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우리 동네 농구단을 소개합니다 ② 로슨, 라건아의 모교는 어디 있을까?

점프볼 2024. 1. 12. 06: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점프볼=최연길 MBC 해설위원] 강원도 옥수수 좋아해? 나는 매우 좋아해. 강원도 찰옥수수는 간식거리로 유명한 강원도 특산품이지. 홍천, 문막 등에서는 옥수수 축제를 할 정도지. 옥수수가 많고 옥수수를 이용한 강냉이(뻥튀기)도 유명하지. 근데 ‘콘 벨트’라고 들어본 적 있어? 미국 중부 지역의 어마어마한 크기의 옥수수 생산지대를 일컫는 말이지. 지난 편에 이어 지리적으로 연관지어 보면 강원도 원주, 문막, 횡성 쯤으로 보면 돼. 그리고 이곳에도 농구 명문 구단들이 많이 있어서 소개해 보려해.

※본 기사는 농구전문매거진 점프볼 1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콘 벨트는 너무나도 광활해서 13개 이상의 주들이 몰려있을 정도야. 한반도의 두 배 이상크기지. 그중 오늘 소개할 주는 캔자스, 미주리, 아이오와, 네브라스카야. 미국 지도로 보면 딱 정중앙이라고 보면 돼. 당연히 미국에서는 시골로 여겨지는 곳이야. 대도시도 적고 즐길 거리도 많지 않고 인구도 많지는 않아. 따라서 스포츠 구단이 하나만 있어도 충성도는 매우 높고 인기 또한 많지. 대표적인 곳이 바로 캔자스야.

슈퍼맨과 오즈의 마법사의 마을 캔자스
영화 ‘슈퍼맨’ 시리즈를 본 적 있어? 나는 1978년 크리스토퍼 리브 주연의 슈퍼맨이 인생 영화 중 하나일 정도로 좋아해. 슈퍼맨 시리즈는 20번 넘게 봤을 거야. 네가 어느 슈퍼맨을 봤던 그 슈퍼맨이 지구에 처음 떨어진 곳, 그리고 슈퍼맨이 어린 시절을 보낸 스몰빌은 들어봤을 거야. 그 스몰빌이라는 가상의 마을이 있는 곳이 바로 캔자스야. 클락 켄트의 어머니는 여전히 캔자스에 있는 설정이지. 슈퍼맨 시리즈 중에는 옥수수 밭에서 에피소드가 나오는 경우도 흔히 있어.

캔자스가 시골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소설도 있어. 바로 ‘오즈의 마법사’야. 뮤지컬 영화로도 매우 유명하지. 오즈의 마법사의 주인공인 도로시는 캔자스 시골 마을에 살다 토네이도에 휩쓸려 마법의 세계인 오즈로 날아가지. 오즈의 마법사의 설정처럼 미국에서는 캔자스하면 촌동네로 인식되곤 하지. 하지만 농구로 한정하면 캔자스는 역사적으로 중심부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캔자스시티 킹스(캔자스시티 오마하 킹스)
아무리 촌동네라지만 프로구단들이 있어. MLB의 캔자스시티 로열스, NFL의 캔자스시티 치프스 등은 인기도 많고 명문구단이지. 특히 치프스는 패트릭 마홈스를 앞세워 최근 슈퍼볼 우승을 두 번(2019, 2022)이나 차지했지. 사실 캔자스시티는 주소상은 미주리州에 속해있어. 하지만 캔자스州와 미주리州 경계에 있어 캔자스주민들은 캔자스시티에 있는 구단을 우리 팀이라고 여겨.

과거에 캔자스시티에는 NBA 구단도 있었어. 바로 캔자스시티 킹스지. 정말 오래된 명문구단이야. 현재 새크라멘토로 이전해 새크라멘토 킹스가 되기 전 연고지가 캔자스시티였지. 킹스 구단이 처음 창단한 곳은 뉴욕州 로체스터였어. 1923년 로체스터 시그램스라는 이름으로 불렸고 1945년 NBL에 가입하면서 로체스터 로열스로 이름을 바꿨지. 로열스는 1948년 미니애폴리스 레이커스, 포트웨인 피스톤스 등과 함께 BAA(現NBA)로 리그를 옮겼어.

