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딸내미 사주려고 했는데…” 비트코인 ETF 봉쇄에 투자자들 ‘답답’ [투자360]
금융위, 美 11개 ETF 국내중개 불허
국내 직접출시까지도 ‘산 넘어 산’
[헤럴드경제=서경원·유혜림 기자] ‘국내에선 비트코인 ETF(상장지수펀드) 못사게 한다고? 딸내미 증권 계좌에서 내일 당장 사주려고 했는데 왜 못 사게 하는 거냐’ (지난 11일 한 온라인 투자게시판)
지난 11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상장을 승인하면서 비트코인 투자의 새 시대가 열렸다. 이는 그동안 신종 투기처로 치부받던 비트코인이 제도권 내 공인자산으로 편입되는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이에 비트코인 ETF 시장에 올해만 130조원 넘는 자금이 유입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런 가운데 국내 투자자들 사이에서도 ETF를 통한 비트코인 투자 관심이 고조되고 있지만 안팎으로 막혀 있는 상태다.
국내에서는 비트코인에 대한 법적 성격이 정해지지 않아 당분간은 상장이 요원한 가운데, 금융당국은 미 SEC의 상장 승인을 받은 11개 ETF가 현행 자본시장법에 따른 투자 중개 상품의 라이선스 범위 밖의 상품이라는 판단 아래 금융투자업자(증권사)의 중개를 허용하지 않기로 했다.
금융위는 지난 11일 “국내 증권사가 해외상장된 비트코인 현물 ETF를 중개하는 것은 가상자산에 대한 기존의 정부입장 및 자본시장법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며 “다만, 가상자산의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올해 7월 시행되는 등 가상자산에 대한 규율이 마련되고 있고, 미국 등 해외사례도 있는 만큼 추가 검토해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국내 금융투자기관이 직접 ETF를 출시하는 데에도 넘어야 할 장벽이 적지 않다. 1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자본시장법이 규정하는 ETF, 즉 상장지수집합투자기구는 기초자산의 가격 또는 지수 변화에 연동해 운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때 기초자산은 금융투자상품과 국내외 통화, 일반상품(농산물·축산물·수산물·임산물·광산물·에너지 등), 신용위험 또는 그 밖의 합리적인 방법에 의해 가격·지표 등 단위 산출이나 평가가 가능한 위험이어야 한다.
주가지수나 채권지수, 금·원유 등 원자재와 파생상품 가격 등은 ETF의 기초자산이 될 수 있지만, 제도권 밖의 디지털 자산인 비트코인 현물은 자본시장법상 기초자산 범주에서 아예 벗어나 있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자본시장법에서 가상자산은 기초자산 범주로 아예 들어오지 않고 법적 성격도 정해지지 않아 취급될 수 있는 상품이 아니다”라며 “비트코인 현물 ETF 상장은 상당히 요원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한 같은 비트코인이라도 디지털자산 거래소마다 다른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어 ‘일물일가’ 원칙에서 어긋난다는 점 등에서 국내 상장은 당분간 어려울 전망이다.
실제로 코인을 거래할 수 있는 법인계좌를 만든 것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은행으로부터 실명확인 입출금계좌를 받아야 해당 원화마켓을 이용할 수 있는데, 현재 은행들은 법인에 실명계좌를 발급하지 않고 있다. 가상자산거래소 관계자는 “법인 계좌 발급이 금지된 것도 아니지만 은행 입장에선 자금세탁 방지 우려 등을 이유로 잘 내주지 않는 상황”이라며 “이런 보수적인 시장 분위기상 비트코인 현물 ETF 역시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트코인의 가격 변동성도 문제다. ETF는 원활하게 거래될 수 있도록 유동성공급자(LP)들이 매수·매도 호가를 조성해야 한다. 이때 해당 ETF에 대해 매수 호가를 제출한 LP 입장에서는 매도 포지션을 확보하는 헤지(위험 분산) 거래를 해야 하는데, 비트코인은 24시간 높은 변동성을 보인다는 점에서 LP들로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정치권에선 ‘국부 유출’이라는 시선도 있어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비트코인이 ‘상품’과 ‘통화’라는 이중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어 공공성 확보와 신산업 육성이라는 두 측면에서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 국회 관계자는 “국내 상장 기업의 주식이나 ETF를 사면, 한국 시장으로 유동성을 공급할 수 있지만 비트코인은 국경과 관계 없이 국제 송금이 가능해 국부유출이라는 시선이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산업은행이 2107년 발간한 보고서를 살펴보면 “통화라는 측면에서 자금세탁과 국부유출 방지, 거래 신뢰성 확보, 소비자 보호 등 공공성 제고를 위한 제도정비가 중요하다”는 진단도 있다. 이에 국내 투자자들의 비트코인 투자 수요까지 뜨거워 정부도 ‘투기’를 우려해 선뜻 나서기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국내 거래소와 해외 거래소 간 가격 차이를 나타내는 비트코인 김치 프리미엄은 현재 3.8%대를 기록 중이다. 블룸버그 통신은 지난해에만 2~3배 뛴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대장 코인의 상승을 이끈 주역에 한국을 꼽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거래된 비트코인의 법정화폐 중 원화 비중은 42.8%를 차지했는데, 전 세계 비트코인의 절반을 한국인이 거래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자산운용업계는 언젠간 국내에서도 비트코인 ETF가 출시할 것으로 보고 대비하는 모습이다. 이미 비트코인 관련 ETF 상장을 준비해본 경험이 있는 국내 자산운용사도 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미국 법인 자회사 글로벌엑스가 지난해 8월 미국 SEC에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을 신청해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삼성자산운용은 지난해 홍콩증권거래소에 비트코인 선물 액티브 ETF를 상장해 지난 1년간 수익률 122%를 달성했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새로운 상품군이 생기는 것은 분명 다양한 선택지가 생기는 것이니 업계에 긍정적"이라면서도 "당국이 상품으로서 인정하지 않고 있으니 당국의 눈치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운용사 임원은 “비트코인 현물 ETF 이슈는 다양한 기초자산을 활용할 수 있는 ETF와 가상자산이라는 두개의 시장이 동시에 빠르게 성장하면서 뜨거운 감자가 됐다”며 “특히 한국의 경우 비트코인 투자 수요가 클 뿐만 아니라 ETF 시장도 빠르게 성장 중이다. 이번 미국 사례처럼 결국 금융당국도 (현물 ETF 출시 결단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투자자 선점이 무엇보다 중요한 ETF 특성상 운용사들로서 당국의 기류 변화는 예의주시해야 하는 사안이다. 김지원 KB증권 연구원은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은 가상자산인 비트코인이 전통 금융시장의 틀 안으로 들어온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를 갖는다”며 “비트코인에 대한 기관과 개인투자자들의 접근성을 높일 뿐 아니라 적절한 규제를 통한 투자자 보호를 기대해 볼 수 있다”고 짚었다.
gi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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