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 속상해"…방치된 정상급 불펜, 시장에 찬바람 분다

김민경 기자 2024. 1. 12.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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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산 베어스 홍건희 ⓒ 두산 베어스

[스포티비뉴스=김민경 기자] "내가 다 속상하더라."

FA 불펜 투수 홍건희(32)의 계약 상황을 지켜본 한 동료의 말이다. 홍건희는 지난 시즌을 마치고 생애 첫 FA 자격을 얻었다. KIA 타이거즈에서 만년 유망주로 지내다 2020년 시즌 도중 두산 베어스로 트레이드 이적한 뒤 리그 정상급 불펜투수로 발돋움했다. 두산에 몸담은 4년 동안 237경기에 등판해 12승, 44세이브, 39홀드, 254⅔이닝, 평균자책점 3.46을 기록했다.

성적만큼이나 성품도 빼어났다. 워낙 심성이 착해 동료들과 두루두루 사이가 좋았고, 동료들의 지지를 받아 두산에 이적한 바로 다음 해인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동안 투수 조장을 맡았다. 성실하고 좋은 선수라는 것을 잘 알기에 시장의 찬바람을 정면으로 맞고 있는 홍건희를 지켜보는 동료들은 마음이 안 좋을 수밖에 없었다.

원소속팀 두산은 시장이 열리고 약 2개월 동안 홍건희를 2차례 만났다. 지난해 11월 30일, 그리고 지난 3일에 협상 테이블을 차렸다. 협상에 진전은 없었다. 홍건희는 첫 협상에 나섰던 에이전트에게 개인 사정이 생기는 바람에 급히 다른 에이전트를 알아봐야 하는 변수까지 처리해야 했다. 3일은 두산과 2번째 만남이긴 했지만, 새 에이전트는 처음 협상에 나선 자리였다. 두산과 새 에이전트는 다음 만남을 약속하고 헤어졌는데, 11일까지 추가 대면 협상은 이뤄지지 않았다.

시장에 불펜 수요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삼성 라이온즈는 이번 FA 시장에서 쓸 수 있는 외부 영입 카드 2장을 모두 불펜 투수에게 썼다. 지난해 11월 kt 위즈 마무리투수였던 김재윤을 4년 총액 58억원에 영입했고, 지난 5일은 베테랑 불펜 임창민과 2년 총액 8억원에 계약했다. 김재윤은 통산 169세이브, 임창민은 통산 122세이브를 기록했을 정도로 접전 상황에 경험이 풍부했고, 보상 규모도 그리 크지 않았다. 김재윤은 B등급, 임창민은 C등급이었다. B등급은 원소속팀에 보호선수 25인 외 보상선수 1명과 연봉 100% 또는 연봉 200%를 보상해야 하고, C등급은 원소속팀에 보상선수 없이 연봉 150%에 해당하는 보상금만 지급하면 된다.

김재윤의 원소속팀 kt는 삼성으로부터 투수 문용익을 보상선수로 받으면서 보상금 3억6000만원(김재윤의 지난해 연봉 100%)을 받았다. 임창민의 원소속팀 키움은 삼성으로부터 보상금 1억5000만원(임창민의 지난해 연봉 150%)을 받았다. 대어급 이적과 비교하면 그리 큰 출혈을 감수하지 않아도 되는 보상 규모였다.

홍건희는 A등급을 받아 다른 구단으로 이적이 어려워졌다. 홍건희를 다른 구단이 영입하려면 홍건희의 직전 시즌 연봉의 200%와 20인 보호선수 외 보상선수 1명 또는 홍건희의 직전 시즌 연봉의 300%를 보상해야 한다. 홍건희는 지난해 연봉 3억원을 받았다. 순수하게 연봉만 놓고 보면 김재윤보다 6000만원을 덜 받았는데, 규정 탓에 보상 규모는 훨씬 커진다. 타구단이 홍건희를 영입하기 위해서는 6억원과 보상선수 1명 또는 9억원을 추가로 더 두산에 지급해야 하니 쉽게 영입을 추진할 수가 없다.

▲ 홍건희 ⓒ 두산 베어스

두산 잔류가 현실적이라고 본다면, 홍건희는 지금 원하는 금액보다는 눈을 낮춰야 하는 수밖에 없다. 아니면 2020년 시즌 FA 시장에 나왔던 이용찬(현 NC 다이노스)처럼 버틸 각오가 돼 있어야 한다. 스프링캠프 또는 개막 후 부상자가 나와 구단의 발등에 불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전략이다. 이용찬은 당시 토미존 수술을 받고 재활하는 과정에서 FA 권리를 행사했고, 구단들이 몸 상태에 확신을 못해 계약을 주저하자 쇼케이스를 할 수 있는 몸이 만들어질 때까지 참고 버티는 전략을 선택했다. 개막 이후에도 행선지를 찾지 못하고 독립리그에서 뛰는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결국 불펜 보강이 절실해진 NC와 3+1년 최대 27억원 조건에 계약하면서 선수 생활을 이어 갈 수 있었다.

냉정히 올겨울 FA 시장은 최근 3년 중에 가장 얼어붙어 있다. 양석환(두산, 4+2년 78억원)과 안치홍(한화, 4+2년 72억원)이 그나마 가장 큰 규모의 계약을 했고, 대부분 선수들은 구단 사정에 맞춰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시행한 샐러리캡 제도는 구단들이 큰돈을 써야 하는 상황이면 계산기부터 두드리며 주저하게 하고 있다.

두산은 2023년 구단별 연봉 상위 40명 합계 금액 111억8175만원으로 리그 1위에 올랐다. 샐러리캡 상한액인 114억2638만원에 2억4463만원밖에 여유를 남기지 못했다. 이런 와중에 양석환에게 78억원을 썼으니 홍건희와 협상에 속도가 나지 않고 있다. 두산 관계자는 "샐러리캡을 다 고려해서 홍건희 계약의 기준액을 잡아뒀다"고 했다. 샐러리캡이 홍건희와 계약에 영향을 주진 않는다고 단언했는데, 그래서인지 홍건희와 쉽게 합의를 이루진 못하고 있다.

올겨울 FA 시장에서 투수들이 '대박'을 친 사례는 거의 없었다. 김재윤의 계약 규모가 가장 컸고, 불펜투수 함덕주가 원소속팀 LG 트윈스와 4년 38억원에 계약했다. 선발투수인 임찬규는 LG와 4년 50억원에 계약하며 잔류했고, 전천후 베테랑 투수 장민재는 한화 이글스와 2+1년 8억원에 계약했다. 또 다른 불펜투수 김대우는 원소속팀 삼성과 2년 4억원 계약에 도장을 찍었다.

두산 선수단은 오는 15일 잠실야구장에서 시무식을 진행하면서 새 시즌 각오를 다 같이 다진다. 그리고 2주 뒤에는 호주 시드니로 1차 스프링캠프를 떠난다. 그사이 홍건희는 두산과 계약 소식을 들려줄 수 있을까. 아니면 새 행선지를 찾고 새로운 출발을 준비할 수 있을까.

▲ 두산 베어스 투수 홍건희 ⓒ 곽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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