아마 NBA 팬들이라면 레이커스와 새크라멘토를 같은 지구 그리고 같은 캘리포니아 지역 라이벌이라는 사실을 잘 알거야. 하지만 두 팀의 라이벌리가 1940년대 말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NBA 고수들도 잘 모르더라고. NBA 최초의 왕조를 이룬 레이커스가 1949년부터 1954년까지 6시즌 동안 5번 우승을 차지했다는 사실은 잘 알거야. 그런데 그 6시즌 동안 유일하게 우승하지 못한 1951년 챔피언이 로열스야.

그뿐만 아니야. 두 팀은 그 6시즌 동안 디비전(당시는 컨퍼런스가 없었음) 결승에서 4번이나 만났어. 로체스터라는 도시가 쇠락하면서 1957년 신시내티로 연고지를 이전했고 다시 1972년 캔자스시티로 보금자리를 옮겼어. 처음에는 네브라시카州의 오마하市와 캔자스시티를 같이 연고지로 사용하며 캔자스시티-오마하 킹스로 불리다 1975년 캔자스시티 킹스로 다시 재탄생했지. NBL 구단이 먼저 있었으니 팀명이 로열스에서 킹스로 왜 바꿨는지는 이해하겠지? 캔자스시티를 대표하는 선수는 NBA 역사상 유일한 한 시즌 득점왕과 어시스트왕을 동시에 차지한 네이트 아치볼드가 있어. 그리고 1985년 킹스는 새크라멘토로 다시 이사를 떠났고 이후에는 이 지역에 NBA 구단이 없어.

그 밖의 캔자스시티 프로 구단
1967년 NBA의 라이벌 리그인 ABA(American Basketball Association)이 창설할 때 캔자스시티도 원년 멤버로 참여하려 했어. 하지만 홈구장이 여의치 않았고 이후 연고지를 덴버로 옮겨 갈 수밖에 없었지. 그보다 먼저인 1961년 ABL(American Basketball League)이라는 리그가 에이브 새퍼스틴(할렘 글로브트로터스의 구단주)과 조지 스타인브레너(前뉴욕 양키스 구단주)에 의해 창설되었고 캔자스시티에는 캔자스시티 스티어스(Steers)라는 팀이 있었어. 하지만 ABL은 한 시즌 만에 사라졌지.

최고 명문 대학 중 명문 대학, 캔자스대학교 제이호크스
캔자스州에서 가장 인기 높은 농구팀을 딱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 캔자스 제이호크스(Kansas University Jayhawks)야. 1898년 창단한 캔자스대는 초대 감독이 농구의 창시자인 제임스 네이스미스 박사야. 이 사실만으로도 캔자스대가 얼마나 NCAA 농구에서 큰 존재인지 알 수 있지. 아쉽게도 네이스미스 박사는 캔자스대 감독으로 성공을 거두지 못했어. 9시즌 동안 통산 55승60패를 기록했는데 이는 캔자스대 역대 감독 중 최저 승률(.478)이고 승률 5할을 넘지 못한 유일한 감독으로 남았지.

그렇다고 네이스미스 감독이 캔자스대에서 아무 유산을 남기지 않은 것은 아니야. 네이스미스 박사 후임으로 캔자스대 지휘봉을 잡은 인물은 포레스트 ‘포그’ 앨런인데 포그 앨런은 ‘농구 코칭의 아버지’로 불리는 농구 코칭의 토대를 만든 인물이야. 앨런은 1956년까지 캔자스대 감독을 지내며 1952년 NCAA 토너먼트 우승을 이끌었지. 앨런은 수많은 명감독들을 배출했어. 켄터키 대학을 이끌며 4차례 NCAA 토너먼트 우승을 차지한 아돌프 럽 감독, 마이클 조던 등을 배출하며 노스캐롤라이나대를 2차례 우승으로 이끈 딘 스미스 감독 등이 앨런의 제자야.

