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화의 지리각각] 허접 드론에 쫓기는 항모전단, 대체 미군에 무슨 일이
후티 반군 뒤엔 이란 뒷배, 무기공급 가능성
산악 깊숙한 곳 엄폐한 반군, 폭격 효과 적어
너무나 첨단이어서 허접한 무기와 대결 안돼
혈맹의 '추락' 보면서 자주국방 의지 다져야
아덴만과 홍해를 거쳐 수에즈운하를 통과하는 해상루트는 현재로선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최단 무역로다. 그런데 이 바다에 훼방꾼이 나타났다. 지난해 10월 하마스의 기습테러로 촉발된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에서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를 쑥대밭으로 만들자 홍해와 아덴만 골목에 위치한 예멘의 후티(Houthis) 반군이 팔레스타인과 연대를 표한다며 이스라엘과 관련된 상선을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관련 선박을 지목했다 뿐이지, 실제로는 그들 마음 내키는 대로 공격할 수 있어 어떤 배도 안전이 100% 보장되는 게 아니다. 지난 두 달 가까이 26 차례나 공격이 있었다. 그러니 많은 상선들이 남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가는 항로로 우회하고 있다. 해상운송에 시간과 비용이 더 드니 당연히 선사와 세계 각국은 불만이다.
그러자 유엔이 나섰다. 유엔 안보리는 10일(현지시간) 후티 반군 측에 상선 공격을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다행히 러시아와 중국이 반대가 아닌 기권을 해 통과됐다. 결의안에는 자구책으로 후티 반군에 군사적 행동을 정당화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유엔 안보리 결의안이 통과되자 후티 반군측은 즉각 반발했다. 이스라엘과 연관된 배 공격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무역로 안전이 계속 불투명해지면서 세계 각국은 여전히 냉가슴이다. 그중에서도 미국이 가장 난처하다. 미국은 이스라엘을 보호해야 할 입장이다. 아직까지는 세계 유일 초강대국으로서 국제 질서를 바로 잡아야 할 묵시적 책무도 있다. 세계에서 가장 낙후된 나라의 반군이 감히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것을 좌시할 수만도 없다. '세계경찰'인 미국이 '한줌도 안 되는 자들이 벌이는 해적질'을 응징하지 못한다면 위신이 말이 아니다. 그러나 그게 쉽지 않다.
◇전선확대 달갑지 않고 후티 격파 쉽지 않아
물론 미국이 마음만 먹으면 이들을 손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여기엔 복잡한 문제가 있다. 지난 11일 미국이 후티 거점지인 예멘 동남부 지역을 공습하기 전까지는 일부 후티 함정을 폭격하는 것 외에 지상공격을 하지는 않았다. 자칫 서방이 개입해 소강상태인 예멘 내전이 다시 격화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예멘내전은 부족간 갈등에다 시아파 후티 반군과 수니파 예멘 정부군 간 권력투쟁의 성격이 있지만, 후티의 뒷배가 되어주는 이란과 예멘 정부군을 지지하는 사우디아라비아 및 아랍에미리트 간 대리전 양상도 띠고 있다.
이 같은 복잡한 양상 때문에 미국은 단독으로 직접 후티를 손보는 것보다는 영국 프랑스 등 동맹들과 연합군을 형성해 후티 반군의 공격으로부터 홍해와 아덴만의 안전항해를 보장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프랑스가 참여를 않고 영국도 자체 활동에 국한하면서 연합군 구성은 힘을 잃은 상태다.
미국은 현재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에서 사실상 전쟁물자와 전비까지 대주며 대리전을 치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예멘으로까지 전선을 확대하는 건 큰 부담이다. 후티 반군을 폭격한다고 해도 아프가니스탄에서 실패한 것처럼 산악 깊숙이 엄폐한 후티 반군에 치명적 손상을 입히기는 쉽지 않다. 또 후티 반군이 이란으로부터 보급받는 무기로 만만치 않은 반격 능력을 갖고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이런 이유로 미국은 애초 공격의 뜻이 없으면서도 동지중해에 배치된 제럴드 포드 항모전단과 아라비아해에 전개된 아이젠하워 항모전단을 통해 위협 시위를 벌여왔다. 경고성 기동인 셈이다. 그런 미군의 속내를 간파했는지 후티 반군은 코웃음을 치며 홍해에서 선박 공격을 이어가고 있다.
◇전쟁 손실비율 엄청난 격차, 피하는 게 상책
후티 반군의 무기는 조악한 수준이다. 수십 수백 만원 짜리 공격용 자폭드론과 낡은 기술이 적용된 구형 대함미사일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그 때문에 강점을 지니는 역설이 작동한다. 후티 반군은 '싸게 먹히는 자폭 드론을 충분히 쟁여놓고 있다'고 허풍 아닌 허풍을 떨고 있다. 이란 산으로 추정되는 자폭 드론은 대량생산이 가능하다. 항모를 침몰시킬 순 없지만, 일시적 기능 마비는 충분히 일으킬 수 있다.
미국이 막강한 항모전단을 전개했음에도 후티 반군을 막지 못한 이유는 이런 허접한 무기들이 최첨단 항모전단에 치명적 피해(기능상)를 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후티 반군은 사람으로 치면 인해전술이라 할 수 있는 대량의 저가 드론과 구형 미사일로 공격할 수 있기 때문에 항모의 미사일요격망을 무용지물로 만든다.
