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원의 문학 인생이 다다른 곳…장편 '사람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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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작가 한승원(85)이 최근 펴낸 '사람의 길'(문학동네)은 장르를 뭐라고 콕 집어 규정하기 어려운 오묘한 책이다.
작가가 조곤조곤 들려주는 이야기들에는 계속해서 책을 넘기게 하는 묘한 힘이 있다.
형식을 파괴한 자유로운 이야기들을 통해 '구원의 길'을 제시하려 한 이 책은 노작가의 "삶의 막판의 이삭줍기" 같은 것이다.
작가는 책 맨 마지막의 '작가의 말'에서 "이 소설이 내 최후의 길"이라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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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 원로작가 한승원(85)이 최근 펴낸 '사람의 길'(문학동네)은 장르를 뭐라고 콕 집어 규정하기 어려운 오묘한 책이다.
'장편소설'이라고 제목 아래 적혀 있는 이 책의 표지를 펼치면 처음부터 낯선 형식과 내용의 글이 그야말로 굽이굽이 펼쳐진다.
선문답 같은 짧은 일화에 이어 환상과 현실을 오가는 동화적인 이야기가 이어지는가 하면, 작가가 과거 발표한 시나 미완성의 시편이 등장하고, 작가의 인생사의 한 단면 같은 얘기들이 나오기도 한다. 작중 화자의 존재도 실제인지 허구인지 불분명한 경우도 많아 처음에는 갈피를 잡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책을 읽어나갈수록 작가가 살아온 짧지 않은 자기 생을 돌아보고 스스로 궁구해 깨달은 길을 보여주려 한다는 걸 깨닫게 된다. 작가가 조곤조곤 들려주는 이야기들에는 계속해서 책을 넘기게 하는 묘한 힘이 있다.
작가가 이런 이야기들을 통해 일관되게 묻고 있는 건 우리가 왜 사람의 길을 걸어야 하는지, 과연 그 길을 어떻게 해야 제대로 걸어갈 수 있을지다.
그 길을 걷기 위해 해야 할 일에는 무엇보다 사랑과 선행이 있다고 그는 강조한다.
작품의 등장인물 중 한 명인 백양나무 할아버지는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 사랑하기이고 선행하기인가요?"라는 아기박새의 물음에 이렇게 답한다.
"자기보다 더 몸이 약한 것과 가난하고 외로운 것들을 품어주고 돌보아주는 것, 그들을 위로해주고 그들과 더불어 화평하게 사는 것이 사랑하기이고 선행하기인 거야. 세상을 살아가는 것들은 다 그렇게 사랑과 선행을, 배고픈 것들이 밥을 먹어대는 것처럼 해야만 하는 거란다."
사랑과 선행이라는 인간의 본분을 흐트러뜨리는 것은 다름 아닌 인간이 만들고 살아가는 "광기 어린 야만의 세상"이다. 책 속의 한 갈매기는 "요즘 많이 가진 기득권자들이 장악한 전 지구적인 자본주의 자유 시장경제 체제는 야만 세상"이라고 일갈한다.
작가는 허구인지 실제인지 모를 캐릭터들의 입을 빌어 민생은 뒷전에 둔 채 권력 놀음에 취해 자기 이익만을 탐하는 위정자들에게 준엄한 비판을 쏟아내기도 한다.
이런 현실에서 "고달픈 난관을 극복하고 평화와 행복으로 나아가는 구제와 구원을 제시"하는 예술가, 특히 소설가의 책무도 거듭 강조한다.
"예술작품의 도달점은 향기로운 아름다움과 철학이나 종교와는 다른 차원의 구원을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되네. 소설가는 도덕 교사도, 종교의 경전을 설하는 사제도 아니지만 인류의 모든 폭력으로부터의 자유와 평화와 안식을 도출하려는 차원 높은 윤리 교사인 셈이네."(274쪽)
형식을 파괴한 자유로운 이야기들을 통해 '구원의 길'을 제시하려 한 이 책은 노작가의 "삶의 막판의 이삭줍기" 같은 것이다.
"지나온 삶의 굽이굽이에 떨어져 있는 반짝거리는 보석들을 이삭 줍듯 주워 담는 글쓰기와 사유를 즐기고 있었다. 시인의 이삭줍기 사업은, 화엄 같은 삶의 장엄이었다. 늙은 시인이 수집한 까치 노을 같은 이삭은 누군가의 결핍으로 허기진 영혼을 구제해줄지도 모른다."(53쪽)
소설에서 윤리나 책임에 대해 말하는 것이 한없이 가벼워진 것 같은 작금의 현실에서 오래 옆에 두고 펴봐야 할 것만 같은 책이다.
작가가 2021년 펴낸 자서전 '산돌 키우기'의 소설 버전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작가는 책 맨 마지막의 '작가의 말'에서 "이 소설이 내 최후의 길"이라고 적었다.
1939년 전남 장흥 태생인 한승원은 1968년 등단해 장편소설 '아제아제 바라아제', '초의', '달개비꽃 엄마', 소설집 '새터말 사람들', 시집 '열애일기', '달 긷는 집' 등을 펴냈다.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김동리문학상 등을 받았으며, '채식주의자'와 '작별하지 않는다' 등을 쓴 소설가 한강이 그의 딸이다.
문학동네. 332쪽.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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