또한 앨런은 정골의학 전문의였어. 그래서 닥터 포그 앨런으로도 불려. 뼈 전문의답게 앨런은 슛을 던질 때 손목의 모양, 패스할 때나 점프할 때 관절의 움직임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체계를 구축했고 워밍업의 중요성도 강조한 선구자야. 앨런과 네이스미스가 캔자스대에 미친 영향이 얼마나 큰지는 홈구장을 보면 알 수 있어. 캔자스대 캠퍼스는 캔자스州 로렌스에 있어. 그리고 로렌스에 위치한 캔자스대의 홈구장 이름은 앨런 필드하우스야. 바로 그 앨런이 이 앨런이지. 그리고 앨런 필드하우스 안에 있는 코트의 이름은 ‘네이스미스 코트’야.

미국 대학 명문 구단은 체육관 이름과 그 내부에 코트 이름을 다시 붙이는 경우가 있어. 듀크대의 홈구장 캐머런 인도어 스테이디엄 안에는 ‘코치 K 코트’가 있고 UCLA의 폴리 파빌리언 안에는 ‘존 우든 코트’가 있는 것처럼 말이야. 무려 1만6300명이나 수용하는 앨런 필드하우스에서 울려 퍼지는 장송곡같은 ‘락촉(Rockchalk)’ 응원가는 상대방을 주눅 들게 만들지. 앨런 필드하우스는 대학 농구팬이라면 반드시 가봐야 할 경기장 10곳 중 하나야. 캔자스대는 이후 1988년 래리 브라운 감독과 대니 매닝의 활약으로 다시 우승했고 빌 셀프 감독 체제에서 두 차례(2008, 2022) 더 우승했어. 통산 4회 우승은 UCLA(11회), 켄터키대(8회), 노스캐롤라이나대(6회), 듀크대, 인디애나대, 코네티컷대(이상 5회)에 이어 7위에 해당하지.

또한 캔자스대는 2015년 광주 유니버시아드에 미국 대표로 참가했어. 당시 빌 셀프 감독 체제에서 프랭크 메이슨 3세, 웨인 셸든, 드본테 그레이엄같은 향후 NBA 선수들이 왔고 당당히 금메달을 목에 걸었지. 캔자스대 출신 슈퍼스타로는 윌트 채임벌린, 클라이드 러블릿, 조조 화이트, 대니 매닝, 폴 피어스, 조엘 엠비드, KBL에서 뛰었던 조시 셀비와 현재 원주 DB 프로미에서 뛰고 있는 디드릭 로슨, 제프 위디 등이 있어.

전미 대학 농구 명예의 전당(National Collegiate Basketball Hall of Fame)
캔자스시티에는 ‘컬리지 바스켓볼 익스피리언스(College Basketball Exprience, 이하 CBE)’라는 박물관이 있어. NABC(전미 농구 코치 협회:National Association of BasketballCoaches)’가 만든 박물관이야. NABC를 창설하는데 앞장 선 인물이 앞서 언급한 앨런 감독이야. NABC의 본부 역시 캔자스시티에 위치하고 있어. 이 CBE 안에는 ‘대학 농구 명예의 전당(National Collegiate Basketball Hallof Fame)‘이 있어. 2006년에 문을 연 이곳은 카림 압둘자바, 매직 존슨, 래리 버드, 존 우든, 딘 스미스, 포그 앨런 등 NCAA 무대를 주름잡았던 인물들의 발자취를 볼 수 있는 전시물들이 있지.