요격이나 격추한다고 해도 미군으로서는 밑지는 '장사'다. 전력 손실비율이 엄청나게 차이가 난다. 한 발에 최소 수억 수십 억 원에 이르는 요격용 미사일로 허접한 드론과 미사일을 요격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렇다고 날아오는 드론이나 미사일을 안 막을 수도 없다. 미군의 전력이 너무 고가의 막강한 첨단 무기라서 허접한 무기를 상대하지 못하는 웃지 못 할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미국의 수백 억 달러에 이르는 항모전단과 기껏해야 수천, 수만 달러 짜리 무기로 무장한 후티 반군 간의 대치 모습은 현대 전장(戰場)이 극적으로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같은 양상은 작년 10월 7일 가자지구 하마스 무장정파가 이스라엘을 기습 테러한 데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은 최첨단 감시 장비와 경계대응시스템을 갖추고 있었지만 하마스의 드론, 불도저, 사다리, 땅굴 등을 이용한 원시적 공격에 속수무책이었다.
결국 미국은 후티 반군에 엄포를 이어가면서 한편에선 항모전단을 슬며시 뒤로 빼고 있다. 동지중해 사이프러스 근처에 있던 제럴드 포드 항모전단은 본국으로 귀환 중이다. 아라비아해에 전개 중인 아이젠하워 항모전단은 예멘으로부터 좀 더 멀찍이 떨어지고 있다. 대학교 실험실 수준 후티의 자살 드론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전력의 보루 핵전력까지 의심받는 지경
한편, 미국이 너무나 막강한 무기체계여서 전장을 피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 미 본토에서도 그 못지않게 아이러니 한 일이 벌어졌다.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이 4일 동안 백악관과 연락이 두절되는 상황이 일어난 것이다. 수술 후 후유증 치료를 위해 지난 1일 병원에 입원한 후 4일 동안 입원사실을 조 바이든 대통령에 보고하지 않았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미국은 발칵 뒤집혔다.
국방장관이 없어도 미군이 돌아가는 걸 보면, 국방장관은 대수롭지 않은 자리인가 보다는 조롱도 받았다. 실제로 그의 '실종' 기간 중 미국 정부는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3일에는 13개의 동맹국과 공동 성명을 통해 후티 반군에 대해 군사적 조치가 가능함을 시사했고, 4일에는 이라크 주둔 미군이 이라크에서 이란이 지원하는 민병대 지도자를 공습했다. 이런 일련의 중대한 결정에 입원 중인 오스틴 장관이 얼마나 관여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한국인들 중에는 흔히 미국을 '천조국'(미국이 초강대국임을 표현하는 은어)이라 부른다. 지구상 어느 나라도 군사력 면에서 도전 불허의 국가라는 미국에서 당나라 군대에서나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이다. 미군은 지구상에는 상대가 없고, 외계인을 막을 준비를 하고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전후 80년간 세계 최강의 무력을 자랑해온 미군이 현재 시험대에 올라 있다. 현대 하이브리드 전쟁에 대응할 무기체계의 구멍뿐 아니라 전략이나 기강, 사기 등에도 심각한 누수가 감지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최종병기 핵전력에서도 미국의 능력이 의심받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는 현재 약 5000개 내외의 비슷한 수량의 핵폭탄을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은 이보다 적은 500~700개 내외를 갖고 있다. 미국은 향후 10년 내에 중국이 핵폭탄 수량을 1500개까지 늘릴 것으로 보고 있다. 아직 미국이 핵폭탄 수에서 중국을 능가하고 러시아와 대등한 수준이지만, 문제는 미국은 러시아와 중국을 동시에 견제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이 핵폭탄을 대폭 늘리면 미국도 추가로 핵폭탄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핵폭탄 운반 전력에서 적을 능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핵공격에는 주로 B-21이나 B1-B 전략폭격기, 트라이던트Ⅱ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지상발사 ICBM이 운송수단으로 쓰인다. 미국의 주력 지상발사 ICBM는 미니트맨3(Minuteman Ⅲ)다. 미국은 400기 이상의 미니트맨3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미니트맨이 전력화된 게 1962년부터 1970년까지로 50년 이상 지나 노후화됐다는 것이다. 그에 따라 미국은 2030년까지 새로운 ICBM을 개발할 예정이다.
그런데 심각한 차질이 생겼다. 외신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1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반덴버그 공군기지에서 있었던 미니트맨3 시험발사에서 변칙기동이 발생했다. 곧바로 격추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사고 이후 차기 핵폭탄 운송 ICBM 개발이 지체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게다가 미 군사평론가들의 폭로에 따르면 미니트맨3 설계도를 미군이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실종됐다는 것. 당연히 50~60년 전에 개발됐으니 당시 엔지니어들도 현재 생존해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세계에서 가장 잘 훈련되고 조직화돼 있다고 믿어지는 미군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미국의 많은 군사평론가들은 미국의 핵미사일 기술이 러시아에 비해 최대 6세대 이상 뒤져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심지어 중국보다도 뒤떨어져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한미동맹에 우리의 생명과 주권 수호를 의지하고 있는 대한민국으로서는 혈맹 미국의 상황을 심히 우려의 시선으로 볼 수밖에 없다. 미군이 재무장과 혁신을 통해 옛 영광에 걸 맞는 명실 공히 세계 최강 군대로 유지되고 거듭나길 바라는 바다. 그 전에 우리는 자주국방의 의지를 더 결연히 다져야 한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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