 일본의 나라는 애국심 고취의 ‘테마파크’로서 보존, 활용된 사례다. 또, 미국 뉴욕과 독일 베를린에는 ‘사회적 저항’의 흔적이 가득하다. “다르다는 거예요. 역사를 보존하는 이유, 방식, 맥락이….” 그는 한국 사회가 보존의 여러 ‘다름’을 알고, 새로운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기를 바란다고 했다. “과거는 ‘뿌리’이고, 보존은 뿌리를 단단하게 하는 일이죠. 뿌리가 없는 사람은 흔들려요, 모든 면에서.”
신간은 미국 로드아일랜드 집에 머물며 썼다. 관심 분야가 있으면 수년간 관찰하고 공부하고, 탐구한다. 그래서 집필은 석 달이면 충분했다. ‘하루 A4 2장, 일주일에 10장, 한 달 40장’ 식으로 최소한의 작업량을 세워두고, 규칙적으로 쓴다. 그는 처음부터 한글로 작업하는 걸로도 유명하다. 영어로 쓴 후 번역하고, 다듬는 게 빠르지 않냐 물었더니 “그게 더 느리고 번거롭다”며 웃었다. 무엇보다 한국어로 곧바로 쓰는 게 즐겁고 보람이 있다고. “책 쓰는 일은 그 자체로 한국어 학습이죠. 또, 멀리 미국에서 지내면서 ‘제2의 고향’과 닿아 있다는 안도감도 들고요.”
‘도시는 왜 역사를 보존하는가’ 출간을 기해 ‘로버트 파우저의 도시 탐구기’도 개정판으로 선보인다. ‘도시독법’이라 새로 이름 붙인 책에는 부산을 새로운 탐구 대상으로 추가했다.
‘언어 순례자’이자 ‘각국 생활자’인 그는 ‘살고 싶은 도시’에 대한 질문을 자주 받는데 “지금은 압도적으로 부산이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바다, 산, 집, 사람. 다채로운 풍광과 분위기가 어느 하나 매력적이지 않은 게 없어요. 걷기 좋은 길, 예쁜 길도 많고, 바다를 보면 해방감도 크고요. 무엇보다 여전히 살아 있는 정, 공동체 의식 같은 게 느껴지는 곳입니다.” 부산에 자리 잡고 산 적은 없으나, 40여 년 드나들며 다양한 사진을 찍었다. 책에도 일부 담겼는데, 오는 18일 부산 동구 창비부산에서 열리는 전시회에서 공개된다고 귀띔했다.
파우저 작가는 부모님의 영향으로 10대의 한때를 일본에서 보내고, 20대엔 스스로 한국행을 택했다. 이후 한국어 교수로 한국과 일본의 여러 도시를 떠돌았다. 개정판을 내며 오랜만에 아끼고 사랑한 도시들을 떠올렸다는 그는 “깊은 그리움을 느끼면서도 담담해지는 듯한 마음”이라고 했다. 특히 나고 자란 미국 앤아버, 그리고 제2의 고향 서울이 그렇다. 그는 기억 속 앤아버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더는 고향이 아닌 것 같아 쓸쓸하다”고 했다. 지금의 서울도 1980년대 유학 시절 처음 만난 서울, 여러 대학에서 강의하며 지낸 1990년대 초와 2010년대 중반의 서울과는 많이 다른 것 같다며 “나의 서울이 점점 사라져 가는 기분이다”라고 했다. 고독하고 그립지만, 100% 어두운 감정만은 아니다. 도시가 변하는 동안 ‘나’의 시간도 흘렀다. 그만큼 성장했으니, 만족감과 풍요로움도 동시에 온다. 그는 “과거는 과거다. 그걸 인정하면 나아갈 힘도 생기는 법이다”라고 했다.
“그래서 도시 공부가 유익하고 재밌는 것 같아요. ‘나만의 도시’를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요. 도시를 거울삼아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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