캔자스주립대 와일드캐츠
캔자스대가 명가기 때문에 이에 도전하는 라이벌들도 많아. 그중 하나는 같은 주에 있는 캔자스주립대야. 캔사스주립대도 1951년 파이널4에 올라 준우승을 차지한 바 있고 1948, 1951, 1958, 1964년 모두 4차례나 파이널4에 오른 명가야. 캔자스대와는 같은 빅12 컨퍼런스에 속해있어서 매년 2차례 이상 맞대결을 펼치는 대학 농구 대표 라이벌리 중 하나지. 두 팀의 라이벌리는 ‘선플라워 쇼다운(Sunflower Showdown)’이라고 부르는데 농구 뿐 아니라 미식축구 등 모든 대결이 이에 속하지.

하지만 두 팀의 라이벌 대결은 1990년대 이후 일방적으로 미식축구는 캔자스주립대가 앞서고 농구는 캔자스대가 압도하며 김 빠진 라이벌전으로 전락했어. 캔자스주립대 출신 유명 선수로는 올스타에 수 차례 뽑혔고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금메달을 딴 드림팀3의 일원 미치 리치몬드, 1980년대 댈러스 매버릭스의 슈팅가드로 올스타에 4차례 뽑힌 파나마 출신 스윙맨 롤랜도 블랙맨, 2008 NBA 드래프트 전체 2순위로 뽑혀 마이애미 히트 등에서 뛰었던 마이클 비즐리, 1960년대 신시내티 로열스, 뉴욕 닉스 등에서 뛰었고 1968년 NBA 올스타에도 뽑혔던 밥 부저 등이 있어. 부저는 1971년 밀워키 벅스의 우승 멤버기도 해. 현역 선수도 키욘테 존슨, 마키스 노웰, 딘 웨이드 등이 있지만 유명한 선수들은 없어.

위치타주립대 샤커스(Shockers)
캔자스州 위치타에 자리잡은 위치타주립대도 무시할 수 없어. 원래 위치타주립대는 야구가 더 유명하긴 해. 박찬호와 LA 다저스를 이끌던 투수 대런 드라이포트, 토론토 블루제이스 월드시리즈 우승 주역 조 카터 등이 이곳 출신이지. 그렇다고 농구도 무시할 정도는 아니야. 위치타주립대는 1965년과 2013년 두 차례나 NCAA 토너먼트 파이널4에 올랐어. 포그 앨런 감독의 제자 랠프 밀러가 감독으로 부임한 후 성장기를 거친 위치타주립대는 1964년 데이브 스톨워스를 앞세워 8강 진출에 성공했고 이듬해 파이널 4까지 오르며 전성기를 구가했지. 스톨워스는 1965년 NBA 드래프트 전체 3번으로 뉴욕 닉스에 입단해 1970년 NBA 우승도 차지했어.

이후 쇠락했던 위치타주립대는 그렉 마샬 감독이 부임하면서 다시 전국무대에 각광을 받기 시작했어. 2007년 부임한 마샬 감독은 팀을 2011년 NIT 우승, 2012년 NCAA 토너먼트에 진출하더니 다음해에는 파이널4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지. 그리고 7시즌 연속 토너먼트에 오르며 16강 한 번, 32강 3번을 더하며 전국적 강호로 인정받았어. 위치타주립대가 배출한 NBA 선수로는 프레드 밴블릿(휴스턴 로케츠)이 유명해. LA 레이커스의 오스틴 리브스도 원래 위치타 주립대를 다니다 오클라호마대로 전학갔지.

은퇴 선수로는 앞서 언급한 스톨워스, 앤트완 카, 클리프 리빙스턴, 제이비어 맥다니엘 등이 있어.

 

미주리州에 있었던 프로구단들

캔자스州 오른쪽에 접해있는 미주리州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는 세인트루이스야. 세인트루이스 프로구단 중에서는 아마 MLB 명문 카디널스라는 터줏대감 구단은 들어봤을 거야. 농구팬들 중 세인트루이스 호크스를 들어봤을 팬들도 있겠지.

