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덕희' 용기로 스스로를 구원…피해자들 위한 사이다 범죄 소탕극[봤어영]
영화 ‘시민덕희’(감독 박영주)는 자책하는 모든 보이스피싱 피해자들의 다친 마음을 위로할 사이다 범죄 추적극이다. 물론 보이스피싱을 소재로 내세운 범죄 영화들은 많다. ‘시민덕희’는 기존 영화와 달리 가해자 대신, 범죄를 겪은 피해자들의 심리와 상황에 초점을 맞춰 차별성을 꾀했다. 반성하지 않는 가해자들을 향한 피해자의 통쾌한 복수극이며, 자기혐오에 빠져있던 피해자가 자신의 힘으로 스스로를 위로하고 구원하는 이야기다.
영화는 운영하던 세탁소의 화재로 인해 곤경에 빠진 주인공 ‘덕희’(라미란 분)에게 주거래 은행 ‘손대리’(권재민, 공명 분)가 대출상품을 제안하는 전화를 걸며 시작된다. 때마침 대출할 곳이 필요했던 ‘덕희’는 8번에 걸쳐 총 3200만 원의 수수료를 입금하고, 마지막 송금이 완료되고 나서야 이 모든 것이 보이스피싱 범죄였음을 알게 된다. 전 재산을 잃은 ‘덕희’는 지능팀 형사 ‘박형사’(박병은 분)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빈털터리가 된 탓에 설상가상으로 두 아이들과 생이별할 위기까지 처한다. 하지만 대규모 사건들에 파묻혀 매일 야근에 시달리던 박형사는 당장의 도움을 주지 못하고, ‘총책을 잡지 않으면 소용없다’며 금세 수사를 종결한다. 그러던 중 ‘덕희’에게 다시 한번 울린 전화 한 통. 보이스피싱에 대해 아는 것은 다 알려줄 테니 제발 자신을 조직에서 꺼내 달라는 ‘손대리’의 예상못한 SOS 제보 전화였다. 덕희는 이 사실을 경찰에 알렸지만,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 뻔한 대답만 돌아왔다. 고민 끝에 덕희는 세탁소 동료 봉림(염혜란 분)과 숙자(장윤주 분), 중국에서 택시기사를 한다는 봉림의 동생 애림(안은진 분)의 도움을 받고 보이스피싱 총책을 잡으러 직접 중국 칭다오로 향한다.
피해자가 자신의 힘으로 직접 피해를 구제하고, 다른 피해자들의 아픈 마음까지 어루만지는 ‘자기구원’의 서사가 가장 인상적이다. 잔악무도한 보이스피싱 총책(이무생 분)과 맞서 검거까지 이끈 주인공 ‘덕희’는 히어로물 속 영웅과는 거리가 먼 평범한 중년 여성이다. 다만 용기를 품고 두려움을 이겨내 남들과 조금 다른 선택을 했을 뿐이다. 물론 통상적인 경우라면 여성은 물론 건장한 성인 남성조차 엄두를 못 낼 위험천만한 여정인 만큼, ‘시민덕희’는 덕희의 선택을 관객에 납득시킬 여러 상황들을 촘촘히 배치해 몰입을 강화했다. 특히 생활밀착형 연기 마스터에 극한의 감정 연기, 코미디까지 다 되는 라미란의 독보적 열연이 이 영화의 설득력이요, 진정성을 완성한 일등공신이다. 이미 ‘응답하라 1988’, ‘정직한 후보’, ‘나쁜 엄마’ 등 작품들로 수많은 엄마, 여성들을 연기했지만, 라미란은 ‘시민덕희’로 또 한 번 새로운 엄마, 주체적 여성의 얼굴을 그려내며 넓은 스펙트럼을 입증했다. 온전히 덕희의 관점에서 이 영화를 보며 피해자의 심리와 입장에 공감할 수 있던 원동력이기도 하다.
군 전역 후 첫 스크린 복귀를 앞둔 공명의 열연도 인상적이다. 조직에 갇혀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사기를 치면서, 피해자들에게 죄책감을 느껴 탈출하고 싶어하는 ‘손대리’의 내적 갈등과 절박함을 현실감있게 담아냈다. 극 중 손대리가 덕희에게 건네는 진심어린 사과는 반성하지 않는 가해자들로 2차 피해를 입는 보이스피싱 피해자들의 상처를 간접적으로나마 위로할 것 같다.
스릴과 긴장을 선사하는 ‘범죄추적극’의 본분 역시 잊지 않았다. 결말이 사이다란 걸 알고 봐도 중간중간 손에 땀을 쥐는 순간들이 많다. 깊게 눌러쓴 벙거지 모자로 눈빛을 가린 채, 많지 않은 대사만으로 극한의 공포를 자아낸 빌런 이무생의 활약이 뒷받침된 덕이다. 웃음과 통쾌함을 이유로 보이스피싱 범죄의 가해 및 피해 과정을 결코 희화화하거나 가볍게 다루지도 않는다.
새해를 유쾌하게 열 통쾌한 추적극이자, 수많은 피해자들을 위로할 따뜻한 복수극이다.
114분. 15세 관람가. 1월 24일 개봉.
김보영 (kby5848@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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