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진 작은 손…면화 산업 속 보이지 않는 아동 노동[그림책]
나는 요정이 아니에요
이지현 글·그림
사계절 | 40쪽 | 1만4500원
목화 열매가 터지고 뽀얀 목화솜이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을 보면 놀랍다. 단단한 열매 안에서 터져나오는 보드라운 솜의 대비가 경이롭게 느껴지고 보슬보슬한 표면이 포근한 솜이불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목화솜을 따는 일은 예로부터 악명이 높다. 면의 원료가 되는 목화는 식민지 플랜테이션의 대표 작물이었고, 미국 남부에서 흑인 노예의 노동력을 착취해 수확했다. 오늘날 부드러운 목화솜을 우리가 사용하는 옷과 이불로 만드는 일은 하청의 공급사슬을 따라 먼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뤄진다. <나는 요정이 아니에요>는 면화산업의 공급사슬 맨 끝에서 일하고 있는 아이들을 다룬 그림책이다. 아이들은 세계적으로 3억명이 넘는 사람들이 고용된 면화산업 시스템의 끄트머리에 있다. 고용주들은 작물에 피해를 주지 않는 작고 부드러운 손가락을 선호한다.
“사람들은 볼 수 없지만 나는 있어요.”
목화 열매가 터지고 솜이 모습을 보이자 그 사이로 작은 날개를 단 아이들이 나타난다. 아이들은 마치 숲속 요정 같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날카로운 잎과 가지에 베인 손, 좁은 목화 줄기 위를 위태롭게 딛고 선 작은 발이 드러난다. 아이들은 자신의 몸 크기만 한 주머니에 수확한 목화솜을 부지런히 담는다.
목화솜의 수확부터 가공해 실로 만들고 옷을 생산하기까지 과정을 우화적이면서도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목화솜으로 만든 천을 염색하고 말리는 과정, 재단하고 꿰매 근사한 옷을 완성하기까지 모든 과정에 연약해 보이지만 쉴 틈 없이 일하는 아이들이 등장한다.
“자세히 보면 알 수 있어요. 어느 곳에든 내가 있다는 것을요. 사람들이 너무 바빠서 자세히 볼 수 없는 걸까요?”
쇼윈도에 진열된 세련된 옷 어디에서도 아이들의 고된 노동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너무 바빠서’가 아니라 ‘알고 싶지 않아서’ 혹은 ‘알고도 모른 척’하는 일일 것이다.
이지현 작가는 전작 <수영장>에서 글 없이 그림만으로 독자의 상상을 자극하는 이야기를 만들었다. 미국일러스트레이터협회 ‘최고의 그림책상’ 등을 수상했다. 이번 책에서도 작가는 색연필과 연필로만 그린 부드러운 그림과 단 다섯 개의 문장으로 이야기를 펼친다. 마지막 문장은 “나는 요정이 아니에요.” 당연하게도 예쁜 옷은 요정이 밤새 몰래 만들어 내놓는 게 아니다.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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