세인트루이스 호크스
세인트루이스 호크스는 現애틀랜타 호크스의 전신이지. 원래 1946년 버팔로 바이슨스로 NBL에서 창단했던 호크스는 1946년 트라이-시티스 블랙호크스가 되었다가 1951년 밀워키 호크스를 거쳐 1955년 세인트루이스로 연고지를 옮겼지. 그리고 1950년대 후반 보스턴셀틱스와 라이벌리를 이루며 1957년 준우승, 1958년 우승, 1960년과 61년 다시 보스턴에게 패해 준우승에 그치는 등 구단의 전성기를 구가했어. 1958년은 호크스 구단의 유일한 우승이야. 당시 세인트루이스 호크스의 주축 선수로는 밥 페티트, 슽레이터 마틴, 클리프 헤이건, 에드 맥컬리 등 향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4인방이었지.

세인트루이스 버머스(St.Louis Bombers)
NBA의 원년인 1946년(당시는 BAA로 불렸지만)에 세인트루이스 버머스라는 구단이 있었어. 버머스는 1950년 구단을 접었지. 세인트루이스는 첫 시즌에 서부 지구 2위를 차지했고 다음 시즌에는 서부 지구 1위를 차지하기도 했어. 하지만 이후 성적이 곤두박질쳤고 결국 4시즌 만에 사라졌지. 버머스 출신 스타로는 앞서 호크스 우승을 이끈 맥컬리가 있어. 맥컬리는 세인트루이스 출신에 세인트루이스대학을 졸업한 지역 스타였고 이후 보스턴 셀틱스에서 뛰다 빌 러셀 지명권과 트레이드되며 고향으로 돌아왔지.

스피리츠 오브 세인트루이스(Spirits of St.Louis)
세인트루이스에는 스피리츠 오브 세인트루이스라는 ABA 구단도 있었어. ABA 원년인 1967년 휴스턴 매버릭스로 창단한 후 1969년 캐롤라이나 쿠거스를 거쳐 1974년 세인트루이스로 연고지를 옮겼지. 1976년 NBA와 ABA가 합병하자 세인트루이스는 연고지를 유타로 옮기려 했지만 결국 무산되었어. 비록 구단은 해체했지만 스피리츠 오브 세인트루이스의 구단주는 NBA-ABA 합병 계약에 따라 2014년까지 NBA 중계권료의 배분을 받기도 했지. 세인트루이스에서 유명했던 선수는 최초의 고교 출신 프로선수였던 모지스 말론이 있어.

미주리州의 유명대학들
미주리州에서 가장 유명한 대학은 미주리대(University of Mizzouri Tigers)야. 캔자스대의 라이벌로 유명한 미주리대는 파이널4에 오른 적은 없지만 엘리트 8이라 불리는 8강에는 5번이나 오른 강호지. 캔자스대, 캔자스주립대와는 같은 빅12 컨퍼런스 소속이었지만 2012-2013 시즌 사우스이스턴 컨퍼런스(SEC)로 자리를 옮겼어.

미주리대는 놈 스튜어트라는 명장이 유명해. 1967년부터 1999년까지 미주리대를 이끈 스튜어트 감독은 빅 12 컨퍼런스의 전신인 빅 8 컨퍼런스 우승을 6차례나 차지했고 16번 NCAA 토너먼트에 나가 8강에 두 차례(1976, 1994)나 올랐어. 1982년 UPI 올해의 감독, 1994년 AP 올해의 감독에도 뽑혔고 2007년에는 대학 농구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어. 미주리대는 미주리州 컬럼비아에 있고 홈구장은 미주 아레나(수용인원 1만5061명)야. 배출한 유명선수로는 KBL의 터줏대감이자 한국남자농구국가대표로 뛴 라건아(부산 KCC)와 덴버 너게츠의 마이클 포터 주니어, 유타 재즈의 조던 클락슨 등이 있어.

세인트루이스대(Saint Louis Billikens)도 있어. 애틀랜틱 10 컨퍼런스 소속인 세인트루이스대는 1952년 NCAA 토너먼트 8강에 올랐지. 세인트루이스대 출신 유명선수는 앞서 언급한 에드 맥컬리라는 슈퍼스타와 1978년 워싱턴 불리츠 우승 멤버 밥 페리, 2000년대 초반 필라델피아76ers에서 뛰었던 래리 휴즈 등이 있어.

아이오와州와 네브라스카 州의 농구팀들
워털루 호크스(Waterloo Hawks)

아이오와州는 끝없는 옥수수밭으로 유명하지. 그런데 이런 깡촌에도 NBA 구단이 있었어. 바로 워털루 호크스야. 아이오와州 워털루에 있었지. 1948년 NBL 소속으로 창단한 호크스는 1949년 BAA가 NBL을 흡수합병해 NBA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할 때 NBA의 일원이 되었어. 하지만 1951년을 끝으로 구단을 접으며 단명했지.

아이오와대(University of Iowa Hawkeyes)
아이오와州에서 가장 유명한 농구단을 하나만 꼽자면 아이오와대야. 1986년에는 우리나라를 방문해 국가대표팀과 맞대결을 펼친 바 있지. 당시 아이오와대는 탐 데이비스 감독이 처음 부임해 재편 중이었어. 그래서 해외 투어를 했는데 당시 아이오와대에는 4명의 향후 NBA 선수들이 있었어. 바로 B.J. 암스트롱(前시카고 불스), 브래드 로하스(前보스턴 셀틱스), 케빈 갬블(前보스턴 셀틱스), 로이 마블(前애틀랜타 호크스) 등이었지. 아마 우리나라를 방문한 대학 중 2015년 방문한 캔자스대와 함께 가장 강호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아이오와대는 다음 시즌 AP 랭킹 6위에 NCAA 토너먼트 8강에 올랐어. 빅10 컨퍼런스의 아이오와대는 1956년 NCAA 토너먼트 준우승을 포함해 파이널4에 3차례(1955, 1956, 1980) 오른 명문이야. 현역으로는 루카 가르자(미네소타 팀버울브스), 키건 머레이(새크라멘토 킹스), 크리스 머레이(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가 있어.

아이오와주립대(Iowa State University Cyclones)
아이오와대의 라이벌 아이오와주립대도 빼놓을 수 없어. 빅12 컨퍼런스 소속인 아이오와주립대도 1944년 파이널4에 오른 바 있지. 또한 팀 플로이드 감독과 래리 유스테이시 감독 시절에도 전국 강호였어. 아이오와주립대 출신으로는 인디애나 페이서스의 타이리스 할리버튼이 있어. 또한 제프 호너섹, 마커스 파이저 등도 아이오와주립대 출신이지. 2017-2018시즌 KBL 외국선수 MVP에 빛나는 디온테 버튼도 아이오와주립대의 주포로 맹활약을 펼쳤어.
네브라스카州의 라이벌
네브라스카-크레이튼

네브라스카대(University of NebraskaCornhuskers)와 크레이튼대(CreightonUniversity Bluejays)는 네브라스카州에 위치한 라이벌이야. 하지만 네브라스카대는 농구보다 미식축구에 더 집중하고 있어. 반면 크레이튼대는 최근 떠오르는 강호야. 1941년과 2023년 NCAA 토너먼트 8강에 올랐고 현재도 상위 랭커로 꼽혀. 두 팀은 네브라스카가 빅10, 크레이튼이 빅 이스트로 컨퍼런스가 다르지만 같은 주에 있어 매년 라이벌 대결을 하는데 역대 전적은 30승27패로 크레이튼이 근소하게 앞서 있어. 네브라스카 출신 NBA 선수는 마이키 무어(前보스턴 셀틱스), 터란 루 등이 있고 크레이튼은 덕 맥더밋(샌안토니오 스퍼스), 카일 코버, 폴 사일러스 등이 있지.

#사진_점프볼DB(문복주, 유용우, 박상혁 기자), AP/연합뉴스

Copyright © 점프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